◆ 시 아래 쓰여 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이나 분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그 감상과 느낌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첫눈 오는 날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 꿈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속에 촛불 하나씩 켜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 곽재구, 《첫눈 오는 날》, 전문
펑펑 내리던 첫눈은,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꿈처럼 녹아버렸다.
그래도 내리는 눈은 잠시 멈추어 서서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를 준다.
일상에 젖어들어가던 가슴에 눈이 꽂힌다.
어깨를 잔뜩 움츠린 어떤 이의 패딩 위에도, 승객을 싣고 종종걸음을 치는 버스의 이마 위에도.
눈은 내리면서 나의 머리칼을 가만히 쓸어준다.
이 시가 아니었으면 그저, 사람들이 가진 꽤 비싸 보이는 옷이라던가 스마트폰이라던가, 아니면 중형 승용차를 보며 와, 좋겠네 하며 조금은 질투를 했을 텐데,
그들도 나처럼 무거운 하루에 지쳐서 저 눈을 맞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낳는 것이구나, 하며 고개를 주억거리게 된다.
첫눈은 그렇게 금방 녹아버렸지만, 이미 늦었다.
이토록 무작정 저 거리와 내 마음에 스며들어 버렸으니 그것은 첫눈의 책임이다.
2023.12.22 - [이야기가 있는 정원, Art] - ✔샤갈의 눈 내리는 마을(나와 마을, I and The Village, 김춘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비테프스크 위에서, 짧은, 좋은, 아름다운 겨울 시, 시 감상, 크리스마스)
2022.12.12 - [이야기가 있는 정원, Art] - ✔겨울 관련 시 모음①(겨울 짧은, 좋은, 아름다운, 감동적인 시 모음, 나태주 첫눈 같은, 황지우 겨울 산,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곽재구 사평역에서, 시 감상)
눈 내리는 날
들판 가득 눈이 내렸습니다
그대에게 글을 적을 수 있게
하늘이 배려했나 봅니다
그림까지 곁들여 적고 보니
들판보다 더 넓은
내 마음이었네요
오늘처럼, 매일
그대 생각하며
글만 적으면 좋겠어요
- 윤보영, 《눈 내리는 날》, 전문
2022.08.06 - [이야기가 있는 정원, Art] - ✔바다 관련 시 모음(여름 바다, 짧은, 좋은, 아름다운 시, 정채봉 바다에 갔다, 윤보영 모래와 바다, 신현림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시 감상)
오늘처럼 눈이 오면 기다리던 첫눈이라며 기뻐하는 사람, 눈이 쌓이면 길이 막힐 텐데 어떡하지 하며 걱정하는 사람, 이제 춥고 긴 겨울이 시작되니까 월동 준비를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등등,
그 감상은 모두 제각각일 것이다. 감성을 건드리던, 현실 감각을 다시 깨우든 간에, 설령 금방 녹아 없어진다고 하더라도 내리는 눈의 힘은 이렇게나 크다.
우리는 왜 첫눈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거나 애틋한 문자를 보내는 걸까.
2024.11.25 - [이야기가 있는 정원, Art] - ✔초겨울, 12월, 낙엽 관련 시(짧은, 좋은, 아름다운, 감동적인 시 모음, 도종환 낙엽, 김용택 초겨울 편지, 정호승 첫눈 오는 날, 연수필, 경수필, 미셀러니, 서정시 감상)
아니, 당장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낼 사람이 물리적으로 곁에 없다고 할지라도, 다시 돌아오는 첫눈은 순식간에 그 장면을 싣고 온다.
첫눈은 망각이라는 팻말을 달아 무의식 속에 박아두었던 당신을 부르기 위한 전령사인 것일까.
내리던 눈은 모두 녹아 없어지고, 당신도, 당신과의 기억도 다시 뒤안길을 찾아 천천히 사라진다. 흐릿해지는 뒷모습.
내 마음의 들판은 이리도 넓고 쓸쓸한데,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달라졌고 무엇이 여전한 것인가.
2023.11.27 - [좋은 글귀, 명언, 힘이 되는 시] - ✔외로울 때, 위로가 필요할 때, 힘들 때 읽는 짧은, 좋은, 아름다운, 감동적인 겨울 시, 마음의 겨울, 문정희 겨울 사랑, 서윤덕 우리의 겨울, 윤동주 눈, 시 감상, 에세이, 단상)
2023.12.29 - [이야기가 있는 정원, Art] - ✔한 해를 보내며, 연말에 읽기 좋은, 짧은, 아름다운, 감동적인 시(용혜원 12월엔, 정연복, 송년의 시, 시 감상, 단상, 에세이, 경수필, 연수필, 미셀러니, miscellany)
2023.12.08 - [이야기가 있는 정원, Art] - ✔겨울의 시, 12월의 시 모음(짧은, 좋은, 아름다운, 감동적인 시, 천양희 겨울 풍경 2, 최홍윤 12월의 시, 홍수희 겨울 나무, 시 감상, 에세이, 단상)
첫눈
첫눈이 내립니다
얼른
눈부터 감았습니다
내 안의 그대 불러
함께 보고 싶어서
- 윤보영, 《첫눈》, 전문
첫눈
까아만 밤에
내리는 함박눈
바라만 보아도
순결해지는 가슴속에
기척 없이 남겨진
발자국 하나
한 겹, 두 겹, 세 겹
덮히고 덮히고 덮혀서
아득히 지워졌던 기억
선명하게 다가오는
얼굴 하나
- 목필균, 《첫눈》, 전문
2023.01.05 - [이야기가 있는 정원, Art] - ✔새해 관련 짧은 시 모음(1월의 시 모음, 아름다운, 감동적인, 좋은 시, 시 감상, 반칠환 새해 첫 기적, 이채 1월에 꿈꾸는 사랑, 목필균 1월, 정호승 첫 마음, 겨울시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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