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에 쓰여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일 뿐입니다.
오해나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전문
개인적으로는, 이 시의 시적 화자가 그리워하는 어떤 존재가 그에게 달이 떴다고, 강변에 달이 곱다고 하며, 실제로 전화를 걸거나 소식을 전해온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제법 환하게 뜬 달을 보면서 시적 화자의 연모의 마음이 커졌고, 거기에다 그 존재와 함께 했던, 잊을 수 없는 어떤 장면이 가슴속에 차오른 것이리라.
그래서 실제로 전화가 걸려온 것이 아닌, 자신의 어떤 애절한 바람이 달빛에 투사된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 장면, 좋은 기억으로 남은 사람은 문득, 감당하지 못할 커다란 그리움으로 저 하늘에 뜬다.
애달프고 그리운 것은 모두 사랑이라고 했던가.
다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갖가지 모습을 한 채,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감정이 사랑의 많은 얼굴 중 하나이리라.
달을 보며
달은 밝고 당신이 하도 기루었습니다
자던 옷을 고쳐 입고 뜰에 나와 퍼지르고 앉아서 달을 한참 보았습니다
달은 차차차 당신의 얼굴이 되더니 넓은 이마 둥근 코 아름다운 수염이 역력히 보입니다
간 해에는 당신의 얼굴이 달로 보이더니 오늘 밤에는 달이 당신의 얼굴로 됩니다
당신의 얼굴이 달이기에 나의 얼굴도 달이 되었습니다
나의 얼굴은 그믐달이 된 줄을 당신이 아십니까
아아 당신의 얼굴이 달이기에 나의 얼굴도 달이 되었습니다
- 한용운, 《달을 보며》, 전문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소중한 사람이나 남몰래 연모하는 사람의 얼굴을 표현할 때 '달덩이 같다'라고, 예전에는 자주 사용하였다.
루나틱(lunatic) 운운하며 서양에서는 광기와 연결시키기는 하지만(태양의 반대편에서 어둠이나 으스스함 등을 상징하고 있어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내게 있어 달과 달빛은 한밤에 느닷없이 일어나는 갬성(?)의 도구로, 그림엽서처럼 마음 한구석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장면들을 소환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쨌든 달의 은근한 빛이 어떤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것,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그리고 오늘, 높은 구름 사이로 보름달(2023년 9월 29일 오후 6시 23분, 서울 기준, 지역에 따라 시간은 다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만나 추석 명절을 지내는 사람들, 명절을 지내고 바쁘게 귀경하는 사람들, 가고 싶으나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고향에 갈 수 없는 사람들 모두에게 따뜻한 달빛이 내리쬐길.
해와 달이 각각 낮과 밤을 담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실은 언제나 함께 있는 것처럼, 빛과 어둠은 그냥 우리 삶의 한 세트 일터.
나도 오늘은 달빛을 받으며 오랜만에 밤산책을 즐겨볼까 한다.
반달
아무도 반달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반달이 보름달이 될 수 있겠는가
보름달이 반달이 되지 않는다면
사랑은 그 얼마나 오만할 것인가
- 정호승, 《반달》,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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