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쓰여 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입니다.
따라서 대부분 시의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송년의 노래
늘
먼저 떠나는 너는
알지 못하리
한 자리에
묵묵히 서서
보내야만 하는 이의
고독한 가슴을
바람에 잉잉대는
전신주처럼
흰 겨울을 온몸에
휘감고 서서
금방이라도
싸락눈이 내릴 것 같은
차가운 하늘일랑
온통 머리에 이고
또 다른
내일을 기다리고 섰는
송년의 밤이여,
시작은 언제나
비장하여라!
- 홍수희, 《송년의 노래》, 전문
어느새 송년의 밤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오늘은 크리스마스이브다.
몰려드는 인파가 부담스러워 연말이 가까울수록 밖으로 잘 나다니지 않는 탓에, 언제부턴가 색색으로 꾸며진 대형 크리스마스트리도, 그 아래를 쉴 새 없이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도, TV 화면으로만 지켜보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이맘때 아무리 사람들로 넘쳐난다고 해도 굳이, 꾸역꾸역 지하철을 타고 서울 한복판을 찾아 온몸에 연말의 분위기를 묻혀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한없이 가벼웠던 주머니를 포함해 늘 고만고만한 나의 처지도, 짧은 연말이 가고 새해가 오면 다 괜찮아질 거라고 여겼던 그때.
그렇지만 지금은 따뜻한 방안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꾸벅꾸벅 조는 처지가 되었으니, 인체의 시계는 참 빨리도 흘렀다.
한 해가 다시 떠나려고 하고 있다. 거리는 썰렁하고, 마음은 그보다 더 춥다.
송년 엽서
함박눈 내리는 날
숫눈 밟으며
너를 생각해
순결의 눈부심
티 한 점 없는 마음으로
잡았던 손
그 예쁜 추억이
한 해 더 밀려가는
이즈음
아직도
스무 살 그 언저리
어제처럼 생생해
- 목필균, 《송년 엽서》, 전문
많은 눈이 내리는 날이면 가끔 상상해보고는 한다.
눈이 내리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적어도 발목 아래까지만 새하얀 눈으로 덮이는 그 잠시 만이라도, 열기 또는 치기로 똘똘 뭉쳐 있던 젊은 날의 나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저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많은 가능성의 덩어리였던, 그 결과가 지금 별다른 것을 이루지도 못한 채 초라하기 그지없는 현재라고 할지라도,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눈이 그치고 길이 끝나는 곳에 나의 작은 집이 보인다.
머리카락은 잿빛으로 변하고, 무릎과 발목은 시큰거리며, 앉으나 서나 누우나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는 중년의 꼰대는 다시 하루를 마감한다.
송년의 때라 그런지, 어깨가 더욱 무겁고 뻐근하다.
송년의 시 2
겨우 한 걸음만 떼었을 뿐인데
외롭고 고단한 별똥별일수록
짙은 음영이 스며들어
한없이 늘어지는 것이다
속히 어둠을 잘라내고
본연을 찾아
숭고한 신성에라도 기대어
가까이 다가가야 하리라
올 한 해
사랑했다는 무게보다
행복했다는 부피보다
더욱더 부풀어올라 존재했다는
그것만으로도 흐뭇하였어라
씁쓸한만큼 화사하기도 하였어라
- 임영준, 《송년의 시 2》,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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