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는 '고양이 화가'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루이스 웨인(Louis William Wain, 1860~1939)의 작품 중 하나이다.
활동 초기에는 잡지의 삽화로 동물이나 자연 풍경들을 그렸으나, 결혼 3년 만에 세상을 떠난 아내 에밀리 리처드슨(Emily Richardson)이 길에서 구조한 '피터'라는 고양이를 기르며 안정감을 얻어가는 모습을 보고 그녀에게 고양이 그림을 자주 그려주게 되었고, 후에는 고양이를 작품의 주된 테마로 하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작품은 귀여운 고양이에서 사람처럼 옷도 입고 스포츠도 즐기는 의인화된 모습의 풍자화로 변모해 갔으며, 나중에 정신질환을 앓기 시작하면서 위의 그림처럼 추상화된 배경과 공존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마침내 고양이가 아닌 어떤 도안 또는 패턴 그 자체처럼 되었다.
그는 당대 가장 유명했던 화가 중 한 사람이었지만 이른 나이부터 가족을 부양해야 했고, 게다가 사업적인 감각이 뛰어나지 못해 자신의 그림을 헐값에 넘기거나 잘못된 투자를 하기 일쑤여서 늘 가난에 시달렸다.
루이스 웨인의 그림이 마치 추상적인 패턴처럼 해체되고 변해갔던 이유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신 질환(조현병)이나 아스퍼거 증후군, 톡소플라스마 감염증 등 여러 설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까지 정립된 것은 없다.
개인적으로 그가 앓았던 질병보다도 더 눈길이 가는 것은 그가 동물, 특히 고양이를 사랑하고 고양이와 평생을 지냈다는 것(그는 1898년과 1911년 국제 고양이 클럽의 의장을 역임하였고, 고양이 보호를 위한 협회(Society for the Protection of Cats), 동물 생체해부 반대 협회(Anti-Vivisection Society) 등의 동물 자선 단체에서 활동하였다)이다.
다시 맨 위의 그림으로 돌아가서, 백 년도 더 지난 그림이지만 세월이 응축되어 있는 듯한 고양이의 보석 같은 눈망울에, 웃는 듯 새초롬한 듯한 핑크색 입술에, 홀린 것처럼 빠져들어가지 않는 집사는 없을 것이다.
또한 아무리 세월이 흐른다 해도, 마음의 주머니 한 구석에 언제나 외로움을 달고 사는 인간에게 반려동물만큼 좋은 친구가 되어주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고양이는 탁월한 능력이 하나 있다. 외톨이 기질이 있는 사람, 삶의 고단함을 몸소 겪고 있는 사람을 찾아내는 재주가.
꿈속에서, 또는 백일몽 속에서 나의 고양이들은 내게 언제나 말을 건다.
잘 잤어? 오늘 기분은 어때?
나는 고양이처럼 으응, 하고 대답인지 아닌지 모를 소리를 낸다.
꿈속에서, 또는 백일몽 속에서 나는 나의 고양이들과 노랗게 익은 가을의 거리를 발맞춰 걸어가기도 하고, 파도가 잔잔하게 밀려드는 바닷가에 덩그러니 놓인 흔들의자에 함께 앉아서 종일 노을을 바라보기도 한다.
날 왜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봐?
고양이가 묻는다.
널 내 눈에 담기 위해서야. 카메라처럼 이 순간을 영원히 가두기 위해서.
그러게, 오빠 눈 속에 내가 보이네.
바다 거품이 나의 발을 적신다.
"그는 고양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는 고양이 양식, 고양이 사회,
고양이 세계 전체를 창조하였다.
잉글랜드의 고양이가 루이스 웨인의 고양이처럼
보지도 살지도 않는 것은 그들에게 부끄러운 일이다."
- H. G. 웰즈
출처 : 위키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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