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쓰여 있는 각각의 글들은
한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이며,
시의 내용과는 관련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또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본 블로그에서 다루지 않는 것이
원칙입니다.
대설(大雪)
塡壑埋山極目同
전학매산극목동
瓊瑤世界水晶宮
경요세계수정궁
人間畵史知無數
인간화사지무수
難寫陰陽變化功
난사음양변화공
골 메우고 산 덮어 보이는 온 천지 모든 것이 하나가 되니
아름다운 옥의 세계이자 수정으로 만든 궁궐이라네
인간 세상에는 화가가 무수히 많기는 하나
자연이 음양을 변화시키는 공을 그려내기란 어려운 법이지
- 신흠(申欽, 1566~1628), 대설(大雪) 전문
💬 신흠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자는 경숙(敬叔), 호는 현헌(玄軒)·상촌(象村)·현옹(玄翁)·방옹(放翁), 시호는 문정(文貞), 본관은 평산이다.
조선 중기 문장의 4대가 중 한 사람으로 불렸으며, 이조판서, 대제학,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오른다.
* 출처 : [위키백과] 신흠
며칠 전 우리가 누리고 살던 대부분의 기능을 일시 마비시킬 정도로 큰 눈이 왔다.
끝없이 내리는 눈으로 인해 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을 방불케 했고,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으로 몰린 사람들은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려야 했으며, 습기를 잔뜩 머금은 눈의 무게는 차양막이나 지붕도 무너뜨릴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재량휴업으로 학교에 가지 않게 된 아이들은 그저 신이 나서, 생각보다 잘 뭉쳐지는 눈으로 각자의 눈사람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말이다.
첫눈이자 폭설은 그렇게 현실의 무게를 다시금 일깨워주고 며칠째 녹아내리고 있다.
보는 사람의 마음 상태, 또는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계절의 매직. 자연은 종종, 우리가 세운 도시를 얼마든지 무력화시킬 수 있는 힘을 보여준다.
설후(雪後)
雪後山扉晩不開
설후산비만불개
溪橋日午少人來
개교일오소인래
篝爐伏火騰騰煖
구로복화등등난
茅栗如拳手自煨
모율여권수자외
눈 온 뒤 산속 집 사립문은 닫혀 있고
시냇물 위 다리에는 한낮에도 인적이 드물구나
화로 속 불 모락모락 피어나 뜨거우니
주먹만 한 산밤을 손수 구워 먹는다네
- 이항복(李恒福, 1556~1618) , 《설후(雪後)》, 전문
💬 이항복은 조선 중기의 문신 · 정치가 · 작가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선조를 수행하여 의주까지 몽양을 다녀왔으며, 호성공신 1등으로 오성부원군(鰲城府院君)에 봉해졌다.
참판,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1600년 영의정에 이르렀다.
* 출처 : [위키백과] 이항복
대도시에서 폭설을 만나면 생업에 큰 지장을 받지만, 만약 그런 것에 초연한 상황, 일테면 산골에 작은 집 하나 짓고 자급자족하는 삶이라면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삶을 꿈꾸지만 어차피 그것은 꿈속의 꿈같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산등성이에, 초가삼간 지붕 위에 하염없이 눈 내리는 풍경은 영상으로 본다면 그 자체로 아름답지만 그것이 인구와 관련 인프라가 밀집해 있는 도시 지역에 집중적으로 내리는 현실이라면 우리의 마음은 얼어붙은 눈덩이처럼 차갑고, 묵직해진다.
그렇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어떤 상황하에서 어떤 마음을 지니고 있느냐에 따라 눈 내리는 풍경에 대한 감상이나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우리의 삶이란 대부분의 고통과, 약간의 기쁨과, 또 그보다도 적은 행복으로 지탱되는 것.
내리는 눈은 볕에 녹지만, 깊은 시름은 마음 속에 스며들어 눈물처럼 흐른다.
雪夜獨坐(설야독좌 : 눈 오는 밤에 혼자 앉아)
破屋凄風入
파옥처풍입
空庭白雪堆
공정백설퇴
愁心與燈火
수심여등화
此夜共成灰
차야공송회
부서진 집에는 찬 바람이 들고
빈 뜰엔 흰 눈이 쌓이는구나
시름에 겨운 마음 등잔불과 함께
이 밤 모두가 재가 된다네
- 김수항(金壽恒, 1629~1689), 《설야독좌(雪夜獨坐)》, 전문
💬 김수항은 조선 중기의 문신, 정치가, 학자이다.
그는 성리학과 주자가례의 원칙을 고수하는 송시열과 송준길을 지지하였고, 그들을 공격하는 남인들과 학문적, 사상적, 정치적으로 맞섰다.
서인으로서 2차례의 예송 때 남인과 대립했으며, 뒤에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리자 노론의 영수가 되었다. 의정부 영의정에까지 올랐으며 현종 묘정에 종사되었다.
* 출처 : [위키백과] 김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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