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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정원, Art

✔한국 최초의 호러 퀸, 도금봉(월하의 공동묘지, 기생월향지묘, 목 없는 미녀, 팜므파탈, 도시괴담, 황진이, 백골령의 마검, 삼등과장)

by 이야기가 있는 정원 2021.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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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계절은 여름의 목전으로 접어들었다.

 

벌써 버스나 지하철에는 에어컨을 트는데 뭔 뒷북 같은 소리냐, 하실 수도 있으나 아직까지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한 기운이 도는지라, 반 백 살 중년의 아저씨는 겉옷이 있어야만 하루를 견딜 수 있다는, 사실 체감하기에 진정한 여름은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뭐 그런 얘기를 하고자 한 것이다(해마다 여름이 점점 길어지는 것은 괴롭다).

 

코로나로 인해 거의 2년 동안 극장 근처도 못 가본 채 방구석 스트리밍으로 영화에 대한 갈증을 달래 왔으나, 한국에서는 여름을 공포영화의 시즌으로 친다(미국 등에서는 이른바 블록버스터 영화가 많이 개봉하지 않는 2월 경이 공포영화의 시즌이라고 들었다).

 

물론, 영화마니아라면 시즌 어쩌고 하는 것에 그다지 민감하지 않지만, 뭐 복날에는 수박이나 콩국수, 그리고 삼계탕 같은 보신음식이 자연스레 떠올려지듯이, '아, 이번 시즌에는 어떤 영화들이 개봉할까' 혹은 '스트리밍 서비스로 직행할까'하는 아련한 마음이 들게 마련이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는 공포영화, 호러영화라고 하면 위와 같은 계절적 특수도 특수지만, 공포영화의 전형 중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호러 퀸(Horror Queen)'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호러 영화나 호러 드라마의 여주인공'을 일컫는 말인 호러 퀸. 당신이 생각하는 호러 퀸의 이미지는 어떤가? 

 

 

 

* 좌측 : 존 카펜터 감독의 영화 《할로윈(Halloween, 1978)》의 포스터, * 우측 : 숀 커닝햄 감독의 영화 《13일의 금요일(Friday The 13th, 1980)》, 출처 네이버 영화

 

그렇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대체로 잘 알려지지 않은 신인 여배우가 대부분이고, 영화의 내용상 끝까지 살아남아 살인마나 괴물을 처리하며(종종 남성 배역보다 용감하게),

 

또 극의 내용에 따라서는 종종 살인마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거기에다 걸핏하면 질러대는, 고막을 찢을 것만 같은 비명과 어딘가 어색한 연기는 덤.

 

그런데 참 신기하다. 관객인 우리는 비명으로 인해 귀를 막고, 잔인한 장면으로 인해 눈을 질끈 감으며, 도망쳐도 도망쳐도 언제나 강철체력을 자랑하며 여주인공을 쫓아오는 살인마에게 오지 마, 오지 마! 하면서 아주 제대로 감정이입을 하니 말이다.

 

아마도 이것이 영화가 가진 매력이고 매직이겠지.

 

 

1. 한국에도 최초의 호러퀸이 있다(ft. 월하의 공동묘지)

 

헐리웃 영화로 대표되는 서양은 그렇다 치고, 그럼 '한국 최초의 호러퀸'은 과연 누구일까. 그의 이름은 바로 도금봉(都琴峰, 1930~2009) 되시겠다. 

 

 

* 《삼등과장, 1961》에 출연한 도금봉, 유튜브 캡처

 

도금봉은 1950년대 후반 악극에서 영화계로 전향한 대표적인 대한민국의 여성 영화배우로, 본명은 정옥순(鄭玉順)이다. 여고 졸업 후 1949년부터 지일화(地一華)라는 예명으로 악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하다가 1957년 《황진이》에서의 활약을 시작으로 영화배우가 되어 1960년-1970년대에 주연 못지않은 조연이라는 좋은 평을 받을 만큼 인기를 누렸으며, 6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였다. 

* 출처 : 위키백과, 도금봉

 

보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겠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개성 있는 마스크와 관능미를 가진 배우로 정평이 나있었다.

 

이미 1950년대에 그는 대도회(大都會), 청춘부대(靑春部隊), 창공(蒼空) 등의 악극단에서 활약 중이었는데, 1957년 《황진이》에 출연하면서 예명을 도금봉이라고 바꾸었다. 물론 주인공 황진이 역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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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 영화로 당시 기생으로서의 '황진이'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 즉 요부(妖婦)로서의 캐릭터를 잘 소화하여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세기의 요우(妖優)'라는 별칭을 얻는다 :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도금봉).

 

또한 1962년에는 영화 《새댁》으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다음 해인 1963년에는 《또순이》로 아시아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상복도 많았는데,

 

1960년대 중반으로 가면서부터는 《살인마》(1965)·《목 없는 미녀》(1966)·《월하의 공동묘지》(1967) 등의 공포영화, 《산불》(1967)·《감자》(1968) 등의 문예영화, 《세상은 요지경》(1966)·《남자식모》(1968) 등의 코미디 영화, 《문정왕후》(1967)·《내시》(1968) 등의 시대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조연으로 주로 활동하였다. 

 

 

* 조긍하 감독의《황진이, 1957》에 출연한 도금봉.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도금봉의 대표 출연작 중 권철휘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  A Public Cemetery of Wol-ha, 1967》, 또는 《기생월향지묘》에 대해서 잘 아실 것이다.

 

무덤이 열리며 시신이 튀어나온다던가(얼마나 원한에 사무쳤으면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났겠는가), 밤길을 운전하던 택시기사가 공동묘지 앞에서 차를 세우는 소복 차림의 여성을 만난다던가 하는, 대표적인 한국 공포(또는 괴담)의 클리셰 중 하나인 '한을 품은 원혼'을 주제로 한 영화이다.

 

요즘의 관객들의 눈으로 본다면야 거의 육십 년이나 지난 필름이고, 음향이나 특수효과 등의 면에서 지금과 단순 비교하면 아무래도 유치하게 느껴질 수 있으며, 무엇보다 사람에 따라 고어, 스플래터, 슬래셔 등등 다양한 취향이 존재하므로, 이것은 굳이 말하자면 '한(恨)'의 정서가 담긴 '넓은 의미에서의 공포영화'라고 할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영화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라 할 수 있을 몇 가지 재미있는 장치들을 선보이고 있는데,

 

 

첫째, 신파와 공포(+ 권선징악)의 결합이다


《월하의 공동묘지, 1967》 중에서, 출처 유튜브 캡처

 

흉측한 모습(?)으로 변해버린 옛 변사가 극의 해설을 맡는다.

 

지금은 변사라는 직업을 기억하는 이가 드물지만 예전 무성영화, 또는 대중적인 악극에 있어서 변사의 존재는 관객의 감정이입에 매우 중요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 또는 주변의 사람들의 스토리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고, 그것은 극에 동화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주요한 장치가 된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향수도 향수지만, 기생 월향이라는 비운의 주인공을 말할 때, 당시로서는 많은 대중들에게 익숙했던 신파의 한 장면을 차용함으로써, 관객의 몰입도를 높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마치 요즘의 우리가 패널이나 사회자의 능수능란한 인도(?)로 프로그램에 집중하게 되듯이 말이다. 억울한 사람에게는 연민을, 악인에게는 하늘의 심판을.

 

 

둘째, (도시)괴담의 전형(또는 원형)을 볼 수 있다

《월하의 공동묘지, 1967》 중에서, 출처 유튜브 캡처

 

늦은 밤, 도시의 공동묘지 근처로 차를 몰던 택시기사가 "아니, 이 밤중에 공동묘지에 웬 사람이..." 하면서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이 밤중에 하얀 소복의 여성이 택시를 세우고 있다니, 헉! 사람이냐 귀신이냐! 택시기사는 무언가를 들이받고 망연자실하지만, 이내 태운 적이 없는 여성이 뒷좌석에 타고 있다! 끄아아아아악!......

 

어쨌든 이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도시괴담이라고 할 수 있고,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마르지 않는(시대에 맞게 변형을 거듭하는) 으스스한 이야기의 원천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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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 번 호러퀸은 영원한 호러퀸

 

도금봉 배우에 대해 얘기하다가, 갑자기 이야기가 옆길로 새버렸다.

 

자 어쨌든, 이 영화에서 도금봉 배우는 원한을 품고 죽은 원귀가 아니라, 주인공인 기생 월향을 질투하여 죽이려는 찬모, '난주' 역으로 나온다. 

 

 

* 어머니와 공모하여 월향을 죽이려는 난주(도금봉, 사진 오른쪽). 유튜브 캡처

 

* 한을 품고 자살하여 원귀가 되는 주인공 월향(강미애). 출처 네이버 영화, 유튜브 캡처

 

역시 60년대의 스타였던 배우 강미애와 함께한 이 영화는 그 배경이 되는 일제강점기 당시만 해도 뿌리깊게 남아있던 일부다처, 혹은 처첩을 함께 두는 구습을 다루고 있는데, 독립운동을 하다 옥에 갇힌 오빠와 애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생의 삶을 살게 된 주인공 명선(월향)의 기구하고 가련한 삶이 주된 스토리이다

 

(즉, 그녀는 처음부터 기생이었던 게 아니다. 이런 설정은 한편으로 유명한 신파극 《홍도야 우지마라》를 연상시킨다).

 

옥바라지를 위해 기생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주인공을 어떻게든 모함하고 죽이려는 난주와 그 어머니. 그런 난주를 감싸주는 명선.

 

관객들은 구성진 변사의 해설과 함께 명선의 한스런 삶을 동정하고, 마침내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죽은(그리고 한 맺힌 귀신이 되는) 그녀의 복수를 응원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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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 당시 '눈물의 여왕', '비련의 여주인공' 등의 별칭으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강미애.

 

능수능란하고 뻔뻔스러운 악인의 연기를 잘 해낸 상대연기자 도금봉 덕분에, 관객들은 더욱 그녀(월향)의 처지를 동정하고 마음 아파했을 것이다.

 

그가 출연한 대표적인 공포영화로는 《살인마, 1965》, 《목없는 미녀, 1966》, 《월하의 공동묘지, 1967》, 그리고 당시로서는 획기적 컨셉트, 즉 공포 + 무협을 표방한 《백골령의 마검, 1969》 등이며, 주로 악역을 맡아 열연했다.

 

흔히 1950~60년대를 한국영화의 황금기라고 부르는데, 이 시기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한 그는 여러 호러영화의 영화적 시도 - 팜므파탈, 악녀 등등 - 의 맨 앞줄에 서있었다(아이러니하게도 그가 활약했던 1960년대가 한국 호러영화의 최전성기였다). 

 

한국영화에 있어 모든 호러 퀸들의 시초이자 원조인 도금봉(물론 우리 영화 역사상  '최초의 황진이' 이기도 하다). 한국 공포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배우, 도금봉.

 

한국 (공포)영화의 발전과 함께 그의 이름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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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마, 1965》에 출연한 도금봉. 출처 유튜브 캡처

 

도금봉은 1997년 전당포 노파 역할로 출연한 박찬욱 감독의 '삼인조'(1997)를 끝으로 연기 활동을 중단했다. 한동안 서울 삼청동에서 복집을 운영하며, 두 아들과 평탄하게 살았으나 사업을 정리한 뒤에는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말년은 복지시설에서 보냈다.

2009년 6월 3일, 서울 건국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자신의 죽음을 세간에 알리는 것을 원치않아 별세 소식이 뒤늦게 전해졌다. 40여 년의 연기생활동안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200여 편에 출연했으며, 그녀의 기억에 따르면 500여 편이라고 한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도금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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