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쓰여 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하고
신변잡기적인 감상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시에 대한 감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12월엔
달력 한 장
남은 한 해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잘할 걸
좀 더 열심히 살걸
모두 다 남지 못하고
떠나가야 하는데
12월에는
보고픈 사람도 많아지고
12월에는
그리워지는 사람도 많다
눈 내리는
12월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새로운 해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
- 용혜원, 《12월엔》, 전문
위의 시 그대로 달랑 한 장 남은 달력도, 며칠 뒤면 새로운 달력으로 바뀌게 된다.
오늘은 금요일, 사람들은 저마다 모임 약속을 잡느라 정신없이 바쁘고, 하루종일 날은 흐리다. 이 분주한 연말에 연락이 닿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쨌거나 좋은 일이 아닌가.
찻잔 또는 술잔을 기울이며 묵혀둔 안부도 묻고, 가벼운 농담 속에 너털웃음을 짓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로 꽝꽝 얼었던 마음도 조금은 녹일 수 있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술자리에 가지 않은지도 어언 십 년이 넘어버렸다.
집에서는 어쩌다 한두 잔의 반주를 곁들이기는 하니, 술을 완전히 끊었다,라고 하기엔 어딘지 어색하지만 이게 익숙해지다가 보니 밖에서는 일 끝나고 어디 가서 술 한잔, 이런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물론 이것은 내가 나 자신을 아직까지는 제법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고, 최근 십몇 년 동안에 만난 사람들이야 내가 아예 술을 입에 대지 않는 사람인 줄 알고 있을테니, 술자리에 부르지 않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기도 할 것이다.
흐릿한 조명 아래, 거뭇한 불판 위에서 몸을 반쯤 태운채 누워있는 고기를 깨작거리다가, 술기운에 잔뜩 꼬부라진 혀를 열심히 굴려가며 앞뒤도 안맞는 말들을 논쟁이랍시고 남발하던 그때 술친구들은, 아직도 여전할까.
새해를 삼 일 앞둔 오늘,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그립다기보다는 그 사람들과 만들었던 시시껄렁한 시간들이 그립다.
정말 오랜만에 연락이라도 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어쩌면 진작에 전화번호를 바꾸었을지도 모르고, 또 각자의 일로 바쁠 그들에게 십 수 년만에 무슨 말로 회포를 풀지도 몰라서 조금은 두려운 생각이 든다.
그냥 그 모습 그대로, 오래되어 변색된 흑백 사진처럼 붙박여 있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그대로 두는 것이 더 현명할 때가 있다.
송년의 시
아침 햇살에 피어났다가
저녁 어스름에 지는
한 송이 꽃같은
하루하루
올 한 해도
바람같이 강물같이
삼백 예순 다섯개의
오늘이 흘러갔다
아쉽지만
슬퍼하지는 말자
세월의 꽃도 피고 지고
또다시 피어나느니
오늘 밤이 지나고 나면
너와 나의 머리 맡에
싱그러운 새해
첫날이 와있으리니
- 정연복, 《송년의 시》,전문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시간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간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반복되는 일상을 학습한 뇌의 지루함에서 기인하는 현상이기는 하겠으나, 이제는 손을 채 뻗기도 전에, 생각을 어떻게든 정리하려고 하기도 전에, 시간은 무서운 힘으로 저멀리로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나의 몇몇 장면들과 그 장면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에 대한 기억도 흐릿해지고, 마침내 가루처럼 내 마음 여기저기에 흩뿌려진다.
아아, 며칠 전 중성화 수술을 받은 우리 집 고양이 녀석이, 넥카라 아래가 가려우니 빨리 긁어달라고 재촉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
고양이용 빗을 찾아서 단단히 손에 쥐고, 나는 녀석을 향해 웃음지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나의 연말은 이렇게 소소하게 마무리되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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