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에 쓰여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이나 분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일 뿐입니다.
오해나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가을비와 커피 한 잔의 그리움
가을비 촉촉이 내리는 날
외로움을 섞은
진한 커피를 마시고 싶은 것은
살갗 트는 외로움이
젖은 미소로 기웃거리다
가을비처럼 내린다 해도 좋은 것은
젖은 그리움 하나
아직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던 기억 한 스푼으로
넉넉히 삼키는 커피 한잔이
비처럼 추억처럼
가슴 밑동까지 파고듭니다
가을비 촉촉이 내리면
커피 한 잔의 그리움으로
가을비 타고 올
그대를 그리고 싶습니다
- 이채, 《가을비와 커피 한 잔의 그리움》, 전문
입추니, 처서니 이런저런 절기를 지나고도 도무지 여름이 지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더니, 촉촉하게 내리는 진짜 가을비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비로소 계절이 바뀌는 것 같다.
물론 아직은 '시원하다'라기보다는 '견딜만하다' 정도이긴 하지만 말이다(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주변에는 추워서 얇은 점퍼를 걸치는 사람도 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땀을 식히던 때는 훌쩍 지나, 이제 김이 폴폴 나는 핫 아메리카노를 입에 대도 땀샘이 폭발하지 않는 것을 보면, 가을이 오기는 오나 보다.
물론 해마다 가을은 잰걸음으로 도망치기가 일쑤이기 때문에, 쓸쓸함과 그리움을 지금 달고 다니지 않으면, 한기가 도는 겨울의 초입에는 더더욱 견디기 힘들어지리라.
사실 쓸쓸함과 그리움 모두, 우리는 모르는 사이, 혹은 시시각각 변하는 일상에 지쳐 인지하지 못하거나 그럴 여가조차도 없이 반짝, 하고 스치는 섬광 같은 것일지는 모르겠다.
문득문득 일어나는 어떤 감정조차도 사치라고 내 안으로 꾹꾹 쑤셔 넣으면, 나중에 한꺼번에 터지는 감정의 격랑을 참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가을이라는 계절을 빌어, 밑도 끝도 없는 쓸쓸함과 그리움을 달고 살아보자. 여름의 끝, 비로소 입에 대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의 맛이 더욱 진해질 수 있게.
가을비의 눈물
무엇이 그리도 슬퍼서 줄줄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는가
무엇이 그리도 답답해서 세차게
땅바닥을 두드리고 있는가
머지않아 단풍들이 붉어질
푸른 숲이 안타까워선지
곧 불어 닥칠 찬바람을 염려해선지
무언지는 모르지만
무심결에 덩달아 나도
눈시울을 적신다
먹먹해진 가슴을 쓸어내린다
- 오보영, 《가을비의 눈물》, 전문
옷가게의 디스플레이가 FW 시즌으로 바뀌고, 아침저녁으로 바람막이 점퍼를 걸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나오는 에어컨 바람에 어느 순간 추워서 몸을 움츠리는 등, 뭐라고 딱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거리의 풍경이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한여름에는 작열하는 태양이 너무도 뜨거운 나머지, 멍해진 상태에서 얼마 없는 그늘을 찾아 멈춰서는 일이 잦았다면, 이제는 기억이든 추억이든 머릿속에서 점멸하는 어떤 것들로 인해 자꾸만 멈춰서게 된다.
그나마 그런 것들을 수용하고 차곡차곡 정리할 시간이라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변해가는 계절이 주는 어떤 선물이리라.
굳이 기억이나 추억과 같은 것들을 나열하고 정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살갗이 끈적끈적한 그 느낌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않을까.
가을비에게
여름을 다 보내고
차갑게
천천히
오시는군요
사람과 삶에 대해
대책없이 뜨거운 마음
조금씩 식히라고 하셨지요?
이제는
눈을 맑게 뜨고
서늘해질 준비를 하라고
재촉하시는군요
당신이 오늘은
저의 반가운
첫 손님이시군요
- 이해인, 《가을비에게》,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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