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번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사랑의 유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심리학자 존 리(John A. Lee)가 제시한 사랑의 여섯 가지 유형(스토게, 에로스, 프라그마, 마니아, 아가페, 루더스)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글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란다.
2.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유형
(ft. 사랑의 기술)
사랑이란
인간이 자신을 타인들과 분리시키는
벽을 허물어버리는 데에
사용되는 적극적인 힘이다
- 에리히 프롬,《사랑의 기술》중에서
독일계 유대인이자 사회심리학자, 그리고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은 베스트셀러가 된 대표 저서 《사랑의 기술, The Art of Loving》에서 위와 같이 말했다.
💬 영문 제목인 'The Art of Loving'에서 'Art'란 그냥 '예술'이라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어의 '테그네(Techne)'에서 온 것으로 '무엇인가 만드는 인간의 활동'을 의미한다.
즉, '사랑'하는 것은 '창작'하는 인간의 고뇌와 같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 출처 : [교보문고 인터넷 서점],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은 사랑에 대해 인간을 결속시키며,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격리감을 극복하도록 도와주고, 자기 자신의 본연의 모습과 고결한 모습을 유지하도록 해줄 수 있다고 하였다.
비록 사랑의 대상이 다르고 사랑의 깊이와 질은 다를지라도, 올바른 사랑의 기본적 요소는 동일하다고 보았다. 그는 사랑의 기본적 요소로 관심, 책임, 존경, 지식 등을 제시하였다.
(1) 관심(Care) :
관심은 어느 개인의 생명과 성장에 적극적으로 관여하는 것을 일컫는다. 다른 말로 하면, 관심은 문제에 직면하여 그 문제의 성격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파악하는 것이다.
프롬은 적극적인 관여, 즉 관심이 없이는 어떠한 사랑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상대가 처해있는 상황에서 이것이 좋든 싫든, 즐거운 것이든, 고통스러운 것이든 간에 자신이 (기꺼이)거기에 참여하는 것이다.
즉, 상대의 즐거운 상황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히 기쁨을 주지만, 고통스러운 문제 상황에 참여하는 것은 괴로움을 준다. 이렇게 사랑은 어떠한 상황에도 기꺼이 참여할 수 있다는 마음의 대면이고 관심이다.
일테면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이러한 관심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다.
(2) 책임(Responsibility) :
책임이란 상대에게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책임의 어원인 'repondere'가 'to answer', 즉 대답하는 것을 뜻하므로, 책임은 '반응'과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을 생산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개인의 육체적 생존뿐만 아니라, 개인의 지속적인 성장과 발달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책임을 느끼는 것이다.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도 그 본질은 관심과 책임이다.
아이의 출생 동안 어머니는 아이를 위해 고생하고, 출생 후에는 부부 모두가 아이를 올바르게 성장시키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이러한 책임감이 외부로부터 개인에게 주어진 의무같은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일이라고 느끼는 스스로의 요구에 대한 자신의 반응(response)'이라는 것이다.
(3) 존경(Respect) :
존경이란 상대가 있는 그대로 성장하고 발전하여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관심을 의미한다.
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봉사해줄 것을 바라지 않고, 그가 스스로 성장하며 발전하기를 원한다는, 이른바 '착취'가 없는 상태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특징을 갖는다.
존경의 어원은 'respicere', 즉 'to look at(보는 것)'을 말하는데, 있는 그대로의 개인을 바라보는 능력, 개성과 독특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존경받음으로써 나타나는 '나는 귀중한 사람이다'라는 느낌은 그의 정신건강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다시 말해 상대방에 대한 사랑은 바로 이런 존경하는 마음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또한 존경심은 상대의 현재 상태를 수용하여 앞으로의 발전 방안을 강구하는 데 도움을 줄 수가 있다.
(4) 지식(Knowledge) :
지식이란 상대방의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이해력)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과 지식이 없다면, 사랑은 지배나 소유로 타락하기 쉽다(여기서 말하는 '지식'을 단순히 '논리'나 '공부를 통해 획득한 경험'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지식은 총체적인 인식과 그에 따른 이해와 수용을 의미하는 것이다).
🔳 지식 :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존경'한다고 할 때, 그 사람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관심과 책임은 개인의 개성에 관한 어떤 지식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맹목으로 흐를 뿐이다. 즉,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지식(이해)가 없다면 이는 허황된 공상에 불과한 것이다.
3.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관계 다섯 가지 유형
프롬은 사랑을 단순히 인간의 감상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측면에서 논의하면서 아래와 같이 다섯 가지 유형의 사랑의 관계를 제시하였다.
(1) 대등한 사랑 :
대등한 사랑은 종종 '형제애와 같은 사랑'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가장 기본적이고 보편적인 유형이기도 하다. 대등한 사랑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이러한 사랑에는 상대에 대한 관심, 책임감, 존경, 이해 및 그의 삶을 촉진시키고자 하는 소망 등이 있어 '항상 대등한 것'이 아닌, 이번에는 내가 도와주었으니 다음에는 상대가 도와주어야 한다는 등등, 상호 간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프롬은 지적하고 있다.
즉, 대등한 사랑은 어떤 사람이 단순히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 사람에게 나타나는 사랑의 형태이다.
(2) 무조건적인 사랑 :
프롬은 이를 일컬어 '모성애와 같은 사랑'이라고 불렀다.
이는 아이가 살아서 성장하는데 필요한 관심과 책임감은 물론 '살아서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가 좋은 것'이라는 느낌과 같은 감정의 전달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어머니 자신이 삶을 사랑하며 자녀를 사랑하는 데에서 행복을 느끼게 되면, 그 사랑의 감정은 자녀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대등한 관계의 사랑이 아니라는 점에서 형제애와 같은 사랑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어머니(혹은 양육자)는 언제나 도움을 주기만 하고, 자녀는 그 도움을 받기만 하기 때문이다.
(진실한) 모성애와 같은 사랑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언젠가 자녀가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부모의 품을 떠나 독립하는 것도 성장이다.
이와 같은 사랑의 본질은 자녀가 성장하도록 보살펴주는 것이며, 동시에 자녀가 부모에게서 독립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무런 조건 없이 상대가 행복하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은 진실한 모성애와 같은 사랑이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가 자신에게서 떠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하지만 떠나보냄으로써 자녀가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무조건적인 사랑의 본질인 것이다.
(3) 애욕적인 사랑 :
애욕적인 사랑은 종종 독점적인 특성을 갖는다.
이에 대해 프롬은 "애욕적 사랑은 타인과 결합해서 하나가 되려고 하는 강렬한 사랑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모든 사랑 가운데 아마도 가장 믿을 수 없는 형태의 사랑일 것이다." 라고 하였다.
다시 말해 애욕적 사랑은 성적인 결합을 의미하며, 대개 결혼을 통해서 이 관계는 절정에 달한다.
즉, 애욕적 사랑은 헌신적이고 기꺼이 경험을 나누고자 하는 태도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육체적인 결합은 애욕적 사랑에 내포된, '함께 나누는 경험의 하나'에 불과할 따름이다. 왜냐하면 육체적 결합의 욕구가 사랑에 의해 유발된 것이 아니라면, 그러한 결합은 생리적 욕구의 방출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애욕적 사랑은 어떤 의지(결의)를 내포하고 있다.
* 프롬은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강렬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결정이고 판단이며, 약속이다. 만일 사랑이 단순한 감정이라면, 서로를 영원히 사랑하기 위한 약속의 기반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자신의 행위가 판단 및 결정과 무관하다면, 애욕적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리라는 것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라고 했다.
(4) 자신에 대한 사랑 :
사람들은 대체로 남을 사랑하는 것을 선이자 덕(德)으로 여기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이기주의이자 악(惡)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성경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이는 자기 자신의 고결함과 독특성을 존중하듯이 타인에게도 그렇게 하라는 의미이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뜻이 아니다.
프롬은 "이기적인 사람들은 타인을 사랑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음에 틀림없다."고 했다. 다시 말해 자아에 대한 사랑과 이해는 타인에 대한 존경, 사랑, 이해와 구별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 것인지, 아니면 타인을 사랑할 것인지 선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들 두 가지는 양립 가능한 태도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관심, 존중, 책임, 이해에 근거한), 즉 자신의 삶의 행복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한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과 이기심이 정반대의 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5) 신에 대한 사랑 :
서양 사상에 있어 신(神)에 대한 사랑은 본질적으로 신에 대한 믿음과, 신은 존재하고 정의로우며, 사랑을 베푼다는 믿음과 같은 것이다.
또한 신에 대한 사랑은 정신적인 경험을 통해 가능한데, 동양의 종교와 신비주의에 있어서 이는 유일성(Oneness)에 대한 강렬한 감정의 경험이며, 이러한 사랑의 표현은 일상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연령과 지역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은 우주를 이해하고 종교적인 사랑을 통해 자신들의 삶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해 왔다. 따라서 신에 대한 사랑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삶에 대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도록 해준다.
(6) 정리 :
프롬은 생산성(인간의 잠재능력 개발)에 근거하여 사랑을 '생산적 사랑'과 '비생산적 사랑'으로 구분하였다.
비생산적 사랑은 수용형, 착취형, 저장형, 판매형과 같은 이른바 '비생산적 성격'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은 주는 일을 손해로 생각하여, 주기를 거부한다.
수용형의 사람들은 지나치게 수용적이어서 마조히즘적이고, 착취형의 성격은 상대로부터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기 때문에 사디즘의 경향을 띠며, 저장형의 성격은 자기파괴적이고, 판매형의 성격은 무관심하다는 특성을 지닌다.
💬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에게 얼마나) 매력적인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으면서도, 타인을 끌어당기는 매력의 본질이 자신의 사랑하는 능력에 있다는 것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
누군가를 생산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삶, 즉 그의 신체적 조건은 물론이고 그가 인간으로서 지닌 모든 힘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책임지겠다는 뜻이다.
* 출처 : 에리히 프롬, [자기를 위한 인간] 중에서
개인이 반드시 한 가지 유형만의 사랑을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어떤 종류의 사랑이라도 관심, 보호, 책임감, 성장과 행복을 향상시키기 위한 욕망을 느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타인을 존중하고 그와 따뜻한 결속을 맺으려는 열망을 지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출처 및 참조 :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문예출판사
[자기를 위한 인간], 에리히 프롬, 나무생각
[나를 찾아 떠나는 심리여행], 정종진, 시그마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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