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한시) 아래에 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한시)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이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분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일 뿐입니다.
오해나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주경(晝景)
하늘가 붉은 구름 낮에도 걷히지 않지만
차가운 개울물 소리 없이 흐르고 풀줄기는 부드럽네
인간 세상의 유월은 바쁘고도 무덥다지만
산 속 푸른 개울물 베게 삼은 나를 어찌 믿을까
天際彤雲晝不收
천제동운주불수
寒溪無響草莖柔
한계무향초경유
人間六月多忙熱
인간육월다망열
誰信山中枕碧流
수신산중침벽류
- 김시습, 《주경(晝景)》, 전문
✅ 김시습(金時習, 1435~1493) :
김시습은 조선 초기의 문인, 학자이자 불교 승려이다. 이른바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한성부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강릉, 자(字)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 등이며, 불교 법명은 설잠(雪岑)이다.
수양대군(훗날의 세조)이 자행한 단종에 대한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은둔 생활을 하다가 승려가 되었으며, 이후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일성에는 그가 사육신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현재의 노량진에 암장했다고도 한다. 1493년 충청도 홍산군 무량사에서 병사하였다.
* 출처 : [위키 백과] 김시습
💬 생육신(生六臣) :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죽은 사육신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이개, 유성원, 유응부)
과 달리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초야에 묻힌 사람을
'생육신'이라고 하는데,
김시습,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온을 일컫는다.
사육신이 절개로 생명을 바친데 대하여
이들은 살아있으면서
귀머거리나 소경인 채,
또는 방성통곡하거나 두문불출히며,
단종을 추모하였다.
- 출처 : [네이버 지식 백과]
두산 백과, 생육신
이 한시의 제목인 '주경'은 '낮 주(晝)'자와 '경치 경(景)'자를 써서 '한 낮의 풍경' 쯤으로 해석하시면 된다.
이 시를 지은 매월당 김시습은 역사적 인물이므로,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어릴 때부터 똑똑하여 만 3세에 시를 짓기 시작했고, 5세에는 세종 앞에서 시를 지어 모두를 놀래키기도 하였다(감탄한 세종이 그에게 비단을 하사하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는 이 천재 시인이 방랑 생활로, 또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한 세상을 살아가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그는 세조의 정변(계유정난)과 왕위 찬탈에 대한 불만으로 21세에 머리를 깎고 전국을 유람하는 방랑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그는 백성들의 삶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였고, 때때로 시를 지어 세상의 허무함을 읊기도 했는데, 《매월당시사유록 每月堂詩四遊錄》에 그때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인간 세상의 유월은 바쁘고도 무덥다지만/
산 속 푸른 개울물 베개 삼은 나를 어찌 믿을까/
전국을 유람하며 때로 깊은 산속에서 경치를 즐기는 자신은 푸른 개울물 소리를 베개로 삼을 정도로, 번잡한 속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넉넉한 마음이라는 뜻일까.
세상에 대한 달관과 허무함이 공존하는 것 같은 시다.
초하성중작(初夏省中作)
전원이 묵었는데 언제 돌아가려나?
흰 머리의 인간 벼슬 생각 적어지네
적막한 상림원에 봄빛이 다하려 하기에
다시 성긴 비에 젖은 장미 보노라
몽롱한 낮잠 비가 막 내리는데
머리 맡의 따뜻한 바람 전각에 남아도네
서리여, 점심밥 어서 먹으라 재촉을 마오
꿈속에 한창 무창 물고기 먹고 있는데.
田園蕪沒幾時歸
전원무몰기시귀
頭白人間官念微
두백인간관념미
寂寞上林春事盡
적막상림춘사진
更看疎雨濕薔薇
갱간소우습장미
懕懕晝睡雨來初
염염주수우래초
一枕薰風殿閣餘
일침훈풍전각여
小吏莫催嘗午飯
소리막최상오반
夢中方食武昌魚
몽중방식무창어
- 허균, 《초하성중작(初夏省中作)》, 전문
✅ 허균(許筠, 1569~1618) :
허균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 학산(鶴山))·성소(惺所)·백월거사(白月居士)이다. 허봉이 친형, 허난설헌이 친누이이다.
어릴 적부터 그의 기억력은 비상하였고, 이미 10세 이전에 글을 잘 지어서 주변의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서애 류성룡과 당대의 시인 이달을 스승으로 두었다. 소설 《홍길동전》의 작가이며, 벼슬은 좌참찬에 이르렀다.
* 출처 : [위키 백과], 허균
'초하성중작'의 뜻은 '초여름의 관아에서 (시를) 짓다'정도로 해석하시면 된다. 이 시는 1603년 그가 '사복시정'이라는 관직에 있을 때 지은 것으로, 그의 나이 34세 때이다.
사복시(司僕寺)는 조선시대 임금이 타던 말이나 수레, 마구 및 목축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청으로, 허균의 직책인 '정(正)'은 실무 책임자에 해당하는 정 3품 당하관이다.
전원이 묵었는데 언제 돌아가려나?/
흰 머리의 인간 벼슬 생각 적어지네/
34살의 젊은 나이에 벌써 흰 머리가 수북한 관료가 된 그는 여러 스트레스로 인해 머리가 복잡하고, 관료 생활에 염증을 느꼈던 듯하다(스트레스는 머리카락을 빨리 하얗게 만든다).
그러니 언제 벼슬을 버리고 전원(田園)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속으로 한탄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복시정은 그 특성상 궁궐 내에 근무하여야 하므로, 초여름의 길목에서 봄이 떠나버리는 아쉬움을 더 잘 느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적막한 상림원에 봄빛이 다하려 하기에/
다시 성긴 비에 젖은 장미 보노라/
하지만 마음만 전원에 가닿을 뿐 몸은 그렇지 못해 안타까운 터에, 그나마 초여름에 내린 비에 젖은 장미를 보는 것이 한 가지 낙이라면 낙이다.
몽롱한 낮잠 비가 막 내리는데/
머리 맡의 따뜻한 바람 전각에 남아도네/
백일몽인지 진짜인지 알 길은 없으나, 시적 화자는 그가 근무하는 전각안에서 낮잠이 깬다.
아무튼 깨고 보니 벌써 점심 때라, 소리(小吏, 胥吏 : 중앙과 지방 관아에 속하여 말단 행정. 실무를 맡아보던 하급 관리,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가 점심 식사를 내오고 있다.
소리(서리)여, 점심밥 어서 먹으라 재촉을 마오,/
꿈에서 한창 무창 물고기 먹고 있는데/
무창 물고기(武昌魚, 방어의 일종)는 중국 무창 지역의 특산물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매우 유명한 물고기라고 한다(삼국시대 오(吳)의 손호(孫皓)와 관련이 있다).
꿈에서 그 물고기를 먹었으니, 현실의 조촐한 밥상과는 비교가 안되었을까.
하일즉사(夏日卽事)
주렴장막 쳐진 깊숙한 곳 나무 그림자 어른거리고
은자는 잠에 취해 우레와 같이 코를 골고 있네
날 저문 뜨락에는 찾아올 사람 하나 없는데
바람만이 사립문을 열었다가 닫곤 하네
簾幕深深樹影迴
염막심심수영회
幽人睡熟鼾成雷
유인수숙한성뢰
日斜庭院無人到
일사정원무인도
唯有風扉自闔開
유유풍비자합개
- 이규보, 《하일즉사(夏日卽事)》, 전문
✅ 이규보(李奎報, 1169~1241) :
이규보는 고려의 문신이다. 자는 춘경(春卿),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백운산인(白雲山人)이며, 시호는 문순(文順)이다.
고려 무신 집권기 최씨정권 시대에 활동한 인물이며, 당시로써는 매우 독창적인 문학관, 즉 과거의 여러 고전에서 좋은 구절을 응용하여 시를 지어야 한다는 기존의 의견, 즉 '용사론'에 반대하며, 자신의 개성과 자신의 목소리로 독창적인 표현을 써야 한다는 '신의론'을 주장하기도 했다.
《국선생전》과 《동명왕편》이 매우 유명하며, 이규보가 남긴 시와 문장은 고려 시대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 출처 : [위키 백과], 이규보
이 한시의 제목인 '하일즉사'는 '여름 어느 날' 정도로 해석하시면 된다.
시적 화자는 여름의 어느 날, 산 속 깊은 곳에서 은거하고 있는 '은자'를 만나러 그곳으로 간다.
이미 날은 저물고, 아주 드문 확률로 자신이 찾아왔건만 마침 깊은 잠에 빠져있는 은자.
촌각을 다투는 일이 아니라면, 우레와 같은 코골이 소리와 함께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지인을 깨우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미안한 일이라, 시적 화자도 어쩌지 못하고 주변 경치에 눈을 돌린다.
제법 고즈넉하고 한가로운 풍경은 짧은 순간 지나가버리므로, 그냥 즐기면 되는 것이다.
부러 사람을 깨워서 즐길만한 풍경도 날려버린다면, 모든 균형이 순식간에 깨지고 와르르 무너져 버린다.
어쩐지 쓸쓸함 보다는 여유와 낭만이 느껴질 법한, 여름 날 해가 지는 풍경이다.
가만히 눈을 감으면, 시적 화자가 눈과 귀, 그리고 붓끝으로 찍어낸 풍경이 마치 스냅사진처럼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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