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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정원, Art

✔최초의 상영영화, 열차의 도착(1896년 최초의 영화, 뤼미에르 형제, 눈싸움, 시네마토그래프, 키네토스코프, 에디슨, 영화의 아버지)

by 이야기가 있는 정원 2021.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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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의 도착>, 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L'Arrivee D'Un Train A La Ciotat, 1896 출처 네이버 영화

 

 

1. 최초의 상영영화

 

잘 아시고들 계시겠지만, 인류의 역사상 '최초의 상영영화'는 뤼미에르 형제가 제작한 <열차의 도착, 1896>이다. 1896년이라니! 지금으로부터 무려 125년 전이다. 그러니까 125년 전 사람들에게 이 50초 짜리 '초단편영화'가 상영된 것이다. 

 

설마하니 최초의 영화가 너튜브에 있겠는가 하며 들어가 보았는데, 놀랍게도 있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세계인 너튜브. 

 

단조롭지만 경쾌하면서도 힘이 느껴지는 피아노 반주와 함께, 열차가 플랫폼으로 들어온다. 역무원은 뛰어오고, 영국으로 치자면 빅토리아 시대 복장을 한 사람들은 천천히 열차를 향해 다가간다.

 

곧이어 내리는 승객과 타는 승객들이 뒤얽히는, 우리들이 지하철 역이나 기차역 등에서 하루에도 몇 차례씩 경험하는, 너무나도 익숙한 풍경이 펼쳐지면서 영화는 장엄하게(?) 끝이 난다. 

 

 

 

<열차의 도착>, Arrival Of A Train At La Ciotat, L'Arrivee D'Un Train A La Ciotat, 1896 , 출처 유튜브 https://youtu.be/ExhKGhku3Dw

 

 

정말로 이게 다인 50초짜리 영화(다시 말해 오로지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만 존재하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스토리'가 없는)는, 그러나 세계최초의 움직이는 (흑백)필름이며, 당시의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자신들을 향해 진짜로 열차가 다가오는 줄 알고, 혼비백산했다고 한다.

 

내 눈앞에서 생생하게 움직이는 이른바 '활동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컬쳐쇼크, 또는 문화적 충격이라는 말을 많이들 쓰는데, 그 필름을 본 사람들의 마음이 딱 그랬을지도 모른다.

 

별다른 연출이나 설정이 없는, 그냥 자신들의 흔하디 흔한 일상의 한 장면을 찍었을 뿐인데도, 그들에게는 그것이 충격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왜 내가 나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았을 때의, 그 낯설고 어색한 느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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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질렀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 이상으로 무서웠겠지만 짐짓 센 척하며 '저건 진짜가 아냐!' 라며 - 물론 사람들의 눈앞에 보여지고 있는 것은 '필름'이지만 카메라에 담은 것은 진짜 열차이니 '진짜'면서도 '진짜가 아니'라고 해야할까 - 큰 소리로 웃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대로 줄행랑을 놓았을 것이다. 

 

역으로 말해서 최초의 상영영화인 <열차의 도착> 이후 125년간, 영화는 흑백에서 총천연색으로, 아날로그 필름에서 디지털로, 그야말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였다.

 

마치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을지도 모를) 구식열차가, 현재는 프랑스의 고속열차인 TGV로 바뀌어 있듯이.

 

만약 현재의 TGV를 영상으로 찍은 다음, 타임머신을 타고 1896년 즈음으로 돌아가, 그 영상을 틀어준다면 사람들은 어떤 표정을 짓게될까. 

 

 

2. 뤼미에르의 또다른 필름

 

계속해서 너튜브를 뒤져보자. 뤼미에르 브라더스는 <열차의 도착>만 제작한 것이 아니다. 아래의 영상은 <눈싸움(Snowball Fight, 1896)>이라는 제목이 붙은 뤼미에르의 또다른 필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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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싸움>, Lumiere. Snowball Fight, 1896 출처 : 유튜브 https://youtu.be/KL0th6vWe-8

 

 

당시 프랑스 리옹의 거리에서, 뜬금없이 사람들이 눈싸움을 시작한다.

 

신사숙녀 할 것없이, 사람들은 닥치는대로, 보이는대로 상대에게 뭉친 눈을 집어던지며 즐거워하고 있다. 

 

포물선을 가르며 날아가는 눈덩이들. 사람들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남성에게도 여지없이 눈덩이를 던지고, 남성은 곧 자전거와 함께 바닥에 제대로 넘어진다.

 

넘어졌던 남성은 눈세례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자전거를 탄 남성이 사라진 뒤에도 사람들은 눈싸움을 멈출 기미가 없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전작인 <열차의 도착>과 비교해 보았을 때, <눈싸움>은 '눈싸움'이라는 나름대로의 스토리나 설정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이며, 후에 이 (흑백)필름은 영상의 속도가 조정되고, 컬러로 바뀌어 다듬어지게 된다(너튜브 참조).

 

으음, 이렇게 보니 재조정된 필름은 마치 현재의 배우들이 그 당시를  '재연'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전거를 타고 오는 남성(멀리서 오고 있는데)의 의복에 이미 눈이 많이 묻어있는 것으로 보아, '연출'의 의도를 보다 명확하게 느낄 수 있다(어쩌면 '저 앞'에서 1차로 눈싸움을 즐기고 온 것인지도 모르지만). 

 

겨울이 오고 눈이 많이 내리면 누구나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의 유혹을 느끼게 마련이다. 눈싸움을 하는 동안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진난만한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으므로, 이 집단 눈싸움에 관한 활동사진을 지켜보았던 당시의 사람들은 매우 즐거워했으리라. 

 

 

3. 뤼미에르 형제

 

 

* 오귀스트, 루이 뤼미에르 형제, 사진출처 : 위키백과

 

뤼미에르 형제는 프랑스의 발명가 형제 오귀스트 마리 루이 니콜라 뤼미에르(프랑스어: Auguste Marie Louis Nicholas Lumière, 1862년 10월 19일 - 1954년 4월 10일)와 루이 장 뤼미에르(프랑스어: Louis Jean Lumière, 1864년 10월 5일 - 1948년 6월 6일)를 가리킨다.

기계 제작자인 동시에 제작・흥행・배급 등 현재의 영화제작 보급형태의 선구적 역할을 한 영화의 시조이다.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하여 이를 이용하여 처음으로 영화를 찍었다.

주요 작품으로는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Sortie des Usines Lumière à Lyon)》 , 《열차의 도착(L'Arrivée d'un Train en Gare de la Ciotat)》 등이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뤼미에르 형제

 

시네마토그래프(시네마토그라프) :

시네마토그라프는 움직이는 영상(映像)을 스크린 위에 영사(映寫)하는 장치, 또는 그것을 사용하여 영사하는 장소를 뜻한다. 1895년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최초의 영화촬영 겸 영사기에 시네마토그라프라는 명칭이 사용되었다. 이후 뤼미에르 방식의 장치로 영화를 영사하는 장소를 의미하는 말로도 쓰였다.

그러나 시네마토그라프라는 단어는 시네마토그라프가 첫 상영되기 3년 전에 이미 태어났다. 1892년 레옹 기욤 불리가 연속사진을 영사하는 광학기계의 발명특허를 내면서 그리스어 움직임(kinema)과 기록하다(grafhein)를 합성해 이 용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cynematograghe로 등록했다가 다음해 새로 특허 등록을 하면서Y를 i로 고쳤다.

하지만 이 단어가 너무 길어서 얼마 안 가 시네마(cinema)로 줄여 부르기 시작했다.

뤼미에르 형제의 새로운 발명품 시네마토그라프는 1895년 12월28일 프랑스 파리 카퓌신가 14번지 그랑카페 지하 '인디언 살롱'에서 파리 시민에게 유료로 공개됐다.

이 날 상영된 영화는 시네마토그라프로 첫 촬영한 영화 <공장 문을 나서는 노동자>를 비롯하여 <아이의 점심시간>, <바다에서 헤엄치는 사람들>, <카드놀이>, <물 뿌리는 사람> 등 10편으로 각각의 상영시간은 1분 정도(전체 상영 시간 25분)였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시네마토그라프 [Cinematographe]

(문학비평용어사전, 2006. 1. 30., 한국문학평론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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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뤼미에르 형제가 어느 날 갑자기 시네마토그래프라는 기계를 떡하니 발명한 것은 아니다.

 

그것의 기초원리이자 모태가 된 것은 유명한 미국의 발명가인 토머스 에디슨(과 윌리엄 딕슨(William Dickson)이 공동으로 발명한)이 1889년 창안한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 였다고 한다.

 

시네마토그래프(Cinématographe)는 필름카메라이면서 필름 영사기, 그리고 인화기이기도 하다. 1890년대에 발명되었다.

발명한 사람에 대해 논란이 있다. 어떤 이는 프랑스의 발명가 레옹 불리가 1892년 2월 12일에 특허를 낸 "Cinématographe Léon Bouly"라고 한다.

특허 유지료가 없어서 다음해 뤼미에르 형제의 엔지니어들이 특허를 샀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견해는 루이 뤼미에르가 처음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했고, 뤼미에르 형제가 특허를 공유했다는 것이다. 

* 출처 : [위키백과], 시네마토그래프 

 

 

이 초기의 영화 영사 장치는 시네마토그래프와 달리 '한 번에 한 사람만'이 장치 상부에 있는 작은 창 - 일종의 뷰 파인더 같은 - 을 통해 (20~30초 정도의 짧은 영상을) 들여다보는 형태로 설계되었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키네토스코프는 '현대의 영사기'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쉽게 말해서 눈의 착각을 이용, 필름을 고속으로 돌려서 '움직이는 상을 만들어주는 것'이다('프로토타입의 영사기'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키네토스코프의 모습, 출처 위키백과

 

 

시네마토그래프(시네마토그라프)의 모습, 사진출처 위키백과

 

 

이에 비해 뤼미에르 형제가 발명한 시네마토그래프는 움직이는 필름을 스크린 같은 곳에 크게 비추어서, 보더 많은 관객들이 감상할 수 있게 만든, '개량형 영사기'이자 현대의 영사기에 가까운 형태라고 할 수 있겠다.

 

비록  시네마토그래프를 발명한 당사자들은 일련의 상영영화들이 대중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흥행 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자, 얼마 후 영화에서 손을 떼고 평생을 컬러 및 입체 사진 연구에 몰두하였다지만, 

 

만약 뤼미에르 형제가 없었더라면 125년에 이르는 시간동안 눈부시게 발전한 영화예술을 일컬어 흔히 '시네마'라고 부르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관객들이 극장 등에서 대형화면으로 영화를 즐길 수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한 의미에서 뤼미에르 형제에게 "영화의 아버지"라는 호칭이 붙은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뤼미에르 형제에게 경의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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