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여울] ;
개울의 여울목,
[여울] ; 강이나 바다 따위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
가수 아이유의 노래로 많이 알려진 《개여울》.
하지만 이 노래는 의외로 많은 가수들(심수봉, 정미조, 김윤아 등등)의 입으로 불리고, 그때마다 다양한 버전의 쓸쓸함과 아픔, 그리고 애달픈 정서로, 듣는 이의 마음을 묵직하게 만든 바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절제된 피아노와 마치 사람의 흐느낌 같은 첼로 연주가, 내 마음속으로 과도하게 깊고 깊게 파고 들어오는 탓인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이 노래를 들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지만, 이 곡조는 한국적인 정서를 매우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전 세계 누구보다도 흥과 에너지가 넘치는 민족이기도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말하지 못한 슬픔, 터뜨리지 못한 슬픔을 간직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능숙하다.
■ 《개여울》, 아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본래 교과서에도 자주 오르는 시인 김소월(《진달래 꽃》, 《엄마야 누나야》등등)의 작품이다.
✅ 김소월(1902~1934) :
김소월은 일제강점기의 시인이다. 본관은 공주(公州)이며 본명은 김정식(金廷湜)이지만, 호인 소월(素月)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평안북도 곽산 남산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15년 평안북도 정주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조만식과 평생 문학의 스승이 될 김억을 만났다.
김억의 격려를 받아 1920년 동인지 《창조》 5호에 처음으로 시를 발표했다. 오산학교를 다니는 동안 김소월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으며, 1925년에는 생전에 낸 유일한 시집인 《진달래꽃》을 발간했다.
1923년에는 일본 도쿄 상과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같은 해 9월에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자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 무렵 서울 청담동에서 나도향과 만나 친구가 되었고 《영대》동인으로 활동했다.
김소월은 고향으로 돌아간 후 조부가 경영하는 광산일을 도왔으나 일이 실패하자 처가인 구성군으로 이사하였다. 구성군 남시면에서 개설한 동아일보 지국마저 실패하는 바람에 극도의 빈곤에 시달렸다.
소월의 시작활동은 1925년 시집 『진달래꽃』을 내고 1925년 5월『개벽』에 시론 「시혼(詩魂)」을 발표함으로써 절정에 이르렀다. 이 시집에는 그동안 써두었던 전 작품 126편이 수록되었다. 이 시집은 그의 전반기의 작품 경향을 드러내고 있으며, 당시 시단의 수준을 한층 향상한 작품집으로서 한국시단의 이정표 구실을 한다.
민요 시인으로 등단한 소월은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여성적 정조(情調)로서 민요적 율조와 민중적 정감을 표출하였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되고 있다.
* 사진 및 내용 출처 : [위키백과] 김소월,
[네이버 지식백과] 김소월 [金素月]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한국학 중앙연구원)
■ 《개여울》의 노랫말은 아래와 같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 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나오고
잔 물은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러한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 김소월, 《개여울》 전문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라니, 일견 예전에 히트 쳤던 드라마 《대장금》의 주제곡 '오나라(오나라 오나라 아주 오나/ 가나라 가나라 아주 가나(오시려 하는가 오시려 하는가 아주 오시려 하는가/ 가시려 하는가 가시려 하는가 아주 가시려 하는가))'를 연상시키는 노랫말이다.
즉, '오란다고 아주 오냐, 가란다고 아주 가냐' 하는 식의, 흥과 슬픔이 교차하는(혹은 공존하는) 한국적인 정서가 잘 어우러진 시어, 그리고 노랫말 되시겠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이란, 그 얼마나 황량하고 쓸쓸한 것인가.
연인이 떠난 다음, 홀로 개여울에 주저앉아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라는, 약속 아닌 약속, 곱씹을수록 허망한, 오는 것도 아니고 안 오는 것도 아닌(나도 알고 너도 알고 세상 사람 다 아는) 그냥 감감무소식인 그 사람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저 장면.
굳이 연인과의 별리가 아닐지라도, 그것은 한 장의 빛바랜 사진처럼, 누구에게나 먹먹하고 묵직한, 그러니까 결국엔 타오르고 타올라서 재처럼 공중에 흩뿌려질, 내 가슴속에 단단히 박혀버린 시간의 말뚝이다.
심수봉, 정미조, 김윤아, 아이유, 그리고 카운터테너 최성훈, 각각의 음색과 표현력이 다른 가수들의 목소리는, 같은 가사라 할지라도 서로 다른 여울가(혹은 그와 비슷한 시공간)를 소환하기에 충분하다.
지금은 만날 수 없는 사람이, 어찌 '오실 듯 오실 듯 안 오신' 연인이기만 할까.
그것은 지금은 내 곁에 계시지 아니하는 부모님일 수도 있고, 예전에 그 개울가를 거닐며 포부와 꿈을 나누던 절친일 수도 있고, 어떠한 이유로 왕래가 끊어진 이웃일 수도 있으며, 지금은 그 모습마저 희미하지만, 그저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애틋해지는 첫사랑일 수도 있다.
추억의 장소, 추억의 시간, 모두 실은 우리의 감정과 정서가 만들어내는 매직이다.
우리는 그들의 목소리에 감응하여 각자의 가슴속 앨범에 꽂아놓았던 사진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안다. 그 애달프고 달콤하고 서럽고 원망스럽고 아련했던 시간의 편린들이, 꼭 원하는대로 이루어졌어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울은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어떤 인연과 시간을 만나면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흐르는 우리의 마음을 닮아있다. 우리 모두에게는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싶은, 마음의 여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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