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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정원, Art

✔케이 세이지, 불안과 고립을 그리다(초현실주의 여성화가, Kay Sage, 이브 탕기, 조르조 데 키리코,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 항해, 침묵의 여백, 정신분석, 꿈, 무의식, 상징)

by 이야기가 있는 정원 2021.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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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세이지(1898~1963)의 여권사진(1922년). 출처 위키백과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여성. 이 사람은 초현실주의 경향의 여성화가이자 꿈과 무의식, 그리고 고립과 공허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케이 세이지(Kay Sage)'이다. 

 

오늘은 그녀의 삶과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1. 케이 세이지의 삶

 

 

흔히 '케이 세이지'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녀의 본명은 '캐서린 린 세이지(Katherine Linn Sage , 1898~1963)'이다. 케이는 미국의 뉴욕 주 올버니에서 부유한 목재상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헨리 세이지(Henry M. Sage)는 주 하원의원을 거쳐 후에 5선의 주 상원의원까지 되는 인물이었고, 어머니인 앤 윌러 세이지(Anne Wheeler (Ward) Sage)는 그녀가 태어난 직후 남편과 큰 딸을 미국에 남겨두고 그녀와 함께 유럽(이탈리아, 프랑스 등등)에서 생활하면서 여행을 계속했다.

 

케이의 아버지와 어머니, 헨리와 앤은 1908년 이혼하지만 헨리는 계속해서 전처와 딸(케이)을 부양했고, 케이도 헨리와 새엄마와 가끔 교류하고 편지를 쓰는 등,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어머니의 영향으로 인해 케이는 프랑스어와 이탈리어 등에 능통하게 되었고, 1920년대에는 그때까지 취미로만 그리던 그림을 배우기 위해 로마에 있는 라팔로에 머물렀다.

 

1923년 무렵, 케이는 이탈리아의 왕족(왕자) 라니에리 디 산 파우스티노(Ranieri di San Faustino)을 만나 1925년에 결혼했지만, 이후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왕녀의 신분을 버리고 파리로 왔다.

 

파리로 온 케이는 초현실주의자들과 교류하게 되는데, 이때 만난 이브 탕기(Yves Tanguy)와 함께 뉴욕으로 건너오게 된다. 1940년 결혼한 두 사람은 세계 제 2차대전이 끝난 후 낡은 농장을 얻어 그림을 그리며 그곳에서 머문다.

 

두 사람 모두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에게 큰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케이는 자신만의 고유한 시각인 불안과 고립을 작품에 담게 된다.

 

1955년 탕기가 갑작스런 뇌출혈로 사망하자, 케이는 슬픔과 고독 속에서 꾸준히 그림을 그리고, 시집도 출간하지만 탕기의 죽음으로 인한 마음의 황폐함과 백내장으로 인한 시력 감퇴는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다(나중에 백내장 수술을 받지만 결과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후 탕기의 작품 목록을 만드는데 주력했던 그녀는 목록이 완성되자 1963년 자살로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유언에 따라 1964년 탕기의 고향인 브류타뉴 연안의 물에 케이와 탕기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가 묻힌다. 

 

* 출처 및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케이 세이지

[위키백과 영어], 케이 세이지

 

 

 

이브 탕기

전직 상선 선원이었던 이브 탕기는 1923년 파리의 한 화랑에서 조르조 데 키리코의 <아이의 뇌>(1914)를 보고서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다음해,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초현실주의 그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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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조 데 키리코

그리스 출신의 형이상학적인 화가. 음울하고 몽환적인 그의 초기 작품들은 막스 에른스트, 살바도르 달리, 르네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조르조 데 키리코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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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케이 세이지의 작품세계

 

 

잘 알려진대로, 케이 세이지의 예술적 성숙함은 이브 탕기와 함께 했던 기간인 1940년~1955년 사이에 절정을 이루었는데, 대표작으로 꼽히는 《침묵의 여백, Margin of Silence, 1942》이나 《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 Tomorrow is Never, 1955》 등이 바로 이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케이 세이지,《침묵의 여백, Margin of Silence, 1942》 사진 출처 위키백과 All-Art.

 

케이 세이지《내일은 결코 오지 않는다, Tomorrow is Never, 1955》 사진 출처 위키백과 All-Art.

 

 

 

1946년에 두 사람은 미국 코네티컷 주 우드버리의 낡은 헛간을 개조하여 스튜디오로 꾸몄고, 프랑스와 미국 미술계의 많은 친구들이 그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 "그들의 큰 집은 수많은 초현실주의 예술 작품과 우리에 박제된 까마귀와 에스키모 가면을 포함하여 다양하고 특이한 물건으로 장식되었습니다. "

* 출처 : [위키백과] 영어, 케이 세이지

 

 

 

두 사람이 함께 한 약 15년의 기간동안, 케이의 작품들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확고한 명성을 얻고 전시회에 초청되었으며, 주요 미술관에 판매되었지만, 그녀보다 훨씬 유명했던 이브 탕기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이것은 그녀가 남편에 비해 실력이 모자랐다거나 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당시 남성중심의 예술계에서 바라보는 케이의 모습은 뭐랄까, 누군가의 뮤즈, 혹은 동반자로서의 삶을 수행하는 '그림 실력도 뛰어난 여성' 정도로, 지극히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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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는 해도 케이와 이브 탕기는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 즉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키는 존재였던 것 만큼은 분명하다. 

 

📝 "그녀(케이)는 탕기의 치명적인 뇌졸중 후 약 한 달 후에 그의 오랜 친구인 Jehan Mayoux에게 "이브는 모든 것을 이해하는 유일한 친구였습니다."라고 썼습니다."

* 출처 : [위키백과] 영어, 케이 세이지

 

 

이브 탕기가 죽은 후인 1956년에 내놓은 또 하나의 대표작, 《항해, 르 파사쥬, Le Passage》를 보면 이제는 혼자 남겨졌다는 케이의 고독감과 절절함이 그대로 묻어나온다.

 

 

 

케이 세이지,《르 파사쥬, Le Passage, 1956》 사진 출처 All-Art.

 

 

무너져 버린 폐허 위에 멍하니 앉아서 잿빛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여성. 이것은 그녀가 꾸는 꿈일까, 아니면 그녀의 마음을 상징하는 형상들일까. 

 

초현실주의만큼 무의식과 꿈, 그리고 상징과 밀접한 사조도 또 없을 것이다. 누구나 꿈속에서 현실과 유리된, 그 의미를 알 수없는 형상과 마주한 적이 있을 것이다. 

 

케이의 작품은 특히 초현실주의 화풍 중에서도 가장 추상적인 것으로 손꼽히며, 가만히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황량하고 공허함만이 감도는 폐허가 연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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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지의 그림은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 중 가장 추상적이며, 꿈과 무의식으로 가득 찬 상징적인 형상을 채택하였다. 그는 날카롭고 가시가 덮인 형태, 슬레이트 같은 표면, 차분하게 가라앉은 우울한 빛을 선호했기 때문에 그의 풍경 그림은 공허하고 황량해 보인다.

충격적일 정도로 섬뜩한 미지의 도시 풍경을 묘사한 작품에서는 미래에 대한 부정적이고 불안한 그의 시선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이러한 황량한 경치에 대하여 인간의 주거지가 약탈된 것이라고 밝혔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케이 세이지

[Kay Sage]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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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말했듯, 우리는 현실적 불안, 신경증적 불안, 도덕적 불안이라는 두려움에 종종 시달린다.

 

바로 생존이라는 대전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케이의 그림은 미래를 다루고는 있지만, 그 미래는 암울하고 불안하며,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그녀의 전기 작가 중 한 명인 Judith Suther는 다음과 같이 썼다.

 

📝 "나는 Kay Sage를 초현실주의자라고 부릅니다. 그녀의 그림이 André Breton과 그의 그룹이 높이 평가하는 불안한 역설과 환각적 특성에 반향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 . . 더 근본적으로, 나는 Sage를 초현실주의자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초현실주의 정체성에 대한 그녀의 충성이 예술가로서의 그녀의 자아 이미지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 출처 : [위키백과], 영어, 케이 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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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 명의 초현실주의 여성 예술가, 레메디오스 바로에 대한 참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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