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쓰여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이며,
시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미안하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 정호승, 《미안하다》, 전문
사랑은 계절과도 닮아있다.
봄처럼 훈훈하고 상큼한 사랑, 여름처럼 뜨겁게 불타오르는 사랑, 가을처럼 쓸쓸하고 처연한 사랑, 겨울처럼 춥고 긴 터널 같은 사랑 등등.
어디 그뿐인가, 차마 말할 수 없어 더 아픈 사랑, 나는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일방향이었던 사랑, 찾아 헤맬수록 꽁꽁 숨어서 나타나지 않는 사랑.
사랑은 기쁨이자 고통이다.
만약 한없이 기다리는 사랑을 하고 있다면, 길에 가로막혀서, 산에 가로막혀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있다면,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고 있을 수도 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그래서 그 산과 그 길의 끝이 비로소 보인다면,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당신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씨앗
씨앗 하나
손바닥에 올려놓으면
포동포동 부끄럽다
씨앗 하나의 단호함
씨앗 한 톨의 폭발성
씨앗은 작지만
씨앗의 씨앗인 희망은 커
아직 뜨거운 내 손바닥도
껍질로 받아주는
씨앗은 우주를 이해한
마음 한 점
마음껏 키운 살
버려 우주가 다 살이 되는구나
저처럼
나의 씨앗이 죽음임 깨달으면
죽지 않겠구나
우주의 중심에도 설 수 있겠구나
씨앗을 먹고 살면서도
씨앗을 보지 못했구나
씨앗 너는 마침표가 아니라
모든 문의 문이었구나
- 함민복, 《씨앗》, 전문
하늘을 향해 크게 뻗어 있는 저 아름드리나무도 원래는 작은 묘목, 또는 한 톨의 씨앗이었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도, 모두 작고 연약한 아이였고 엄마의 뱃속에서 '씨앗'으로 자랐다.
씨앗은 죽음과 삶, 그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다.
여기서 죽음이라는 것은 생물학적 사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저 씨앗이 커다란 아름드리나무가 되기까지 얼마나 큰 어려움과 고통을 견디고(즉 죽을 것처럼 힘는 상황을 이겨내고) 바닥을 치고 오를 것인지까지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씨앗이 자라서 무엇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한없는 기대와 긍정을 품은 희망의 상징과도 같다.
열심히 노력하다가도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 노력한다면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 진병관, 《위로의 미술관》 중에서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가 남긴 말
헤어질 때 더 다정한 쪽이
덜 사랑한 사람이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나는 더 다정한 척을, 척을, 척을 했다.
더 다정한 척을 세 번도 넘게 했다.
안녕 잘 가요. 안녕 잘 가요.
그 이상은 말할 수 없는 말들일 뿐,
그래봤자 결국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
- 이제니, 《후두둑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일 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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