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적으로 거무튀튀하며 번쩍이는 몸체, 인간과 비슷한 골격을 가지고 있으나 총알로도 쉽게 제압하기 어려울만큼 단단한 갑옷같은 외골격(인간처럼 뼈대 위에 근육, 그 위에 피부가 덮여있는 형태가 아닌 뼈대가 겉으로 나와있는 듯한 형태),
단연 우주최강의 건치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길고 촘촘하게 뻗은 이빨(입속에 또 하나의 입이 있다), 철편이 박혀있는 촉수 겸 창(槍)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는(적의 몸을 베고, 찌르거나 관통할 수 있는) 꼬리, 게다가 어쩌다 흘리는 혈액마저 산성이라, 놈의 피가 튈 경우 심하면 쇳덩어리도 녹을 정도이다.
무시무시한 비주얼도 비주얼이거니와, 무엇보다 우리를 좌절케하는 것은 인간보다 월등한 신체능력만으로도 쉽게 우리의 무릎을 꿇릴 수가 있는데, 지능마저 인간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이라니.
그야말로 넘사벽 크리쳐 중 단연 톱을 차지할만한 오늘의 주인공,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시는 통칭 '에이리언(Alien)'. 그리고 그 주인공을 굳이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 떡하니 던져놓으신, (에이리언을 탄생시킨) 아버지 H. R. 기거(Hans Rudolf "Ruedi" Giger, 1940~2014)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H. R. 기거에 대하여
화가이자 시각디자이너인 한스 루돌프 "루어디" 기거(Hans Rudolf "Ruedi" Giger)는 1940년 2월 5일 스위스의 동남부에 위치한 그라우뷘덴주 쿠어에서 태어났다. 1962년 취리히로 이주하여 응용예술학교에서 건축과 산업설계를 공부했다.
1964년까지 그는 주로 수묵화와 유화 등을 제작하였고, 1966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얼마 후, 그는 에어브러시(airbrush)를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으로 인해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발견하게 되어, 그의 가장 잘 알려진 많은 작품들, 초현실주의적이고 생체역학적인 꿈의 풍경을 창조하게 되었고, 이것은 그의 이름을 알리는데 큰 기여를 했다.
1977년 출판된 기거의 책(화집, 畵集) 「네크로노미콘」은 리들리 스콧 감독에게 큰 영감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침내 그는 1979년에 개봉한 리들리 스콧의 영화 「에이리언」의 제작과정의 모든 단계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여기에 등장하는 외계생명체의 캐릭터 디자인을 직접 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0년, 그는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기에 이른다.
그는 항상 자신의 예술적 비전의 핵심 요소들을 종이의 경계를 넘어 주변의 3D 현실로 확장시키고자 하는 지속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었는데, 1990년 50세 생일 기념으로 열었던 작품 회고전에 11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간 것에 감동을 받아 1998년에 개인 박물관을 개관했다(이것이 스위스 프리부르 주 그뤼예르에 있는 H. R. 기거 박물관 - HR Giger Museum - 이다).
현재 기거의 예술에 관해 출판된 책은 20권 이상이며, 그의 그로테스크하고 원초적인 상상력은 후대의 많은 예술가들에게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3년 과학소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출처 및 참조 : [H. R. 기거 공식 웹사이트], 바이오그래피,
[네이버 지식백과], H R 기거 박물관
2. 에이리언이 에이리언 했다
"공상과학(Science Fiction)보다는 우주 판타지(Space Fantasy)라고 불러달라"
위는 「스타워즈(Star Wars, 1977)」를 감독한 조지 루카스(George Lucas)의 말(출처 : [영화에 대해 알고 싶은 두 세가지 것들], 구회영, 한울)이다.
헐리웃 영화계는 스타워즈를 기점으로 사이언스 픽션물을 일종의 하위개념처럼 들리는 '장르영화'로서가 아닌 순수한 오락으로서의 '스펙터클'로 취급하기 시작하였다.
그만큼 스타워즈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였고, 지금은 흔히 '굿즈'라고 부르는 피규어와 같은 관련 상품도 불티나게 팔려나갔으니, 영화관계자들로서는 스타워즈의 영광을 재현할, 우주를 배경으로 한 또다른 '장르영화이자 스펙터클 영화'를 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에이리언〉의 탄생은 197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각본가 댄 오배넌은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엘 토포〉)와 함께 프랭크 허버트의 대하 SF소설 〈듄〉의 영화화를 추진 중이었는데 자금 문제로 프로젝트가 무산되고 만다.
빚더미에 앉은 오배넌은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전부터 구상해온 외계 생명체에 관한 이야기를 각본으로 옮겼는데, 제목은 〈스타비스트〉였다.
한편 오배넌의 각본 작업을 도와준, 각본가이자 제작자인 로널드 슈셋은 어느 날 ‘괴물이 사람의 몸속에 알을 낳고 부화한 새끼가 배에서 튀어나온다’는 기막힌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오배넌은 이 아이디어를 중심으로 각본을 새로 쓴 뒤 제목을 〈에이리언〉으로 바꿨다. 〈에이리언〉은 이렇게 해서 탄생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에이리언>시리즈 [Alien] (세계영화작품사전 : 감동이 이어지는 시리즈 영화, 김정대, 김봉석)
'괴물(미지의 생명체)이 사람의 몸속에 알을 낳고, 부화한 새끼가 (사람의)배에서 튀어나온다'라는 이 설정, 지금 다시 보아도 찜찜함을 넘어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안 그래도 우리는 발의 갯수가 많고, 더듬이와 촉수 비슷한 것을 꼼지락거리며, 여러 개의 겹눈은 물론 마치 갑옷과 같은 신체를 가진 '곤충'에게 많은 거부감과 혐오감을 느낀다.
어쩌면 곤충과 같은 이질적인 생명체에 대한 공포는 지극히 현실적(독을 지니고 있다던지, 병을 옮긴다던지)으로 우리 조상의 조상들이 체득(직접 싸워보거나 당해보거나)한 집단무의식의 기저에서 오는지도 모른다.
뭐, 말하자면 아직 경험해보지 않아서 두렵고, 경험해 보았을 때 더 큰 파국을 가져올지도 모르니까 더욱 두려운 것이라고 해야할까.
어쨌든 영화 「에이리언」은 당시 신인이었던 리들리 스콧(<프로메테우스>, <한니발> 등을 감독)이 메가폰을 잡게 되었다.
각본 좋고 설정 좋고, 다 좋은데 정작 크리처이자 우주괴물을 어떻게 묘사할건지가 관건이었다. 당연하게도 완성된 영화를 최종적으로 보는 사람은 일반관객이다.
미지의 존재를 시각적으로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성패가 결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미지의 존재'는 이전에 다른 영화 속에서 묘사된 익숙한 것이 아니어야 하며, 관객들에게 먼저 시각적으로 어떤 충격을 주어야 한다.
고민하던 제작진 및 감독의 앞에 떡하니 놓여진 것이 바로 * H. R. 기거의 화집 「네크로노미콘」이었고, 이들은 탁하고 무릎을 쳤다.
스콧은 이 책 65페이지 하단의 그림을 보고 ‘바로 이 괴물이야!’라고 외쳤고
그림 속의 괴물은 그대로 영상에 옮겨졌다.
스콧은 시각적 스타일이야말로 이 영화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소라 여기고,
스토리보드 단계부터 철저하게 자신만의 비전을 준비해나갔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에이리언> 시리즈 [Alien] (세계영화작품사전 : 감동이 이어지는 시리즈 영화, 김정대, 김봉석)
그 뒤로 수없이 변주되고 재탄생되었지만, 두고두고 회자되는 영원한 명작이자 SF 영화의 클래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3. 미지의 그것, 꿈인가 생시인가
기거는 자신의 독특한 작품세계에 영향을 준 요소들로 자신이 꾼 '꿈'과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와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작가들,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언급하였는데(*사실 기거의 화집으로 위에서 언급한 바 있는 <네크로노미콘>은 일찌기 하워드 필립스 러브크래프트가 자신의 작품 속에서 등장시킨 가상의 신화(神話)이기도 하다. 러브크래프트에 대해서는 기회가 되면 따로 말씀드리도록 하겠다),
* 또한 그의 그로테스크하고 환상적인 작품들은 또다른 환시미술의 대가 즈지스와프 백진스키와 종종 혼동되고는 하는데, 둘은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작가들 스스로 꾼 꿈이, 그가 창조하는 예술에 직접적으로 영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자면서 꾸는 꿈은 실제로는 '현실의 반영'이자 '뇌의 화학적 작용'이라고 할지라도 그 꿈을 직접 꾸고 있는 나에게는 은유, 상징,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장면들이 뒤섞여 있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으며, 종종 자신의 환상이나 부정적인 측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억눌려있는 무의식적 요소들이, 꿈의 세계에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눈을 감고 있으나 보이는 그것. 우리들의 무의식과 비뚤어진 환상은 꿈속에서 '어떤 형태를 갖춘 시각적인 모습'으로 등장할 수 있다.
평소에는 억눌려 있거나 일부러 무의식의 저편으로 던져버린 것이기 때문에, 그 형태는 종종 기괴할 수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어떤 사물이나 존재들과는 전혀 다른 비주얼을 하고 우리를 만나러 온다(반대로 어떤 충격적인 장면이 포함된 영화장면을 보고 나면 그와 비슷한 '악몽'을 꾸기도 한다).
만약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몇 백 만년 전의 영장류 앞에 나타났다면 어떨까? 당연히 그들 영장류는 우리를 공포와 경외가 뒤섞인 복잡한 눈으로 바라볼 것이다.
우리가 입고 있는 현대의 의복, 우리가 사용하는 도구,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그 모든 것들이 그들에게는 낯설 것이며, 어쩌면 자신들의 능력을 초월한 신(神)적인 존재로 여길지도 모른다.
이 괴상한 외피를 걸치고,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며, 신기하지만 엄청나게 위협적인 도구를 사용하는 미지의 존재들이, 알고 보니 자신보다 월등한 지능까지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과연 그들은 어떻게 행동하게 될까?
기거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존재들은 까마득한 옛날, 신화 속에서 활동하던 고도의 지능과 탁월한 신체능력을 갖춘 '크리쳐' 들일지도 모른다.
중세의 벽화 속에서, 당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었던 가장 그로테스크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는 악마와, 죽어서 가죽은 사라지고 뼈만 남았지만 다시 부활한 해골이, 기계의 힘을 빌어 전혀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듯한 모습.
아주 오랜 옛날, 꼭 인간이 아니었어도 인간과 흡사한 형상을 한,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을 정도로 고도의 문명을 자랑했던 어떤 존재들이, 금단의 영역, 즉 자신들을 불멸. 불사의 존재로 만들 방법을 갈구한 나머지, 기계와의 합일을 감행한 결과가 그런 끔찍한 혼종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H. R. 기거의 전반적인 작품들은 우리들이 자랑하는 문명사회의 이면에 웅크리고 있는 잔혹함을 추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거테스크' 또는 '바이오메카니즘(사람을 포함한 생물의 형태, 운동, 정보와 기능과의 관계를 공학, 의학, 생물학 따위의 여러 가지 방법론으로 해석하고 그 응용을 꾀하는 학문.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쩌면 잊혀진 우리들의 과거이자, 가까운 미래에 도래할지도 모를 어떤 것.
■ H. R. 기거가 참여한 뮤지션들의 앨범자켓의 일부 :
① 사진 좌측 : Emerson, Lake and Palmer, Brain Salad Surgery, 1973
② 사진 가운데 : Debbie Harry, The Jam Was Moving, 1981
③ 사진 오른쪽 : pankow, Freedom for the Slaves, 1987
(* 사진출처 : [H. R. 기거 공식 웹사이트])
■ H. R. 기거가 참여한 또다른 크리쳐물, <스피시즈(1995)> 1편의 공식 트레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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