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쓰여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일 뿐입니다.
오해나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초여름 숲처럼
나무와 나무 사이에
푸른 하늘이 흐르고 있듯이
그대와 나 사이엔
무엇이 흐르고 있을까.
신전의 두 기둥처럼 마주 보고 서서
영원히 하나가 될 수 없다면
쓸쓸히 회랑을 만들 수밖에 없다면
오늘 저 초여름 숲처럼
그대를 향해 나는
푸른 숨결을 내뿜을 수밖에 없다.
너무 가까이 다가가서
서로를 쑤실 가시도 없이
너무 멀어 그 사이로
차가운 바람 길을 만드는 일도 없이
나무와 나무 사이를 흐르는 푸른 하늘처럼
그대와 나 사이
저 초여름 숲처럼
푸른 강 하나 흐르게 하고
기대려 하지 말고, 추워하지 말고,
서로를 그윽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
- 문정희, 《초여름 숲처럼》, 전문
💬 저자 문정희는 전남 보성에서 나서 서울에서 성장했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다산의 처녀』, 『카르마의 바다』, 『응』 등 다수와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 외에 장시집, 시극, 에세이집 등이 있다.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웨덴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등 9개 국어로 출판된 11권의 번역 시집이 있다.
미국 아이오와대학 IWP(1996), 버클리 대학 (2006, 2009), 이태리 카포스카리 대학 (2011), 프랑스 시인들의 봄 및 세계 도서전 (2013. 2016), 스웨덴 스톡홀름대학 (2014) 쿠바 아바나 북 페어(2015) 스페인 <책의 밤>(2015) 등 다양한 국제 행사에 초청받았다.
현대문학상(1976), 소월시문학상(1996), 정지용문학상(2004), 육사시문학상(2013), 목월문학상(2015)과 한국예술평론가 협회 최우수 예술가상(2008), 대한민국 문화예술상(2015)을 수상했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문정희
연인관계이든, 부부관계이든, 절친이든 간에 이른바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리는 흔히 저 사람에 대해서 눈빛만 봐도 안다는 말들을 자주 한다.
정말 그럴까. 나는 잘 모르겠다. 사람이 사람을 완벽하게 알고, 이해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가까운 사이일수록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할 텐데, 가깝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선을 넘어와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일들은 실은 나를 잘 모르고 던지는 말과 행동일 경우가 많고, 이것 자체가 오해나 편견에서 비롯되었으니 또 다른 오해와 편견을 낳는 결과를 가져온다.
때로는 위로의 말들도 독이 될 때가 있으며, 문제를 객관적으로 본답시고 '문제는 너한테도 있어'라던가 '세상이 다 그런 거지'라는 식으로 다가가는 것도 언제나 좋은 중재나 해결 방안인 것은 아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 이를 수치로 환산하거나 척도화 시킬 수는 없다. 즉, 그 거리가 물리적으로 1 미터면 적절하고 그 이상이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다.
아무리 당신과 나 사이라고 해도 오로지 밀착만 하고 있어서는 숨쉬기가 어렵다. 때로는 심리적으로나마 한 걸음 물러서서, 상대가 숨을 고르고 호흡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 입 대신 귀를 열고 가만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을 것이다.
긴 여름밤
초여름의 태양은
좀 더 뛰놀고 싶어 한다
몸은 지쳐도
마음은 하루종일
뛰고 뛰어도
전혀 지치지를 않는다
초여름의 하루는
속임수에 물들은 하루
원하지 않는
썸머타임제에
한 시간 일찍
일어나야 하는 고충
초여름의 낮 길이
실컷 잔 것 같은데도
태양은 아직
중천에 떠 있고
가는 청춘이
아까울 정도로 긴 계절
- 김영제, 《긴 여름밤》, 전문
초여름의 날들, 그래도 아직은 아침저녁으로 미풍(이라고 하기엔 때때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지만 며칠 뒤 시작된다는 장마가 오락가락하고 나면, 창문을 열기조차 무서워지는 한여름이 올 것이다.
에어컨의 실외기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인상은 찌푸려지며, 태양조차 지치지 않는, 그래서 한층 더 길어진 하루가 더 힘들게 느껴지는 날들은 올해는 또 얼마나 될 것인가.
방금 만든 아이스커피의 얼음은 벌써 형체도 없이 스르륵, 미적지근한 물이 되어 버렸다. 그 미적지근한 물은 곧 내 속으로 들어가, 다시 끈적한 땀이 되어 흐른다.
작열하는 태양도, 퍼붓고 또 퍼붓는 비도, 두려울 따름이다. 자연이 내 말을 들어줄 일은 없지만, 그레도 적당히 좀 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초여름
고운 님 얼굴 닮은
마음으로
가만가만 불어오는
명주바람 앞세우고
싱그러운 연초록
잎사귀 사이로
은빛 햇살 쏟아져
아늑거리는 신록의
꿈을 안고
여름 너 벌써 왔구나!
- 김용수, 《초여름》, 전문
✅ 명주바람 :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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