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쓰여 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입니다.
초여름
벚꽃 보러 왔던 사람들
다 어디로 갔나요
꽃 진 자리 자리마다
까맣게 빛나는데
꽃 보고 가신 사람들
다 어디에 있을까요
까맣게 익은 버찌 떨어져
꽃 떨어진 자리 자리마다
다시 까맣게 번지는데
고개 들어 꽃비 맞으시던
두 손 모아 꽃잎 받으시던
까치발로 발아래 꽃잎 피하시던
사진 찍어 급하게 보내시던
그 많던 고운 사람들
사람들은 그렇다고 해도
꽃 진다고 새잎 난다고
봄보다 먼저 떠난 당신
꽃 진 자리 새카맣게 영그는
빛나는 열매는 생각하지 않는
정작 봄의 완성은 외면하는
매번 그랬듯이 앞만 보는 당신
당신은 거기서 무얼 하는 건가요
- 이문재, 《초여름》, 전문
한낮의 뜨거움, 가만히 있어도 절로 떨어지는 체력, 아무래도 여름의 초입이기는 한가 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봄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문득 고개를 드니 볕의 힘은 사뭇 강력하다.
계절을 즐긴다는 것은 오로지 마음속에서만 존재할 뿐, 위의 시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느라, 아니 그러고 있노라고 다짐만 하고 있는 새에 그냥 흘러가고야 만다.
봄이 왔노라고, 봄꽃이 이렇게 예쁘니 눈으로라도 보고 즐기라고, 어떤 이가 보내왔던 몇 장의 사진을 다시 꺼내어 본다.
그 아름다움과 그 향기가, 뒤늦게 나의 살갗을 뚫고 들어온다.
봄은 가고, 초여름이 그 자리에 털썩 앉아서 이제부터는 나의 계절이야, 라고 말하고 있는 이때.
마치 지나간 뒤에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비로소 알기라도 하듯이.
6월 비
땅속 깊이 스며드는
빗줄기만큼이나
울려오는 첼로 선율이
유난히도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건
분명
땅만큼이나
내 마음도
심히 메말라져 있음이라
- 오보영, 《6월 비》, 전문
마음이 메마르다 못해 거북이 등껍질처럼 쩍쩍 갈라지기 시작한 것이 도대체 언제부터였던가.
지친 줄도 모르고 내달리기만 하다가 갑자기 나가떨어진 날은 또 얼마였던가.
마음이 묵직하다보니 낮게 읊조리는 첼로의 선율에 더욱 목이 마른 법.
그렇다. 어떻게든 자신이 넘어진 그 땅을 딛고 일어서려면, 머리 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어떤 울림이 있어야만 한다.
기왕 첼로 얘기가 나온 김에,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제(Sergei Rachmaninov, Vocalise)라는 유명한 곡을 첼로와 피아노 연주로 들어보시겠다.
마음의 비여, 계속 내려라.
내 목마름이 해소되고 내 마음의 응어리가 깨끗하게 씻겨나가 버릴 만큼.
6월엔 내가
숲속에 나무들이
일제히 낯을 씻고
환호하는 유월
유월엔 내가
빨갛게 목타는
장미가 되고
끝없는 산향기에
흠뻑 취하는
뻐꾸기가 된다
생명을 향해
하얗게 쏟아 버린
아카시아 꽃타래
유월엔 내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더욱 살아
산기슭에 엎디어
찬비 맞아도 좋은
바위가 된다.
- 이해인, 《6월엔 내가》, 전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