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ke a look
나 고양이는 집사에게 실망했다
나 고양이는 너보다 어리게 태어나서
영영 너보다 우아하게
영영 늙어갈 것이니
내 눈 속에 달이 차고 기우는데
깜빡이는 눈을 마주치지 않고
뒷동산에는 감자가 가득한데 캐지 않고
내 털이 지폐보다 귀한 줄도 모르고
투정이나 가끔 부리고
길에서 다른 고양이한테 가끔 사료나 챙겨는 주고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로 잊히겠니
어느 날 내가 다녀간 후에
아무도 할퀴지 않는 밤이 여러 번 지나더라도
타인을 너무 많이는 미워 말고
장롱 밑에서 내 털을 보고 울지나 말거라
- 김건영, 《Take a look》,전문
💬 작가 김건영은 고양이를 바라보며 책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 재택독서가. 집 나가는 첫째 고양이 단이를 기다리며 최근 편의점 앞에서 구조된 까만 고양이 밤이를 입양했다. 2016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 『파이』가 있다. 2019년 박인환 문학상을 수상했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김건영
이 시의 제목 《Take a look》, 또는 '떼껄룩'은 아시는 분은 다 아실 것이다.
넘치는 위트 속에 왠지 모를 짠함이 묻어나는 시라고 할까, 이 시를 읽으니 청소년 시절에 키우던 반려묘, 이제는 고양이 별에서 하루하루 늙어가는 나를 가만히 내려다 볼 녀석이 무지무지하게 그리워진다.
언제나 보석같은 눈으로 방구석이며 창틀에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녀석, 걸핏하면 냥편치를 날리거나 추우나 더우나 내 배 위에서 꼭 잠을 청해야만 직성이 풀렸던 녀석.
지그시 눌러대는 몸무게를 견디다 못해 뿌리치려고 할 때마다, 종종 내 뱃살에 생채기를 내며 끝까지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고자 했던 녀석.
그때는 잘 몰랐는데, 고양이의 수명은 평균 10년~16년 정도라고 한다(길냥이는 그보다 더 짧다고 함). 생각해보면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돌이켜보면, 만남이든 이별이든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녀석이 구석으로 숨어 잘 나타나지 않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마침내 무지개 다리를 건넌 이후, 한동안은 울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그저 그렇게 멍하니, 고양이처럼 시큰둥한 태도로 지냈다.
어느 날 덮고 자던 이불을 빨려고 세탁기에 넣으려는 순간, 여기저기 붙어있는 녀석의 털을 보고 나는 그만, 참았던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시기, 어떤 편견도 없이 나를 쓰다듬어 주었던 털뭉치 천사가 이 세상에 남긴 흔적.
너는 이제 여기 없구나.
다리에 힘이 풀리고, 눈 앞은 흐려지고, 목구멍에서는 꺼이꺼이, 해괴한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애도하는 마음, 애통해하는 마음은 유기체의 특권이 아닌가.
마음껏 눈물의 강에 푹 잠겨 있다가 겨우 빠져나온 어느 날, 낮잠을 자던 내 배 위에 무엇인가가 가만히 앉는 것이 느껴졌다.
움직이거나 번쩍 눈을 뜨면 그 달콤한 꿈에서 깨어날까봐, 나는 그저 눈을 감은 채 스르르, 그 느낌이 사라질 때까지 숨을 삼키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수호천사는 고양이 행성으로부터 잠시의 허락을 얻어, 나의 꿈속을 다녀갔다.
나의 보잘 것 없고 비루했던 한 때를 함께 해주어서 정말 고마워. 언제나, 언제까지나 널 잊지 않을게.
묘책(猫冊)
어느 날 나는
고양이에게 시를 읽어주었지
한 입으로 두 가지 목소리를 내는 복화술사의 시를
고양이는 오른발 위에 왼발을 포개고
갸우뚱 나를 보았네
나는 또 읽어주었지
허공에 못을 박으려고
매일 해머를 내리치는 시인의 시를
고양이는 등을 길게 늘이더니
뒷다리로 탓, 탓 귀를 털었네
나는 다시 고양이에게 시집을 보여주었네
진심을 증명하느라
밤톨만큼 작아진 고통을 깎고 깍는 시를
고양이는 앞발로 구슬을 굴려
구석에 처박아버렸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이번엔 수증기와 같은 시를 읽어주지
맛도, 의미도 없는 증발의 시를
a와 A, 매우 옥수수, 레몬은 매우 불구하고 탄다, 초와 바퀴
몹시의 과거와 순진한 새와 박하는, 식는다
죄가 없어요 플라스틱, 땀과 파이프는 흙과 마세요
고양이는 시옷으로 다문 입을
삼각형으로 벌리며 크게 하품했네
그럼 이 시는 어때?
뒤집힌 무당벌레의 발을 보고
자연의 평등과 지혜를 노래하는 시는?
고양이는 신경질적으로
소파를 우둑, 우드득 뜯어버렸네
나의 고양이야, 잘 들어 봐!
기교없이 담백한 시
갸륵한 순수의 시, 깨끗한...
고양이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리를 떴네
고양이가 시큰둥할수록
나는 시를 읽어주고 싶네
이미 찬양할 준비가 된
광신도처럼
생선 가시 같은
수염을 모으며
기뻐하네
- 신미나, 《묘책》,전문
💬 작가 신미나는 200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고 시집 「싱고, 라고 불렀다」 만화 「시(詩) 누이」, 「안녕, 해태」를 쓰고 그렸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신미나
고양이에게 시를 읽어주는 집사(시인)와, 시큰둥하게 반응하다가(고양이의 반응은 대부분 시큰둥하다. 또한 고양이는 인간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없으므로 더욱 그렇다), 이내 자기 하고 싶은대로만 하는 고양이,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창작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들이 눈앞에 그대로 그려진다(하지만 나는 고양이에 대한 시를 쓸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존경스럽다).
고양이를 세 글자로 달리 표현한다면, 글쎄, 아마도 '호기심'이 아닐까 한다.
고양이만큼 호기심이 왕성한 동물도 또 없을 것이다.
무서운 것도 많을 뿐더러(그래서 가끔 뭔가에 놀라 혼자 펄쩍펄쩍 뛰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매우 약한 존재지만 일테면 집사의 냉커피를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굳이 앞발을 가져가(고양이의 앞발은 레이더다) 한 방울을 콕 찍어 맛보는 동작은 그 얼마나 우아하고 귀여운가.
부르면 오지도 않다가, 한참이 흐른 후 자기가 내키면 골골거리며 다가오는, 멋대로의 존재.
만약에 사람이 그랬다면 진작에 손절당했을 그 행동조차도 사랑스러운 그 이름, 고양이.
넌 어디에 있니
여름에
신발은 문밖에 두고서
들어온 고양이가 있었다
나는 왜
자꾸만 이곳으로 올까요
되려 물으며 밥을 먹고
맞춘 눈을 아래에서부터 부풀려
감았다 뜨는
턱시도를 입은 고양이가
종이피아노를 연주한다고 했던가
골판지를 내어주자 열중하던
네가 잠이 들었을 때
작은 몸에서 들리던 소리와 진동이
종이피아노와 닮았더라는 기억
흰 배 검은 얼룩에 손을 얹고
너는 이제 고양이피아노
나비야 나비야
이리 날아오너라
고양이가 오지 않던 날이면
배앓이를 했다
창을 등지고 누워
빗소리도 종이피아노를 닮았다는 생각
노랑나비 흰나비
춤을 추며 오너라
창밖이 잘 보이지 않는 날에 내 마음은 더 잘 보였고
네가 오지 않는 날이 늘어나며
계절이 바뀌었다
지난 여름 너를 몰랐는데 다음
여름의 우리를 당연하게 여기는 건
도둑고양이의 마음일까 내가
길고양이가 지나간 길이었대도
할 수 없지
우리는 여름을 살았고 우리의 여름은 지났고
길 위에서
고등어나 치즈 같은
야옹 혹은 안녕처럼
이름이 아닌 이름들을 부르는 동안
네가 오지 않을
여름이 왔다
- 지현아, 《넌 어디에 있니》, 전문
💬지현아 작가는 2014년에 고라를 만났고, 2016년에 뭉이와 반달이를, 2017년에 백석을 구조했다. 네 고양이와 두 공간에서 지내고 있다. 책과 술을 팔아서 아이들의 사료와 모래를 산다. 시는 2011년부터 발표했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지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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