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중산모, 코트, 그리고 익명성
깃이 좁은 오버 코트를 입고 중산모를 쓴 남자는 흰 와이셔츠에 붉은색 넥타이를 매고 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남자의 얼굴은 잎이 달린 초록의 사과로 가려져 있다.
만약 2023년 현재 도시의 거리를(아직 한국은 겨울에 접어들지 않아 조금 이르기는 하지만) 이 남자가 걷고 있다고 해도 돌아보는 사람은 아마 극소수일 것이다.
중산모? 그냥 멋을 추구하는 아저씨 정도라고 여기지 않을까.
뭐, 위의 그림과 같이 사과를 얼굴에 붙이거나 저런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고 있다면 조금 이상하겠지만, 어떤 기업의 판촉 행사이거나, 무슨 드라마 촬영 같은 것이겠지, 하며 이내 가던 길을 재촉할 것이다.
위의 그림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1967)의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작품 중 하나이며, 그의 여러 작품 속에서 변형된 형태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테마이기도 하다.
인물의 뒤편으로는 허리 높이까지 오는 낮은 벽이 있고, 또 그 너머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어쩐 일인지 하늘빛은 어둡고, 심지어 먹구름까지 껴있다.
특별할 것 없는 차림새의 남자.
하지만 이 남자의 얼굴을 거의 통째로 가리고 있는 초록의 사과 덕분인지, 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은 오히려 이 남자의 생김새에 대해서 상당히 궁금해지는 역설 또는 마법(?)을 경험하게 된다.
남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과는 그가 가면처럼 쓰거나 붙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말 그대로 그림 속을 둥둥 떠다니는 건지 불명확하다.
그런 사과의 한 귀퉁이에서 언뜻 보이는 남자의 푸른 눈 또한 어딘지 모르게 공허하게 빛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그림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림 속의 남자가 사과 뒤에 숨어서 우리를 몰래 훔쳐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골콘다(골콩드, Golconde, 1953년)」, 「지평선의 신비, The Mysteries of the Horizon, 1955년」 등을 통해 계속해서 등장하는 그림 속 남자는 왜 이 작품 속에서는 얼굴을 가리고 있을까.
하긴, 드러난 남자의 얼굴조차도 결코 특이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뭐라고 딱 꼬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그림들을 본 뒤에 남자의 얼굴을 기억해 보라고 하면 딱히 기억나는 것이 없다.
즉, 그림 속의 이 남자는 어디서나 흔히 만날 수 있는, 익명성을 가진 군중 속의 우리들의 모습을 지녔다.
2. 궁금증, 또는 질문을 유발하는 남자
남자 자체는 특별할 것도 눈에 띌 것도 없지만, 이상하게도 이 그림은 끊임없는 질문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남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 남자는 왜 둥둥 떠다니는 것 같은 초록 사과를 얼굴에 붙이고 있을까? 또, 많은 사과 중에 왜 하필이면 (잎이 달린) 초록색 사과일까?
더 나아가면 이 작품의 제목인 '사람의 아들'이 왜 '사람의 아들'일까에 다다른다(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남성이니 당연히 사람의 아들이겠지만).
작가의 의도를 함부로 예단하거나 속단할 수는 없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사람의 아들」은 우리들의 질문을 유발한다는 것.
"적어도 그것은 얼굴을 부분적으로 잘 가리므로 당신은 겉으로 보이는 얼굴, 즉 사과를 갖게 되며, 눈에 보이는 것은 숨기지만 숨겨진 사람의 얼굴을 갖게 됩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은 또 다른 것을 숨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가 보는 것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보고 싶어 합니다.
숨겨진 것, 눈에 보이는 것이 보여주지 않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관심은 숨겨져 있는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보이는 것 사이의 일종의 갈등, 즉 매우 강렬한 감정의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 출처 : [위키 백과], 위키피디아, 르네 마그리트, 사람의 아들
위는 르네 마그리트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작품인 「사람의 아들」에 대해 한 말이다.
남자의 얼굴은 사과에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자세히 보면 눈의 일부가 보이기는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남자의 얼굴이 아니라 남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사과이다.
하지만 그 사과를 통해 우리는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남자의 얼굴(특징이 있건 없건 간에)을 더욱 궁금해하게 되고, 보고 싶어서 안달(?)이 나게 된다.
결국 이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는 그 실체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남자의 얼굴을 추측만 할 뿐이다.
각자의 생각과 감정에 따라 사과 뒤에 숨어있는 남자의 얼굴은 각각 달라질 수도, 아니면 비슷한 범주 내에 있을 수도 있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를 '숨겨져 있는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보이는 것' 사이의 갈등이라고 표현했으며, 한 마디로 이 그림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것 안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를 보고 싶어한다'는 원초적인 욕망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아래는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중산모를 쓴 남자, Man in a Bowler Hat」(1964년)라는 작품이다.
여기서는 남자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것이 사과에서 새(비둘기)로 바뀌었다.
르네 마그리트는 이 남자의 오버 코트 패션을 일종의 유니폼처럼 묘사하고 있으며, 실제 작가 자신도 이러한 차림새를 선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여러 작품들을 통해 일상적인 것을 매우 비일상적이고 비인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했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속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주제 의식은, 의식적인 동시에 무의식적인(또한 정보인 동시에 정보가 아닌) 이른바 '가려져 있는 것'에 대한 고찰이 아닐까.
이는 무엇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는 문학적 표현방식인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와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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