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쓰여 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입니다.
따라서 시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1월
1월이 색깔이라면
아마도 흰색일 게다.
아직 채색되지 않은
신神의 캔버스,
산도 희고 강물도 희고
꿈꾸는 짐승 같은
내 영혼의 이마도 희고
1월이 음악이라면
속삭이는 저음일 게다.
아직 트이지 않은
신神의 발성법發聲法.
가지 끝에서, 풀잎 끝에서,
내 영혼의 현絃 끝에서
바람은 설레고,
1월이 말씀이라면
어머니의 부드러운 육성일 게다
유년의 꿈길에서,
문득 들려오는 그녀의 질책,
아가, 일어나거라.
벌써 해가 떴단다.
아, 1월은
침묵으로 맞이하는
눈부신 함성.
- 오세영, 《1월》, 전문
1월도 벌써 중순으로 접어든다.
무계획이 계획이지 뭐, 하면서 해마다 찾아오는 1월을 대충 보내려는 버릇은 올해도 또 되풀이되고 있다.
눈앞에 닥치는 대로만 어떻게 살고자 하면 남는 것은 그저 일희일비하거나 무기력해지는 것밖에 없는데, 왜 나는 그러한 버릇을 고치지 못하는 것일까.
나름대로 어설프나마 계획도 세워보고,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으며, 그렇다면 대안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차분하게 분석해 볼 필요도 있는데도 말이다.
아무래도 올해 역시 이런저런 핑계와 반성으로 지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새해 아침에
인생은 더러 쓸쓸해도
참 아름다운 것
벌써 오십 년을
넘게 살고서도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아직도 마음 한 구석
미묘한 떨림이 있는 것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이
꿈틀대기 때문
내가 보듬어야 할 가족들
내가 사랑해야 할 사람들 생각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은다
- 정연복, 《새해 아침에》, 전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새해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소원처럼 거창한 어떤 것은 없다고 대충 얼버무린 다음,
그 말의 끝에 종종 투닥거리며 다투기도 하지만,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그 순간만큼은 별 다른 걱정없이 평온하고 안온한 한 때를 보내고 싶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몇 가지 덧붙이자면, 꽤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올해는 말하는 시간보다 듣는 시간을 늘이며, 몇 마디의 말도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숙고하고 또 숙고하도록 노력하겠다.
속으로든 겉으로든 참 쉽게도 저질렀던 경멸이나 푸념, 이런 것들도 무의식의 영역으로 그냥 잠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첫 마음이야말로 중요한 것이니까 말이다.
첫 마음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를 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0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 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 정채봉, 《첫 마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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