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쓰여 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입니다.
바다에 오는 이유
누군가를 만나러 오는 것이 아니다
모두 버리러 왔다
몇 점의 가구와
한쪽으로 기울어진 인장과
내 나이와 이름을 버리고
나도
물처럼
떠 있고 싶어서 왔다
바다는 부자
하늘도 가지고
배도 가지고
갈매기도 가지고
그래도 무엇이 부족한지
날마다 칭얼거리니
- 이생진, 《바다에 오는 이유》, 전문
💬 충남 서산의 바닷가에서 태어나 평생 섬으로 떠돌며 시를 쓴 시인이다. 그는 시집 「그리운 바다 성산포」로 잘 알려져 있으며 「바다에 오는 이유」「섬에 오는 이야기」「섬마다 그리움이」「먼 섬에 가고 싶다」「하늘에 있는 섬」등 주로 섬에 관한 시를 많이 썼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이생진
어지러울 정도의 땡볕이다. 그늘을 찾아 걸으려니 그것도 어려워서 그냥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6월 중순에 찾아온 무더위. 몸은 절로 축 늘어지고, 마음은 인적이 드문 바닷가로 달려간다.
파도 소리를 떠올리면 조금 나아질까. 아니, 지평선 끝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도 좋겠다.
아니다, 그냥 무작정 바다에 뛰어들면 이 짜증스러운 마음도, 끈적하게 옷을 적시는 땀도 모두 씻겨나갈 텐데.
벌게진 얼굴로 휴대전화를 열어 편의점을 찾아본다.
전방 50미터, 게다가 길도 하나 건너야 한다고?
마른침을 삼키며 입술을 핥는다. 이 짭짤한 소금기.
비록 상상이기는 하지만 내가 바닷가에 다녀오기는 했나 보다.
칭얼거리는 것은 바다가 아니었다. 나였다.
근처 에어컨 실외기들이 바삐 돌아간다. 더위는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고래를 위하여
푸른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푸른 바다가 아니지
마음속에 푸른 바다의
고래 한 마리 키우지 않으면
청년이 아니지
푸른 바다가 고래를 위하여
푸르다는 걸 아직 모르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모르지
고래도 가끔 수평선 위로 치솟아 올라
별을 바라본다
나도 가끔 내 마음속의 고래를 위하여
밤하늘 별들을 바라본다
- 정호승, 《고래를 위하여》, 전문
한겨울의 바닷가를 생각한다.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눈도 오기 시작한다. 모래도 얼어 붙은 듯, 밟을 때마다 서걱서걱하는 소리가 귓가를 크게 울린다.
물새들은 낮게 날며 젖은 날개를 쉴 수 있는 바위틈을 찾아 나서고, 잠시 후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된다.
바다가 더 격하게 울면 울수록, 나도 그 무엇인가를 풀어 놓으며 눈물을 뿌려본다.
다 버리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비로소 후련한 마음으로 온전히 바다를 볼 수 있다고 여겼는데,
이상한 일이다. 바다는 아직도 내게 무엇인가가 더 남았다고, 그것조차도 다 짜내라고 한다.
더위는 가실 줄 모르고, 나는 한 겨울의 바닷가와 일생에 한 번 볼 수 있는지도 모를, 수평선 위로 올라온 고래를 생각한다.
여름 바다 풍경
돛 배 한 척이 딸꾹질을 하면서
수평선을 넘어간다
갈매기가 기웃거리는
해변에는
폭염이 이글댄다
와르르 달려오다가
무너지는 파도
마냥 기쁜 것은 아이들이다
까르르 까르르 파도를 탄다
수평선으로
돛 배 한 척이 딸꾹질을 하면서
사라진다
- 임종호, 《여름 바다 풍경》,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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