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반가워야 할 첫눈이 지나치게 많이 와버렸다.
거의 30센티미터는 쌓인 눈과 그 아래로 질퍽거리는 길, 그리고 대중교통으로 몰린 사람들로 지하철역, 버스 정류장 할 것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눈발을 피하고자 사람들은 저마다 우산을 쓰고, 행여 미끄러지거나 넘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어기적 어기적 걸어간다.
눈 내리는 풍경, 마음으로 떠올리거나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아름답기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한가운데서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저마다의 사연과 사정이 부딪히고, 힘을 주어 조심스럽게 걷다 보니 어깨는 묵직하고 발목은 시큰거리게 마련이다.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의 그림 속에서, 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풍경을 발견한다. 우산을 하나씩 쓴 채 힘겹게 눈밭을 헤쳐나가는 사람들. 어제와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발목 위로 쌓인 채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눈은 보통의 눈보다 3배 이상으로 무겁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움직이고 있을까.
뉴스에서 블랙 아이스로 인한 연쇄 추돌 사고나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차양막이나 비닐하우스에 대한 소식을 듣는다.
거리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그저, 잘 뭉쳐지는 눈에 즐거워하며 올망졸망한 눈사람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나 또한 괜히 거기에 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리도록 아름답지만, 어쩐지 뒷감당이 어려울 것만 같은 풍경.
눈 오는 날
눈 오는 날엔
사람과 사람끼리 만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끼리 만난다.
그래서 눈 오는 날엔
사람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딴 데 가있는 경우가 많다.
눈 오는 날엔 그래서
마음이 아픈 사람이 많다.
- 이정하, 《눈오는 날》, 전문
밤새 하염없이 내리던 눈은 그쳤지만, 이제는 꽁꽁 얼어 현실의 무거움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내리던 눈의 마법으로 잠시 상념에 잠겼던 사람들이 서둘러 돌아가고 있다. 크고 튼튼해 보였던 우산들이 어느새 저만치 멀어진다.
그들이 밟고 다니는 질퍽한 눈의 잔해는, 어쩌면 고단한 현실에 지친 사람들의 한숨이 엉겨붙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