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 : ≪Golconde≫,
골콩드, 1953
작가 : René Magritte
(르네 마그리트),
캔버스에 유채
우측 : ≪The Son of Man≫,
인간의 아들, 1964
작가 : René Magritte
(르네 마그리트),
캔버스에 유채
*[서로 상관없는 사물들을
한 작품에 그려넣어
낯설게 표현하는
'데페이즈망'기법의 대표작]
전형적인 유럽의 붉은 기와지붕
아파트를 배경으로,
중산모를 쓰고,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긴 오버 코트를 입은
남성들이 있다.
자세히 보면 각자 포즈와
표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하늘에서 '비처럼' 내리는 것 같기도,
지면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기도,
그도 아니면 그냥 공중을
하릴없이 부유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겨울비'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
골콩드를 한 번쯤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똑같은 모자를 쓰고
똑같은 코트를 입었지만,
사실 그들은 모두 개성을 가진
각각의 유기체,
즉 개체라고 보아야 할텐데,
이상하게도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서유기의 손오공이나
매트릭스의 스미스 요원처럼
하나의 개체가
셀 수 없이 많은 분신술을 써서
무한 증식하고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전(봉건시대)에
'모자'라는 것은
그 사람의 신분을 상징했고,
싫든 좋든 그 사람의 일생을
결정하는 하나의
징표와도 같은 것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다양성을 존중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거대한 시스템 속의 인간은
왠만큼 자세하고
꼼꼼하게 들여다보지 않으면
위의 그림처럼 다 비슷비슷해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한 면에서,
르네 마그리트는
이 그림을 통해
개성을 존중받지 못한 채
강제적으로 익명성을 부여받으며,
'사는 게 다 그저그런'
우리들의 모습을 날카롭게
직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차갑고, 때로는 을씨년스러운
우리들의 세계로
후두두둑,
보이지 않는 겨울비가 내린다.
10살 인생, 르네 마그리트를 처음 만나다
≪The castle in the pyrenees≫,
피레네의 성(城), 1959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이었나,
나는 자주 놀러가던
동네 누나의 방 책꽂이에 있던
(아마 미술도감이었을 것이다)
책에서 이 작품을 처음 접했다.
날으는 바위인지,
아니면 소행성인지 불분명하지만
이토록 견고한 석성(石城)이
공중에 둥둥 떠있다니!
이 시기의 나는 당연히 작가의 이름도,
르네 마그리트와
살바도르 달리, 막스 에른스트 등을
필두로 한 일련의 화풍
(사실상 문학운동으로 출발하여
예술 전반으로 넓혀진 것이지만)을
'초현실주의(surrealism)'라고
부른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 작품을 보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훅하고 발현된
왠지 모를 서늘함과 두근거림,
그리고 저 석성을 사령탑으로 하는
거대한 바위가 마치
인간의 심장을 닮은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
(지극히 개인적 감상임)
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초현실주의는
프로이트(Freud)의 정신분석의
영향을 받아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의식세계에서 삶을 영위해 가지만,
사실은 의식 저편에 있는
비합리적이고 은유적이며,
심지어 파괴적이기까지 한
무의식이라는 망토를 두르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
심층적이고 심층적이고 심층적인 곳에서
그림이든 글이든 영상이든
어떤 것을 매개로 하여,
정제되지 않은 모습을 세상에 보이곤 한다.
환상, 그리고 현실을 거닐다
좌측 :
≪Le maitre d'ecole≫
교장, 1955
작가 : René Magritte
(르네 마그리트),
캔버스에 유채
우측 :
≪The Mysteries of the Horizon≫,
걸작 또는 수평선의 신비, 1955
작가 : René Magritte
(르네 마그리트),
캔버스에 유채
보통 '초현실주의 화가'라고 불리는 다른 사람들, 일테면 살바도르 달리나 호안 미로 같은 작가들은 말 그대로 기존에 존재하는 현실적인 사물들의 기능과 형상을 '적극적으로' 왜곡시키고 해체시켜, 또다른 형상 - 기하학적 패턴을 포함한 거의 완벽한 허구의 산물 - 을 창조해내었던 반면(물론 초기의 르네 마그리트도 초현실주의에 충실한 화풍을 보였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사물들을 적극적으로 파괴하고 변형시키기 보다는, 그것들을 현실도 아니고 환상도 아닌 묘한 공간에 배치시켜 놓은 듯 하다.
마치 분명히 길을 걷고 있었는데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낯선 골목에 들어서 있거나, 에어프라이어 속에서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어야 할 고등어가 아직도 살아서 펄떡거리거나(게다가 내게 말을 걸어오기까지 하거나),
하루종일 집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는데 지인이 내게 오늘 또다른 장소에서 나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등, 각자의 입장에서 '백일몽'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설명하기 곤란한 '낯설음' 말이다.
개인적으로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다른 초현실주의 작가들에 비해서 정적이고 고요하게 느껴진다.
굳이 말하자면 온갖 상상과 환상, 그리고 에너지의 역동들이 부딪히고 튀어나가지만 정작 외부세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 - 사회적 가면들로 가려져있는 - , 우리들의 심리내적 세계의 외형이라고 할까.
르네 마그리트(1898~1967)
초현실주의자가된다는 것은 데자뷰의 개념을 버리고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 것입니다.
- 르네 마그리트,
사진 및 출처 : 르네 마그리트 공식 홈페이지(벨기에)
벨기에의 화가. 레신에서 출생, 브뤼셀에서 사망. 1927년 쉬르레알리슴 운동에 참가했고, 처음에는 키리코풍의 괴상한 물체나 인간끼리의 만남 등과 같은 풍경을 그렸다.
1936년경부터 이미 데페이스망보다도 고립된 물체 자체의 불가사의한 힘을 끄집어 내는 듯한, 독특한 세계를 조밀(組密)하게 그리기 시작했고, 또한 말과 이미지를 애매한 관계에 둠으로써 양자의 괴리(乖離)를 드러내 보이는 방향도 보여주었다.
전후의 팝 아트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대표작은 『이미지의 속임』(1928~1929, 로스 앤젤레스 카운티 뮤지엄), 『의외의 대답』(1933, 브뤼셀, 왕립미술관), 『복제불가』(1937, 로테르담 보이만스 반 뷰닝겐 미술관), 『사람의 아들』(1964, 개인소장) 등.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편집부)
개인적으로, 예술은 논리적인 해석과 거리가 멀다고 본다. 어떤 작품이 있을 때,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작품의 이면에 어떤 심리기제가 작동하였는지,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교과서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기 보다는, 그냥 각자의 느낌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어떨까.
수수께끼는 던져졌고, 정답은 없다.
≪The art of living≫,
살아있는 예술, 1967
≪september 16≫
9월 16일, 1957
✅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현대미술에서의 팝아트와 그래픽 디자인에 큰 영향을 주었고, 대중매체의 많은 영역에서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는 《겨울비(Golconde)》(1953)이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고,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피레네의 성(Le chateau des Pyrenees)》(1959)과 《올마이어의 성(Almayer's Folly)》(1951)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 출처 : [위키백과], 르네 마그리트
"나는 실제로 테이블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을 그린다."
- 르네 마그리트(1898~1967)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501 위대한 화가, 르네 마그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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