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쓰여 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입니다
(시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무더위
당신의 뜨거운 포옹에
나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무장해제 당하고 말았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두 팔은 힘이 쭉 빠지고
얼굴은 화끈거리고
심장은 멈출 것만 같다
온몸으로 전달되는
그대 사랑의 에너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류처럼 번져나간다
잔디밭이라도
어느 그늘진 곳이라도
아무 말없이 드러누울 테니
그대 맘대로 하시라
- 박인걸, 《무더위》, 전문
한밤중에 습식 사우나에서 잠을 청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 지도, 어언 한 달이 다되어 간다.
몸은 엿가락처럼 축축 늘어지고, 조금만 움직여도 땀은 비 오듯 쏟아지며, 이른바 짜증 게이지는 늘 채워져 있는 상태라,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여름이 한 달가량이나 더 늘어났다고 하는 것이 실감이 난다.
그러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날씨 얘기로 주변에 안부를 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입추는 벌써 지나고, 삼일 후면 더위가 물러간다고 하는 처서가 코앞인데도, 무더위와 열대야는 여전히 나를 뜨겁고 후끈하게 사랑하고 있다.
더위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이제 사양하고 싶은데 말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무더위에 늘어지고 지쳐있어야 하느냐는 생각에, 또 늘어지고 지친다.
무더위
너는
내 옷을 벗겼지만
너를 피해서
찬물을 만났어
온몸을 만져주는
다정한 찬물때문에
잠시라도
너를 잊을 수 있었지
- 김명수, 《무더위》, 전문
시간이 날 때마다 바다에 풍덩, 하고 몸을 담그는 상상을 해본다.
그 바다는 맑고 투명하며, 나 이외에는 아무도, 아니 물새와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이렇게 잠시라도 의식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으면,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이 더위를 어떻게 버텨낼지 자신이 없다.
끝없이 밀려오는 졸음과 더위를 식히고자 세수라도 할 요량으로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어보지만, 냉수와 온수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그냥, 따뜻하다.
그렇지, 이 맘때에 찬물을 쓰려면 지하수가 있는 시골에나 가야겠지.
좀처럼 식지 못하는 열기 때문에 창밖의 세상이 가끔 오렌지 빛으로 보일 때가 있다. 아, 정말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
열대야
뜨겁게 타오르는 팔월의 밤
끊임없이 끓는 정열을 과시하며
너도 나만큼 뜨거울 수 있느냐?
나 잡아봐라
메롱 메롱
잠 못 들게 하는구나!
- 김인숙, 《열대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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