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또는 글귀 아래 쓰여 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일 뿐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그 감상은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결심
마음이 많이 아플 때
꼭 하루씩만 살기로 했다
몸이 많이 아플 때
꼭 한순간씩만 살기로 했다
고마운 것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기로 했다
고요히 나 자신만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게 주어진 하루 만이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저만치서 행복이
웃으며 걸어왔다
- 이해인, 《어떤 결심》, 전문
만약에 나의 삶이 단 하루가 남았다고 한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돌아보면, 지나온 시간들은 그야말로 쏜살같이 지나가버렸는데 하루는 그보다 더 빠를 것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문자로라도 마음을 표현하거나, 추억의 장소 중 딱 한 곳만 골라서 가보거나, 또는 혹 내가 타인에게 상처를 준 일은 없는지를 고민해 보거나 ······, 아무튼 뭔가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신기한 체험을 했다.
결국, 나는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성찰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는 것은 맞는데, 일상에 치이고, 부정적인 상호작용이 더 머릿속에 남아서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랑하면서 살아도 모자란 인생이라고.
고마운 일만 기억하고 사랑한 일만 떠올리며 어떤 경우에도 남의 탓을 안 하는 것, 어렵다. 어려우니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자기 성찰을 하지 않으면 시간은 더 빠르게 가버리고, 후회조차도 늦어 아예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럼 언제까지고 고독의 사막을 헤매기만 할지도 모른다.
💬 사람들은 큰일을 겪은 친구와 이웃에게 흔히 이런 위로를 건넨다. "그만 잊어버려. 관심을 딴 데로 돌려봐."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또 한편 참 비인간적인 말이다.
잊으라니, 이 얼마나 야박한 말인가!
사랑과 슬픔, 그 두 가지에 똑같은 강도로 집중할 수는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한쪽이 우선권을 쥐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결코 다른 쪽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 출처 : [교보문고] 《다들 그렇게 산다는 말은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아》,
니콜 슈타우딩거,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 중
고독
그대는 아는가 모르겠다
혼자 흘러와
혼자 무너지는
종소리처럼
온몸이 깨어지도
흔적조차 없는 이 대낮을
울 수도 없는 물결처럼
그 깊이를 살며
혼자 걷는 이 황야를
비가 안 와도
늘 비를 맞아 뼈가 얼어붙는
얼음 번개
그대 참으로 아나 모르겠다
- 문정희, 《고독》, 전문
본래 인간은 누구나 고독한 존재이며 혼자라고는 하지만, 사실 혼자가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또 인간이다.
그래서 친구를 만들고(또는 누구에겐가 친구가 되어 주고),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자 한다.
하지만 우정이든 사랑이든 간에 때로는 아파도 너무 아프고, 쓰려도 너무 쓰린 일들도 많다.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워 상대를 내 마음에 초대했는데, 그냥 혼자일 때보다 더한 고독의 사막이 펼쳐지면 나는 또 어디로 걸어가야 하나. 지금까지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데.
물론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만나는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타인, 특히 중요한 타인은 많은 부분 나와 같을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더 많으니, 그 충돌이 더욱 아프고 쓰리다.
그래서 아래의 시처럼 사랑은 직선이 아니고 곡선이어야 하는, 아무래도 뭔가 곡선처럼 부드럽고 둥글둥글하게 접근해야 하는 그런 종류의 상호작용인가 보다.
사랑은 곡선이다
사랑은 곡선이다
곡선의 씨앗은 하트♡다
- 함민복, 《사랑은 곡선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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