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강렬하고 거친 터치로 덧발라져 있는 검푸른 하늘과 강, 그 사이로 찬연하게 빛나는 무수한 별빛. 눈이 시릴 정도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보이는 별빛은 쏟아져 지상으로, 강물 위로 가만가만 발을 내딛는다.
별빛과 강가의 건물들, 그리고 매력적인 풍경의 한 귀퉁이에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걷고 있는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말할 수 없이 따뜻한 분위기가 보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해진다.
팔짱을 낀 두 사람의 관계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거친 붓 터치로도 감출 수 없는 미소. 둘은 아마도 연인일 것이다.
그가 그린 이 밤풍경은 고흐가 사랑했던 남프랑스의 마을(흔히 프로방스 지역이라고 부르는), 아를(Arles)에 위치한 론 강(Rhone River)이다.
고흐가 작품을 그린 당시에도 표현되어 있는 론 강가의 보트들은 현재 크루즈로 변해서 여행객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아를이 속한 프로방스 지역은 과거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갈리아 나르보넨시스에 기원을 둔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북서부 일대를 일컫는 것이다(아를에는 고대 로마의 원형 경기장이 남아 있다).
1. 고흐가 사랑한 마을
아를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이곳 아를에서 이른바 미술 공동체를 꿈꾸었으나 그나마 유일하게 초대에 응했던 한 사람인 고갱과 극심한 견해차(또한 성격차)로 인해 결별하게 된다.
그리고 고갱과의 결별 후인 1889년, 그는 스스로 생 레미의 요양원에 들어갔다.
아를에 머문 1년여 동안 고흐는 200여 편의 작품을 쏟아내듯 그렸으며, 우리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걸작들이 바로 이 시기에 그려진 것이다.
그가 평생 그린 작품의 수가 약 300백여 편이니, 이곳에서 평생 작품의 2/3가량이 만들어진 셈이다.
일테면 아래의 「밤의 카페 테라스 Café Terrace at Night, 1888」, 「아를의 붉은 포도밭 The Red Vineyards Near Arles, 1888」 같은 작품이 대표적이다.
위의 작품은 아를에 있는 포룸 광장(Place du Forum)의 북동쪽에 있던 장소를 그린 것인데, 현재도 남아있는 장소는 고흐의 그림 재현을 위해 지난 1990년~1991년 재단장되었다고 한다('고흐 카페(Le Café Van Gogh)'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또한 위의 그림은 고흐가 생전에 판매했다고 알려진 단 한 점의 작품, 「아를의 붉은 포도밭(아를 근처의 붉은 포도밭)」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한 점이 아니라 두 점을 팔았다'고 하는 이견도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는 점을 말씀드린다(어쨌든 그의 그림은 생전에 거의 팔리지 않았다).
2.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에
다시 맨 위에 있는 작품으로 돌아와서, 이 작품의 제목은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또는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Starry Night, 1888」이다.
한국어 제목으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이지만, 실제로는 그냥 Starry Night, 즉 '별이 빛나는 밤'이다. 별이 빛나는 밤하면 우리는 아래의 작품을 흔히 떠올린다.
이는 고갱과 결별한 후 정신질환을 앓던 1889년, 그가 셍레미의 요양원에 있을 때 요양원 병실의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밤풍경에다 자신의 기억과 상상을 결합하여 그린(풍경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 아닌), 다분히 주관적인 작품이다.
불타오르는 듯한 왼쪽의 사이프러스, 파도처럼 격렬하게 굽이치는 밤하늘의 별들. 불과 일년 전 론강의 따스하고 낭만적이며, 정적인 밤풍경을 그린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제목은 '별이 빛나는 밤'으로 같지만, 론강의 그것과 (상상이 덧붙여진 것이지만) 요양원 창문 밖의 그것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와닿는다.
그림의 터치 자체가 강렬한 탓인지, 보는 사람의 뇌리에도 강렬하게 박힌 것일까.
역시 사람은 놓여있는 상황과 그 마음 상태에 따라, 행동이나 표현도 달라지는가 보다.
고흐 자신도 위의 그림 작업을 마쳤을때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고는 하고, 위 그림에 대한 당시 미술계의 반응도 시원찮았다고는 하지만, 현재 고흐의 대표작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누가 뭐라고 해도 보통 위의 작품을 꼽을 것이다.
별을 보고 있으면
참 단순한 꿈을 꾸는 기분이 들어.
지도에 적힌 검은 점들에 가듯
창공에 반짝이는 저 점들에
쉽게 가닿을 수는 없을까?
루앙에 가려고 기차를 타듯,
별에 가기 위해 죽는 건지도 몰라.
-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中에서
잘 알려져 있듯이, 어쩌면 동생 테오는 고흐를 진정으로 이해했던 단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저렇게 지내는 피상적인 관계, 또는 내게 이득이 되느냐 안되느냐만 따지는 인간 관계를 맺느라 시간을 보내는 우리들에게,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정말로 만나기 어려운 일인 동시에, 그 자체로 축복일 것이다.
보통 '대표작'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고흐의 모든 작품이 어떤 유열을 가리기 힘든 대표작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 또한 그의 대표작이자 걸작으로 전혀 손색이 없지 않을까.
밤하늘의 별을 사랑하고, 그 별에 가닿기 위해 평생을 그림으로 말한 남자, 빈센트 반 고흐. 그가 자신의 별로 떠난지 130년 후, 나는 그의 그림을 보며 밤하늘의 별과 사랑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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