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에 적혀 있는
각각의 짧은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일 뿐입니다.
오해나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사랑
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기쁨
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는 기도
내 영혼이 가난할 때 부르는 노래
모든 시인들이 죽은 뒤에 다시 쓰는 시
모든 애인들이 끝끝내 지키는 깨끗한 눈물
오늘도 나는 그대를 사랑하는 날보다
원망하는 날들이 더 많았나니
창 밖에 가난한 등불 하나 내어 걸고
기다림 때문에 그대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를 기다리나니
그대는 결국 침묵을 깨뜨리는 침묵
아무리 걸어가도 끝없는 새벽길
새벽 달빛 위에 앉아있던 겨울산
작은 나뭇가지 위에 잠들던 바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사막의 마지막 별빛
언젠가 내 가슴 속 봄날에 피었던 흰 냉이꽃
- 정호승, 《사랑》, 전문
만약 내가...
만약 내가 한 사람의 심장이
미어지는 것을 멈출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니라.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달래줄 수 있다면,
고통을 달래줄 수 있다면,
지친 새 한 마리 둥지로
돌아가도록 도와줄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니라.
-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전문
💬 에밀리 디킨슨은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를 넘어 미국 현대시의 원조로까지 통하고 있는 시인이다. 말년을 은둔자로 보내며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만 그녀의 문학적 감수성만은 감춰지지 않았다.
스스로 작품을 발표하지도 않았지만 그녀의 시가 재발견된 1950년대 이래 전세계 독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주로 '삶과 사랑, 자연, 죽음'을 다루는 그녀의 시들을 구성하는 시어는 매우 간결하고 이미지즘적이며 군더더기 하나 없이 섬세하게 응축된 표현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이고 혁신적이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에밀리 디킨슨
💬 칼 매닝거가 말했던가? '사랑은 그것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치료한다'라고.
누구나 병적일 정도로 사랑에 매달려 본 때가 있을 것이다. 아니면 병적일 정도로 사랑을 뒤로 하든가. 우리는 누군가, 무언가에 매이거나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기 힘들다.
(중략)
이 여행은 쉽지 않다. 괴롭고 슬프고, 외로울 수 있다. 하지만 참고 잘 이겨내는 자만이 사랑을 쟁취한다. 사랑의 여행을 겁내지 말자. 거침없이 찬찬히 가자.
사랑하려고 태어났으니까.
* 출처 : [교보문고], 《사랑은 시처럼 온다》, 엮은이의 말 중에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 그것만큼 기쁘고 따뜻하고 행복한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런 반면 사랑은 그 기쁨을 때로는 상회할만큼의 고통, 예를 들면 그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언제나 사랑의 절정일 때 느껴지는 두려움, 즉 이 사랑이 지속되지 않으면 어떡하나와 같은 염려 속에 종종 빠지기도 한다.
(또한 그것이 나만의 사랑, 다시 말해 나만 알고 그 사람은 모르는 짝사랑일때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고통들을 말해 무엇하리)
사랑하지만 쓸쓸한 사람, 사랑하지만 눈물에 젖어 사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사랑하면서도 우리는 달콤한 고통에 시달리며, 영원할 것만 같았던 그 사랑이 마침내 추억 속의 장소와 장면에 박제된채로 복기되었을 때에도 그것은 나를 다시 그 자리로 데려다놓는다.
확장하자면 그 의미는 우주대까지도 커질 수(다양할 수) 있고, 축소하자면 또 한없이 작아지는(하지만 그것을 결코 '작다'고 할 수는 없다. 사랑은 단 하나의 감정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작은 우주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가.
목련꽃 낙화
너 내게서 떠나는 날
꽃이 피는 날이었으면 좋겠네
꽃 가운데서도 목련꽃
하늘과 땅 위에 새하얀 꽃등
밝히듯 피어오른 그런
봄날이었으면 좋겠네
너 내게서 떠나는 날
나 울지 않았으면 좋겠네
잘 갔다 오라고 다녀오라고
하루치기 여행을 떠나는 사람
가볍게 손 흔들듯 그렇게
떠나보냈으면 좋겠네
그렇다해도 정말
마음속에서는 너도 모르게
꽃이 지고 있겠지
새하얀 목련꽃 흐득흐득
울음 삼키듯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려앉겠지.
- 나태주, 《목련꽃 낙화》, 전문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서투르게 이별을 했다.
지금보다 젊었을 때도, 어린 아이였을 때도, 그것이 성숙했다거나 가볍게 손 흔들 듯 담백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것이 연애든, 짝사랑이든, 가까운 이의 죽음이든, 지나고 보면 이미 정해져 있었던 이별 앞에 강력하게 저항도 해보고, 미친 듯 도리질도 쳐보았으며, 목놓아 울어도 보았다(물론 이것은 외형적인 모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었지만, 아마 내딴에는 조금이라도 그때를 유예하고픈, 늦추어보고 싶은 마음이었을게다.
완벽한 이별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 걸까? 단단히 마음 먹고, 준비하면, 완벽한 이별을 할 수 있을까.
이별은 언제나 두렵고, 불편하고, 무겁다. 어쩌면 앞으로도 내 서툰 모습은 여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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