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늑대 인간(Werewolf)
보름달이 커다랗게 떠오른 어느 날, 달빛 속을 한 쌍의 젊은 남녀가 거닐고 있다.
그런데 순간 그들은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더니 이내 자신들의 가슴을 쥐어뜯는다.
곧 온몸에서 털이 자라고, 몸이 커지고, 손발에 갈퀴와 같은 발톱이 자라난다. 엉망으로 찢겨진 채 간신히 붙어있던 옷의 잔해마저 떨쳐버린 그들은 보름달을 향해 크게 울부짖는 한 쌍의 늑대가 된다.
그리고 곧 그들은 본능에 따라 인간을 공격하게 된다.
위는 우리들이 책이나 영화, 그리고 게임 등으로 흔하게 접하는 늑대인간의 평소 모습과 변신 과정을 대충 글로 옮겨본 것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힘과 회피 능력 등에서 인간을 가볍게 뛰어넘는, 하지만 평소(변신 전)에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인간들의 틈에 섞여서 살아가는 존재인 늑대 인간.
사실 이 무서운 혼종에 대한 언급은 생각보다 오래되었는데, 그것은 고대 그리스의 문학 또는 그리스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늑대 인간의 변신에 관해서는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 스키타이 북동쪽에 사는 '네우로이(Neuri)' 부족은 매년 며칠 동안 늑대로 변신하는데 이후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온다고 그는 말한다.
그리스 신화에도 인간이 늑대로 변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고대 그리스 작가 파우사나아스에 따르면 고대 아르카디아의 왕 리카온은 자신의 외손자이자 제우스의 아들인 아르카스를 죽여 그 고기를 제우스에게 바친다.
분노한 제우스는 리카온을 늑대로 만들어버린 뒤 하늘로 올려 이리자리가 되게 한다.
* 출처 : [세계 괴물 백과], 류싱, 현대 지성, p. 220
훨씬 후대이기는 하지만 게르만의 원시 전설에 따르면 '인간이 늑대 가죽을 쓰면 초인적인 능력, 즉 늑대의 힘을 가지게 된다'고 하였고, 노르웨이의 왕 해럴드 1세(하랄드 1세)가 거느린 전사 집단(또는 용병 집단) '울프헤드나'는 전투시 늑대의 가죽을 걸치고 싸웠다고 하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며칠 동안 늑대로 변신한다는 네우로이 부족의 이야기는 어쩌면 늑대를 신성시하고 숭배하는 동물 토템(토템 동물)의 일종으로, 그 부족이 정해진 날짜동안 늑대의 가죽을 쓰고 돌아다니거나(전투에 임하거나), 또는 인간을 늑대에게 제물로 바치는 의식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한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그 부족의 잔인성과 전투에 능한 모습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그리스 신화 속 리카온의 이야기는 고대에 성행했던 인신공양의 풍습이 어떤 계기로 인해 금지가 되거나, 사라지게 되는 과정을 압축해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특히 리카온의 이야기 속에는 그가 늑대로 변하게 된 것을 분노한 제우스가 내린 형벌, 즉 인간이 짐승처럼 변하게 되는 '저주(curse)'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띤다.
이와 관련하여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유명한 저작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에는 리카온이 신이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제우스에게 인간의 육체를 주었다고 되어 있다.
2. 저주(Curse)
마치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의 실락원 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리카온의 이야기는 범죄에 대한 신의 처벌 또는 형벌을 묘사해 놓았는데, 아무튼 이를 늑대 인간의 원형 또는 기원 신화로 보는 견해가 다수이다.
이렇게 늑대 인간에 관한 신화나 전설은 오래 전부터 존재하였지만, 정작 유럽인들은 15세기 이전까지는 여기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늑대 가죽을 뒤집어 쓴 채 전쟁터에서 괴력을 발휘하는 전사 집단의 이야기는 서서히 유럽의 전역으로 퍼져갔고, 그 과정에서 잔인성과 포악성이 부각되어 슬라브 지역의 전설 중 하나인 '블코들락(vlko-dlak, 늑대 가죽이라는 뜻이다)'을 탄생시키게 된다.
늑대 인간 전설은 당시에 대대적으로 벌어졌던 마녀사냥 과정에서 확산되기 시작하여 엄청난 공포를 몰고 왔다.
특히 16세기 말에서 17세기 초에는 늑대 인간을 목격했다는 보고가 끊이지 않았으며, 자신이 늑대로 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에 대한 재판 기록과 이와 관련한 의학자들의 연구도 많았다.
여기서 잠시 그리스 민담에 나오는 '브리콜라카스(βρυκόλακας')'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 그리스 전통에 따르면 파문당하거나, 정화되지 않은 땅에 묻히거나, 늑대나 늑대인간에게 상처입은 양의 고기를 먹는 등 신성모독을 하고 죽은 이가 브리콜라카스가 된다.
혹자는 늑대인간을 죽이면 강력한 흡혈귀로 되살아나며, 늑대인간 시절의 송곳니와 털투성이 손, 안광이 형형한 눈을 그대로 가지게 된다고 믿는다.
* 출처 : [위키 백과], 브리콜라카스
아마도 그리스의 민담은 발칸 반도를 통해 현재의 불가리아, 알바니아 등으로 전해졌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원래는 '늑대나 늑대 인간에게 상처입은 양의 고기를 먹는' 이라는 부분이 변형되어 '늑대 인간에게 물리면 그 사람도 늑대 인간(흡혈귀)'가 된다는, 이른바 '저주'의 전설이 된 것이 아닐까.
즉, 늑대 인간과 흡혈귀(뱀파이어 = 피를 빠는 늑대)는 동일한 원형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중세 유럽의 사상을 지배했던 기독교 신앙의 영향과 신성모독, 그리고 마녀 사냥 등의 이슈와 결합되어 더욱 유행하였다고 본다.
3. 그들은 누구인가
왜 하필이면 늑대가 특히 동유럽에서, 무시무시한 전설의 주인공이 되었을까. 대체로 야행성이고 무리를 지어 사냥하는 늑대의 습성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늑대, 또는 들개 등 개과의 동물이 먹이가 부족하여 민가 근처에 내려와 무덤 등을 파헤친 것을 본 사람들이 공포에 질렸고, 그 중 몇몇은 밤에도 번득이는 눈을 가진, 몸길이가 1미터가 넘는 짐승을 목격하였을 것이다.
보통 늑대는 바위 아래나 자연 동굴 같은 곳에 보금자리를 꾸미고 종종 사냥을 나온다.
어쩌면 산에서 그들을 목격한 사람들은 공포에 질린 나머지 그들이 무덤에서 나온 것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짐승의 입에는 피가 묻어있다. 피가 묻어있는 입으로 고개를 쳐들고 울부짖는다.
그 울부짖음은 곧 커다란 합창이 되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심장까지 얼어붙게 만든다.
물론 중세의 사람들이라고 해서, 늑대라는 짐승을 전혀 몰랐을리는 없다.
어쩌면 깊은 산속에서 짐승의 가죽을 쓰고 살아가는 야만인들이 남아있었을 수도 있다.
또는 종교적 탄압이나 어떤 학살을 피해 일부의 사람들이 깊은 산중에 숨어 살고 있었을 수도 있고, 그들이 종종 죽은 자의 무덤을 파서 그 부장품 - 의복 등 - 을 사용하였을 가능성도 있다.
💬 현대 학자들은 의학적 관점에서 늑대 인간 현상을 해석하고자 했는데, 먼저 포르피린증(피부가 빛에 민감해지고 정신질환을 일으키는 혈액병)에 걸린 환자일 거라는 설이 등장했다.
하지만 포르피린증 환자는 늑대의 특징을 보이지는 않기에 다모증에 걸린 사람일거라는 추측이 이어졌다. 그러나 다모증 역시 매우 희귀한 병으로 역사상 대규모로 출현했다는 늑대 인간 기록과는 맞지 않는다.
* 출처 : [세계 괴물 백과], 류싱, 현대지성, p. 223
늑대 인간이 은으로 된 탄환을 맞으면 죽는다느니, 늑대 인간에게 물리면 그도 늑대 인간이 된다느니 하는 말들은 늑대 인간 전설이 생겨난지 한참 뒤에 덧붙여졌거나 현대의 공포 소설에 비로소 등장한, 그 원형과는 큰 관련이 없는 창작의 산물이다.
어쨌거나 늑대 인간의 마력과 기이함만큼은 여전히 남아, 지금까지도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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