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빗소리가
잠을 깨웠습니다
잠든 사이
혼자 내리다 심심했던지
유리창을 두드렸습니다
잠 깨운 게 미안한지
그대 생각도 깨웠습니다
여전히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내 안에는 그리움이 쏟아집니다
참 많이 보고 싶은
그대가 주인인 새벽입니다.
- 윤보영, 《비》, 전문
💬 윤보영 시인은 200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동시 분야로 등단하여 『커피도 가끔은 사랑이 된다』 등 19권의 시집을 출간하는 등 시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일상적인 언어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섬세한 감정을 노래하는 시인의 시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중학교 국어교과서,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시인의 시와 가사가 수록된 바 있으며 ‘윤보영 동시 전국 어린이 낭송대회’가 개최되고 춘천, 파주, 문경, 양구, 성남 등지에 ‘윤보영 시가 있는 길’이 조성되기도 하였다.
또한 시인의 인터넷 팬카페 ‘바람편에 보낸 안부’, 팬밴드 ‘커피도 가끔은 사랑이 된다’, ‘윤보영 캘리랜드연구소’ 역시 시를 사랑하는 이들의 따뜻한 휴식처가 되고 있다.
* 출처 : [교보문고] 출판사 서평, 윤보영 작가
'커피 시인'이라는 애칭, 혹은 별칭으로 유명한 윤보영 시인의 「커피는 사랑으로 다가서는 핑계」에 수록된 작품이다.
때이른 무더위가 이제 아침 저녁의 선선함도 달구어버린 요즘, 정말 '적당히', 즉 그 어떤 피해도 없이 내리는 비를 기다리는 요즘이다.
가끔 밤 사이에 찔금찔금, 거의 이슬같은 빗방울이 조금 떨어지기는 했으나, 그야말로 온 것도 아니고 안 온 것도 아닌, 그 양은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러다 정말 사나운 기세로 폭우라도 쏟아져버리면, 사람이 마음이라는 게 정말로 간사하여 많이 오면 많이 온다고, 적게 오면 또 적게 온다며 툴툴거리게 될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처럼, 정말 적당한 양과 기세로 내리는 비는, 내 안에 있는 그리움을 저절로 불러 일으킬 것이다. 거실의 창틀을 건드리던 빗방울은 가만히 창문을 두드리고, 눈으로는 내리는 비를 보지만, 마음은 그 너머의 어떤 장면을 재생한다.
비 개인 여름 아침
비가 개인 날,
맑은 하늘이 못 속에 내려와서
여름 아침을 이루었으니
綠陰이 종이가 되어
금붕어가 詩를 쓴다.
- 김광섭, 《비 개인 여름 아침》, 전문
산업화 시기, 비정한 현대문명에 파괴되는 자연에 대한 향수를 주제로 한 「성북동 비둘기(1968)」로 유명한 시인 겸 독립운동가인 김광섭(1905~1977)의 또다른 작품이다. 여기서 '못'은 '연못'을 의미한다는 것은 잘 아시고 계실 것이다.
「비 개인 여름 아침」은 1938년, 그의 시집 「동경(憧景)」에 수록된 작품으로, 상대적으로 짧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는 시이다.
연못 속에 하늘이 비칠 정도로 비가 개인 맑은 여름 아침, 푸르고 울창한 수풀을 뜻하는 '녹음'이 종이가 되고, 연못 속에 사는 금붕어가 화자가 되어 '시'를 짓는다고 하는 내용이다.
이 시에 묘사되어 있는 풍경 자체가 한 폭의 수묵화, 또는 한지 위에 정성스럽게 쓰고 그린 시화를 떠올리게 하는데, 말 그대로 비 개인 아침의 청량함과 산뜻함이 손에 잡힐듯 다가온다.
여름 비
대낮에 등때기를 후려치는 죽비 소리
후두둑
문밖에 달려가는 여름 빗줄기
- 이성선, 《여름 비》, 전문
💬 시인 이성선(1941~2001)은 강원도 고성 출생이다. 속초중학교, 속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 농학과 및 고려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농촌진흥청에 근무를 했고 1970년 고향의 동광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지내기도 했고, 숭실대 문예창작과 교수를 지냈다.
1970년 『문화비평』에 「시인의 병풍」외 4편을 발표하였고, 1972년『시문학』에 「아침」, 「서랍」 등이 재추천을 받아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는 첫 시집 『시인의 병풍』(1974)을 시작으로 13권의 시집을 출간하였다.
간행순으로 보면 『시인의 병풍』(현대문학사, 1974), 『하늘문을 두드리며』(전예원, 1977), 『몸은 지상에 묶여도』(시인사, 1979), 『밧줄』(창원사, 1982), 『시인을 꿈꾸는 아이』(율도국, 1997), 『나의 나무가 너의 나무에게』(오상사, 1985), 『별이 비치는 지붕』(전예원, 1987), 『별까지 가면 된다』(고려원, 1988), 『새벽꽃향기』(문학사상사, 1989), 『향기나는 밤』(전원, 1991), 『절정의 노래』(창작과비평사, 1991), 『벌레 시인』(고려원, 1994), 『산시』(시와시학사, 1999), 『내 몸에 우주가 손을 얹었다』(세계사, 2000) 등이 있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이성선 [李聖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죽비(竹篦)'는 '죽비자'라고도 부르며, 불교에서 좌선 등을 할 때 수행자를 지도하거나 경책할 때 사용하는 도구(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죽비, 보통 40~50cm 정도이나, 2m정도로 긴 것도 있다)를 일컫는다.
즉, 불교와 관련된 영화나 드라마에서 좌선 중 졸거나 딴 생각을 하는 수행자가 있을 때, 스님들이 '딱'하고 내려치는 도구, 바로 그것이다.
스님들이 수행자들 사이를 누비며 죽비를 내리치는 소리 자체는 단음이지만, 이곳에서 정말 딱 한 번만 울리지는 않을 것이다. 쥐죽은 듯 고요한 경내 아래, 오랜 시간 좌선을 하다 보면 당연히 자세는 흐트러지고, 졸음은 쏟아지게 마련이다.
처음에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울렸을, 죽비 소리.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거의 리듬처럼 빈번하게 울리게 될 것이고, 마침내 문밖을 달려가는 여름 빗줄기처럼, 후두둑, 하는 소리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렇게 죽비 소리는 여름 빗줄기와 하나가 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