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사람을 멀리하고 길을 걷는다
살아가수록 외로워진다는
사람들의 말이 더욱 외로워
외롭고 마음 쓰라리게 걸어가는
들길에 서서
타오르는 들불을 지키는 일은
언제나 고독하다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면
어둠 속에서 그의 등불이 꺼지고
가랑잎 위에는 가랑비가 내린다
- 정호승, 《그리운 사람 다시 그리워》, 전문
그리운 사람이 다시 그리워진다. 시어 그대로이다.
시인의 본래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누군가가 그립다는 것은 그리운 사람과의 이별이 전제이고, 이제 그 사람은 곁에 없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라는 시쳇말이 있다.
잘 아시듯이, 이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것보다, 떠난 사람의 빈자리가 더 크다는 의미일 것이다. 언제나 곁에 있을 것만 같았던 그 사람, 외롭다는 말을 잠시나마 잊고 살 수 있게 해주었던 그 사람의 빈 자리는 이제 '외롭다'를 넘어 '쓸쓸함'마저 가져오게 한다.
누구든 이별을 받아들이고 나면, 최선을 다해서 상대를 잊으려하고(일테면 미친 듯이 일에 몰두한다던가, 일부러 왁자지껄한 곳에서 더 크게 웃고 떠든다던가), 그렇게 스스로 일상에 몸을 내맡김으로 인해 신기하게도 시간이 흐르면 좋았던 순간만이 박제처럼 남는다. 아니, 그런 것처럼 여겨진다.
이젠 제법 덤덤하게 그 시절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기도 하고, 또 한참동안 그리운 사람에게 미안할 정도로 그 순간들을 잊고 살기도 한다.
그러다 문득, 뜬금없이 쌀을 씻다가, 고등어를 굽다가, 추억이 서려있지도 않은 어떤 장소에 어떤 사람과 수다를 떨다가, 그리운 사람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살아갈수록 외로워진다는/사람들의 말이 더욱 외로워
아아, 굳이 이렇게 말해주지 않아도 살다보면 몸으로 익히게 되는 것인데, 굳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이렇게 말해줄 필요가 있나. 종종 원망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우리 삶의 변하지 않는 진실 중의 하나인 것만큼은 확실하다는 것이 또 문제다.
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 정호승, 《수선화에게》, 전문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 그것을 열망하다 죽은 나르키소스(Narcissus)와, 지나친 자기애의 표상인 '나르시시즘(narcissism)'을 탄생시키기도 했던 신화이자 전설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진실로 나를 위로할 이는 나 자신, 즉 거울에 비치고 있는 때로는 실상이자 때로는 허상인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무언가와, 누구인가와 일평생 이별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 또한 어디엔가에 '든 자리' 였다가 '난 자리'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가 나를 떠나기도 하지만, 나 또한 누군가를 떠나기도 한다. 그때 나를 위해서 슬퍼해줄 사람이 없다고 울지 말고, 내가 나를 위해서 울어주는 것도 괜찮겠다.
어차피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니까 말이다.
찔레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어
한 그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 문정희, 《찔레》, 전문
💬 시인 문정희는 전남 보성에서 나서 서울에서 성장했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오라, 거짓 사랑아』 『양귀비꽃 머리에 꽂고』 『나는 문이다』 『다산의 처녀』 『카르마의 바다』 『응』 등의 시집 다수와 시선집 『지금 장미를 따라』 외 장시집, 에세이집이 있다.
현대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육사시문학상, 목월문학상과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이밖에도 스웨덴 하뤼 마르틴손 재단이 수여하는 시카다(Cikada)상을 수상했다. 고려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를 역임하고, 현재 동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문정희
누군가 그랬다. 사랑은 만나도 고통이고, 헤어져도 고통이라고.
사랑하는 동안에도 눈물이 나고, 헤어져 시간이 흐른 뒤에도 어쩌다가 생각이 나면 또 쓸쓸하게 웃는다.
웃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사실은 아프고도 그리워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것이리라.
우리의 삶이 희비극이 교차되는 찰나의 폭풍이라면, 시적 화자인 찔레는 슬픔을 극복한 것일까, 아니면 짐짓 그것을 무성한 초록 속에 서있는 한 그루의 찔레나무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것일까.
찔레(baby brier, wild rose)도 '장미목' 에 속하므로 장미와 비슷하게 가시가 있고, 5월에 흰 꽃을 피운다. 굳이 영어식 표현을 빌어 우리말로 풀자면 '들장미'라고 해야 할까. 장미도 그렇지만 찔레도 그 향기가 매우 짙은 편이라고 한다.
사랑하던 그 사람/조금만 더 다가서면/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사랑은 어쩌면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짙은 향기같은 것이 아닐까. 자기도 모르게 이끌려서 점점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그렇지만 아마도 어떤 이유로 인해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 더 다가서지는 못한 채로, 자연스럽게 이별을 맞이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름 부르기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검은 새 한 마리 나뭇가지에 앉아
막막한 소리로 거듭 울어대면
어느 틈에 비슷한 새 한 마리 날아와
시치미 떼고 옆 가지에 앉았다.
가까이서 날개도 바람도 만들었다.
아직도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그 새가 언제부턴가 오지 않는다.
아무리 이름 불러도 보이지 않는다.
한적하고 가문 밤에는 잠꼬대 되어
같은 가지에서 자기 새를 찾는 새.
방 안 가득 무거운 편견이 가라앉고
멀리 이끼 낀 기적 소리가 낯설게
밤과 밤 사이를 뚫다가 사라진다.
가로등이 하나씩 꺼지는게 보인다.
부서진 마음도 보도에 굴러다닌다.
이름까지 감추고 모두가 혼자가 되었다.
우리는 아직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 마종기, 《이름 부르기》, 전문
💬 마종기 시인은 1939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아동문학가 마해송이며, 어머니는 우리나라 여성으로는 최초의 서양무용가로 활동한 박외선이다. 연세대학교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 이수 중이던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방사선과 수련의 과정을 마치고 미국 방사선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2년 의사와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에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초빙교수로 ‘문학과 의학’ 과목을 신설, 5년 동안 본과 2학년생들에게 강의했다. 1959년 '현대문학'에 '해부학교실' 등을 발표하며 등단한 그는 삶과 죽음을 오가며 겪은, 때로는 격렬하고 아프며 쓸쓸한 체험들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시를 써왔다.
'변경의 꽃',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뿐이랴', '그 나라 하늘빛', '이슬의 눈',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하늘의 맨살' 등의 시집을 냈다. 한국문학작가상, 편운문학상, 이산문학상, 동서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마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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