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쓰여 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입니다.
너는 나인 것 같다
우리는 아직 조금 남아 있다
없는 것처럼
우리는 아직 덜 사라졌다
섭섭하지만
내가 가진 것은 너 또한
네가 가진 것은 나 또한
확인할 수 없지만 가지고 있다
나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믿음을 벗어나는
나의 이상한 행동이 너의 이상한 행동을 닮아있다
너는 운다 나는 우는 너를 본다
나는 운다 너는 우는 나를 본다
우리가 끝까지 멈추지 못하고
서로에게 민망한 장면을 하나씩 상영할 때
우리가 서로 미워하면서도 웃고
우리가 서로 만나기 싫으면서도 마주 앉아
늘어진 시간을 톡톡 부러뜨릴 때
너는 운다 네가 모르는 곳에서
나는 운다 내가 모르는 곳을 만들면서
나는 너인것 같다
미안하지만
너는 나인 것 같다
불쾌하겠지만
- 안주철, 《너는 나인 것 같다》, 전문
💬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2002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 『다음 생에 할 일들』 『불안할 때만 나는 살아 있다』가 있다.
* 출처 : [교보 문고], 작가 소개, 안주철
단순하게 말해서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듯, 아니면 내 마음 속에 지나치게 깊이 들어가 내 마음 속의 마음과 대화를 하는 듯한 시다.
시인의 의도가 어떤 것이든 간에, 나를 완전하게 사랑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데 타인을 어떻게 사랑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절친이나 가족을 떠올리면 쉬울 것이다. 사랑하지만 그 못지않게 미운 감정도 공존하는.
어떤 이는 내게 말했다. '사랑하니까 미워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어쩌면 사랑이란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모습이 아닐까, 그러면서 입으로는 사랑을 뇌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누군가를, 혹은 나를 바라보는 마음은 이렇게도 복잡하다.
오로지 달콤하고, 오로지 쓰고, 오로지 행복하기만 한 삶은 없는 것이다.
걱정 많은 날
옥상에 벌렁 누웠다
구름 한 점 없다
아니, 하늘 전체가 구름이다
잿빛 뿌연 하늘이지만
나 혼자 독차지
좋아라!
하늘과 나뿐이다
옥상 바닥에 쫘악 등짝을 펴고 누우니
아무 걱정 없다
오직 하늘뿐
살랑살랑 바람이
머리카락에도 불어오고
옆구리에도 불어온다
내 몸은 둥실 떠오른다
아 좋다!
- 황인숙, 《걱정 많은 날》, 전문
걱정 없어 보이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부럽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보다 생활도 안정되고, 널찍한 평수의 자기 집도 있고, 연봉도 꽤나 괜찮은 사람이니 당연히 걱정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어떤 계기로, 그 사람에게 나의 이런저런 부러움을 담아 '당신은 걱정이 없어서 좋겠다'라고 슬며시 운을 띄워 보았는데, 뜻밖에도 나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고 말았다.
한마디로 그 사람도 나 이상으로 걱정이 많았던 것.
물론 나와는 종류가 다른 걱정들이지만, 그 강도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조금은 덜해지는 나와는 달리 더 무겁고, 더 치열하고, 더 복잡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차라리 내가 더 부럽다고 했다.
어쩐지 비꼬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더 이상은 파고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 걱정을 묘사할 때 그 사람의 표정에 떠올랐던 불안은 실로 무시무시했다.
과거에 실제로 경험한 것은 물론 경험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것까지, 걱정의 꼬리는 길고도 끈질기다.
티벳의 속담, 격언 중 한 번 쯤 들어보았을 유명한 말이 있다.
어차피 해결될 일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하지 못할 일은 걱정해도 소용없다.
- 티벳의 격언, 속담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걱정이나 불안은 우리를 위험으로부터 구해주는 일종의 인지적 안전 장치이므로 실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정말 어렵지만, 나부터 낮에도 밤에도 꺼지지 않는 걱정의 스위치를 끄고, 생각의 저편으로 날려보내는 연습을 하고자 한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다.
고무동력 비행기
아이들이 차례대로 미끄럼틀에 올라
고무동력 비행기를 날립니다
고요한 날개들이
작은 얼굴들 위로 흘러 다닙니다
마치 사물들을 멀리에
놓아주는 법을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 조원규, 《고무동력 비행기》, 전문
💬 1963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서강대 독문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였다.1990년부터 1997년까지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에서 신비주의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였다.
1985년 <<문학사상>>을 통해 등단하였고 시집으로는 『이상한 바다』(1987), 『기둥만의 다리 위에서』(1989), 『그리고 또 무엇을 할까』(1993)를 출간하였다.
그밖에 산문집 『꿈 속의 도시』와 역서로는 『유럽의 신비주의』, 『새로운 소박함에 대하여』, 『몸, 숭배와 광기』, 『호수와 바다 이야기』, 『노박씨의 사랑 이야기』 등이 있다.
* 출처 : [교보 문고], 작가 소개, 조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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