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계절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 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 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거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 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 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대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 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 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 있다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동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 나태주, 《내가 사랑하는 계절》, 전문
✔시제(時祭) :
1. 음력 2월, 5월, 8월, 11월에 가묘에 지내는 제사.
2. 음력 10월에 5대 이상의 조상 무덤에 지내는 제사.
✔봉송(封送) :
물건(物件)을 선사(膳賜)하려고 싸서 보냄. 선사(膳賜)하려고 싸서 보내는 물건(物件).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시제,
[네이버 한자 사전], 봉송
* 굴품한 : '배가 고픈 듯한', '시장기가 드는 듯한'의 충청도 방언
예전에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힘들고 아프기만 했던 일들이, 시간이 흐르고 흘러 복기를 해보면 아련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마냥 즐겁기만 한 것도, 마냥 슬프기만 한 것도 아닌 것이 우리 일상의 다반사라지만 어쩌면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은 추억도, 기억도, 여러 장면들도 저절로 마모시키고 파편화시키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에게나 좋아하는 계절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하게 사계절로 뭉뚱 거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알고 보면 그 속에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내가 격렬하게 체험하고 맛보고 느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애잔하게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못 견디게 그리워 하지만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그 장면들. 지금 이 순간도 흘러가버리면 훗날 다시 떠올리며 웃거나 울 수 있을까.
마음을 기댈 곳 없는 사람은
자주 괜찮은척 합니다.
자신이 넘어졌을 때
일으켜 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아파도 아프지 않은척
슬퍼도 슬프지 않은척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척
괜찮은척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가장 힘들게 할 때도 있습니다.
생각을 잘 쉬지 못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늘 노력합니다.
(중략)
어떻게 해야 행복할지 모르겠는 마음
그 속에서 공허함과
외로움을 만나게 됩니다.
괜찮은 척하는 사람은
기댈 곳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그때 힘을 빼고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쉴 수 있게 됩니다.
-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다」,
글배우,
프롤로그 중에서
오래된 기도
가만히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기만 해도
맞잡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으기만 해도
말없이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기만 해도
노을이 질 때 걸음을 멈추기만 해도
꽃 진 자리에서 지난 봄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음식을 오래 씹기만 해도
촛불 한 자루 밝혀놓기만 해도
솔숲 지나는 바람소리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갓난아기와 눈을 맞추기만 해도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걷기만 해도
섬과 섬 사이를 두 눈으로 이어 주기만 해도
그믐달의 어두운 부분을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바다에 다 와가는 저문 강의 발원지를 상상하기만 해도
별똥별의 앞쪽을 조금 더 주시하기만 해도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나의 죽음은 언제나 나의 삶과 동행하고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정하기만 해도
기도하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우러르며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기만 해도
- 이문재, 《오래된 기도》, 전문
일테면 이 시는 무엇을 시작하기 전의 마음가짐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결심하고 다짐한 것을 본격적으로 행동으로 옮기기 전, 그것을 머릿 속이나 마음속에서 끄집어내어 굳이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마음뿐이고 눈팅뿐이라면 어떻게 그것을 시도하고,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고 아무리 되뇌어봐도 생각만 할 뿐,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고 일으켜 세우려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물론 다른 사람도 아닌 나 자신을 위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당연하지만, 타인을 위로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라고 하는 사람 속에는, 여러 가지의 작용과 반작용, 그리고 여러 가지의 에너지 역동이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믿을 수 있는 타인에게 기대는 것도 좋다. 좋아하는 일에 미치도록 몰두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진정으로 혼자가 되어보아야, 그때 내 속으로 한 번 될 수 있는 한 깊게 들어가 보아야, 겨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파편화되고 단편화된 나를 조금이라도 긁어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괜찮아요
나보다 더 동안인 친구를 보며
나보다 더 성과가 좋은 직장 동료를 보며
기죽지 말아요
세월의 흔적을 담고 있는 얼굴이라야
중후한 멋이 있지요
주변이 동료를 챙기며
서로 손잡고 천천히 가는것이 어쩌면
성과보다 더 의미 있는 일일거예요
긴시간 내어 여행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했다고
좋은 가방 명품 옷 한 벌 없다고 슬퍼하지 말아요
내가 사는 동네 뒷산의 사계절이
유럽의 어떤 풍경보다 아름다워요
단골가게에서 구입한 하늘거리는 옷 한 벌이
편안하고 자유로워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 주었잖아요
그대여
어깨를 활짝 펴보아요
그리고 고개 들어 하늘을 보세요
하늘 기운을 모아 그대 자신에게 속삭여 보세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충분히 근사하다고
말이 통하는 좋은 한 사람 있다면
그대의 나날은
매일 오후 두 시처럼 따뜻함이 스며들거예요
아~~정말 괜찮아졌네요
- 서윤덕, 《괜찮아요》, 전문
✔저자 서윤덕은
《현직》
인성드림교육원 원장
감동언어전문가
국가인권위원회 인권교육 전문강사
효인성교육강사
시 낭송을 활용한 감성교육강사
《주요경력》
서울대 특강
교도소특강
기관 및 학교 교육 강의
국회회관 행사 축시낭송 등 각종 행사 시 축시낭송
KBS 생방송 아침마당 출연 시낭송
《저서》
‘생각의 변신들’ 동인시집 발간
‘토근 한 개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동인시집 발간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서윤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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