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쓰여 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이나 해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그 내용과 감상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수선화(Daffodils)
1
골짜기와 산 위에 높이 떠도는
구름처럼 외로이 헤매고 다니다
나는 문득 떼 지어 활짝 피어 있는
황금빛 수선화를 보았네
호숫가 줄지어 늘어선 나무 아래
미풍에 한들한들 춤을 추는 수선화를
2
은하수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처럼 총총히 연달아 늘어서서
수선화는 샛강 기슭 가장자리에
끝없이 줄지어 서 있었네
흥겨워 춤추는 꽃송이들은
천 송인지 만 송인지 끝이 없었네
3
그 옆에서 물살이 춤을 추지만
수선화보다야 나을 수 없어
이토록 즐거운 무리에 어울릴 때
시인의 유쾌함은 더해져
나는 그저 보고 또 바라볼 뿐
내가 정말 얻은 것을 알지 못했지
4
하염없이 있거나 시름에 잠겨
나 홀로 자리에 누워 있을 때
내 마음속에 그 모습 떠오르니,
이는 바로 고독의 축복이리라
그럴 때면 내 마음은 기쁨에 넘쳐
수선화와 더불어 춤을 추네
- 윌리엄 워즈워스, 《수선화》, 전문
💬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1770년 4월 7일 ~ 1850년 4월 23일)는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와 함께 쓴 《서정 담시집》으로 영문학에 있어 낭만주의를 개창하는데 기여한 영국의 중요한 낭만주의 시인이다.
그는 자연의 미묘한 아름다움을 깊이 관찰하고 사랑과 고요함을 노래하여 영국의 낭만주의를 대표했으며, 또한 1843년 영국의 계관 시인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워즈워스의 작품으로 시집 《서정 담시집》, 《루시 시편》, 《서곡》, 《대륙 여행의 추억》 등이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윌리엄 워즈워스
계관시인이라는 명칭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시대에
명예의 상징으로
월계관을 씌워준 데서 유래한다.
영국의 경우 종신제이며
지금은 총리의 추천으로 임명된다.
궁내관(宮內官)으로서 연봉을 받으며,
왕실의 경조사 때 시를 지어 바치는 등
특정한 의무가 주어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계관시인
[poet laureate, 桂冠詩人]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수선화》는 영국의 계관시인이자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시인인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의 1804년 작품으로, 《2권의 시집 Poeams in Two Volumes》(1807)에 수록되어 있다.
본래 "I Wandered Lonely as a Cloud(나는 구름처럼 외롭게 방황했다)" 라는 제목이었으나, 지금은 '수선화'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는 이 시는 시집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작품이며,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고향인 그래스미어 호반으로 거처를 옮겼었던 이 시기에 그는 《수선화》는 물론 《추수하는 아가씨》, 《뻐꾹새에게》,《무지개》 등 대표적 서정시들을 많이 썼다.
개인적으로 시는 기교도 중요하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를 다루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의 감흥을 불러 일으킨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면에서 워드워스가 평생 추구했던 지점, 즉 시어는 지나친 기교나 난해함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친근하고 소박한 것이어야 한다는 뜻에 깊이 동의하는 바이다.
봄철이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식물인 수선화.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여 결국 물에 빠져 죽은 나르시스(나르키소스)의 전설이 떠오르는,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눈부신 봄날의 한때를 상징하는 듯한 그 노오란 빛을 사랑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굳이 수선화가 아니더라도 지친 하루,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다가 우연히 발견한,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이름 모를 들꽃을 보며 위로가 되었던 적도 있을 것이다.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은 이렇게도 어려운데, 봄은 또 이렇게 지나간다.
나무 중 가장 사랑스러운 벚나무(Lovelist of Trees, the Cherry Now)
나무 중 가장 사랑스러운 벚나무는 지금
가지마다 만발한 꽃을 드리우고,
숲속으로 이어진 승마길 주변에 서있네.
부활절을 맞아 하얀 옷으로 단장하였네.
아, 내 인생 칠십 년 중에
지나간 스무 해는 다시 오지 않으리.
일흔 봄에서 스물을 빼면
기껏 쉰 번의 봄이 남는구나.
활짝 핀 꽃들을 바라보기에
쉰 번의 봄으로도 충분치 않으니
숲으로 나는 가리라
눈꽃처럼 만발한 벚나무 보러 가리라.
- 알프레드 에드워드 하우스만,《나무 중 가장 사랑스러운 벚나무》,전문
💬 영국의 학자, 시인. 영국 출신이며 캐임브리지대학의 유명한 고전학자로 20세기의 대표적인 학자 시인. 고전적인 간결한 표현과 절제되고 소박한 문체로 낭만주의를 표현한 서정시를 써서 유명해졌다. 『마지막 시 Last Poems』(1922)가 시집으로서는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두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
* 출처 : [yes 24], 작가 소개, A.E. 하우스먼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아래를 걸으면 눈부시다, 혹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닥에 떨어진 꽃잎처럼 덧없는 것이 세월이라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행복했던 날들에 대해 보통 '인생의 봄날'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것은 행복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음을, 그래서 한창 피어나는 봄처럼 짧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마치 우리들의 젊음처럼 말이다. 흐드러진 벚꽃의 향연보다도 더 생명력으로 가득차 있던, 우리들의 젊은 날.
인생이 칠십이든 팔십이든 백년이든 간에, 무엇을 세는 단위로서의 나이로 말하자면 그것은 얼마나 순식간에 지나가버렸던가.
기억이나 추억은 생생하다고 하지만, 지금의 마음가짐, 감정, 그리고 결과 등등은 그때와 사뭇 다르다.
그래서 현재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물론 과거가 현재의 어떤 동력이나 밑거름이 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는 언제나 지금 여기, 현재에 존재한다.
마음만은 추억 속 벚꽃나무 아래를 거닐며.
봄의 정원으로 오라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 잘랄루딘 루미, 《봄의 정원으로 오라》,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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