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쓰여 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입니다.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모든 들풀과 꽃잎들과 진흙 속에 숨어 사는
것들이라고 할지라도,
그것들은 살아 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신비하다
바람도 없는 어느 한 여름날,
하늘을 가리우는 숲 그늘에 앉아보라
누구든지 나무들의 깊은 숨소리와 함께
무수한 초록잎들이 쉬지 않고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미 지난 시간이 아니라 이 순간에,
서 있거나 움직이거나 상관없이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오직 하나,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들은 무엇이나 눈물겹게 아름답다
- 양성우,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전문
손바닥만 한 거실에서 늘어지게 낮잠을 청하고 있는 고양이들과, 아무리 힘들어도 현관 앞 중문에 들어서며 활짝 웃어주는 아내가 사랑스럽다.
왠지 소리 내어 말하면 흩어져 버리고 달아나 버릴 것만 같아, 마음속으로 뇌까리고 눈으로 말하는 그 말.
미안하고, 애달프고, 그리고 고마움으로 마음은 가득차지만 선뜻 입술을 움직여 말하기 어려운 그 말. 하지만 지금 해야만 하는 그 말.
삶이란 지겹도록 일상을 반복하고 또 리셋하는 일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살아서 온전히 하루를 맛본다.
여름의 절정 아래, 머리는 무겁고 땀은 줄줄 흐르건만 사랑하는 존재들을 생각하며 버티고, 또 버텨본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잊힐, 그래도 미약하나마 조금이라도 빛나던 시절을 몰래 일부러라도 기억해 주고 싱긋 웃어줄, 어쩌면 단 한 사람.
살고, 살고, 끝까지 살아서 단 한 사람에게라도 아름다웠던 존재로 기억되고 싶다.
놓아라
우선 네 손에 쥐고 있는 것 부터 놓아라
네가 보고 있는 것을 놓고
네가 듣고 있는 것을 놓아라
내친김에
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놓아라
무엇보다도 네가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놓아라
그 위에 너 자신을 놓아라
비로소 편안해질 것이다
- 나태주, 《놓아라》, 전문
예를 들어 부모가 자식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선뜻 내려놓고 가슴 뛰는 일로 갈아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실 것이다.
내려놓는다는 것, 그것이 쉬우면 인생이 그렇게 복잡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시를 '내려 놓는다'의 관점으로 보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가 돌볼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남을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평생을 바치는 것도 물론 숭고하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이다. 나 또한 부모의 희생으로 인해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물론 오로지 나만을 위해서 사는 것도 이기주의의 한 방편일 수 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나를 위할 수 있고, 나를 돌볼 수 있는 존재는 나뿐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언제나 나만을 내세우고, 모든 것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여기는 것도 문제이지만, 언제나 나는 없고, 마치 나를 잊은 것처럼 살아간다면 그 또한 서글픈 일이다.
나를 위해 마음의 빈틈을 조금이나마 비워두는 것, 그것도 나름 괜찮지 않은가.
화
욕을 차마 입밖으로 꺼내 던지지 못하고
분을 못 이겨 씩씩거리며 오는데
들국화 한 무더기가 발을 붙잡는다
조금만 천천히 가면 안 되겠냐고
고난을 참는 것보다
노여움을 참는 게 더 힘든 거라고
은행 잎들이 놀란 얼굴로 내려오며
앞을 막는다
욕망을 다스리는 일보다
화를 다스리는 게 더 힘든 거라고
저녁 종소리까지 어떻게 알고 달려오고
낮달이 근심 어린 낯빛으로 가까이 온다
우리도 네 편이라고 지는 게 아니라고
- 도종환, 《화》,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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