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낭만주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Sir Edward Elgar, 1857~1934)의 「사랑의 인사(alut d'amour, 작품번호 12)」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선율.
혹 제목은 모르더라도 누구나 한 번 들으면 '아, 이 작품?'하고 금방 알아챌 정도로 지금은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멜로디이다.
3분 내외의 비교적 짧은 연주 시간, 이렇게 귀에 착 감기는 선율도 또 없을 터인데,
사실 클래식 연주곡은 애절하고 슬픈 멜로디들도 많고, 바로크 시대에 유행했던 음악들은 또 웅장하고 화려하며, 박력이 넘치기도 하는데, 이 「사랑의 인사」는 빛나는 미래를 꿈꾸는 연인들에게 바쳐지는 헌사처럼 초롱초롱하고 맑은 느낌을 가져다준다.
오늘은 에드워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중심으로 그의 작품과 인생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1. 에드워드 엘가의 일생
영국의 낭만주의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는 1857년 잉글랜드 우스터 근교에서 태어났다.
피아노 조율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해 그는 거의 독학으로 음악을 배웠는데, 신분이 상대적으로 높지도 못했고, 음악교육을 정식으로 받지도 못했으며, 경제적으로도 넉넉하지 못한 형편이어서, 오랫동안 무명 작곡가로서 고생을 거듭했다.
그러던 그가 처음으로 음악가로서 인정받게 된 작품은 1899년에 발표한 《수수께끼 변주곡(‘수수께끼’ 창작 주제에 의한 14개의 관현악 변주곡 작품번호 36》부터였는데, 이후 《제론티우스의 꿈》, 《남국에서》, 《서주와 알레그로》, 《바이올린 소나타》, 《첼로 협주곡》등의 걸작들을 남겼다.
《사랑의 인사》와 더불어 엘가가 1901년 작곡한 《위풍당당 행진곡(Pomp and Circumstance Military Marches, 작품번호 39)》은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현재 영국에서 《위풍당당 행진곡》은 준국가(國歌)에 해당할 정도로 인기가 높으며, 많은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교향곡이다.
중년 이후에는 개인적으로도 상복이 많았는데, 1904년 기사 작위(Knight Bachelor)에 서임되었으며, 1911년 메리트 훈장, 1928년 로열 빅토리아 훈장 2급, 그리고 1931년에는 '준남작(1st Baronet of Broadheath)으로 승직되기도 했다(그의 이름에 'sir(경)'라는 호칭이 붙어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 출처 및 참조 : [위키백과], 에드워드 엘가
2. 운명적인 만남, 앨리스
물론 요즘에도 어떤 분야의 정식 교육을 받지 못하거나 오랫동안 그 분야에 종사하지 못하면 그 계통에서 인정받기가 매우 어렵지만, 신분제가 남아있던 당시의 빅토리아 왕조시대(Victorian Age, 1837~1901)에 평민으로 태어나,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에드워드 엘가에게 큰 고통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아무리 음악적인 재능을 타고났고, 실제로 실력이 있다고 해도, 출발점 자체가 다른 인생은 아예 좌절을 밑바닥에 깔고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실력을 검증받을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것은, 당해보지 않는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일이기에, 젊은 시절 그의 삶을 그냥 ' 고단함'이란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그런 그에게 1886년, 어쩌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것인지도 모를 운명적인 만남이 다가온다.
엘가에게 피아노 레슨을 받으러 온 9살 연상의 여성, 캐롤라인 앨리스 로버츠. 당시 엘가의 나이는 29세였다.
✅ 엘가와 앨리스는 너무나 다른 배경과 환경을 가진 사람이었다. 평민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늘 의기소침해 있던 엘가에 반해 캐롤라인은 명문가의 딸로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내 사랑에 빠졌고, 미래를 약속하게 된다. 캐롤라인은 엘가를 격려하며 엘가가 가진 능력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당시 캐롤라인은 그만큼 엘가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 그런 남자를 위해 헌신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캐롤라인의 조력 때문에 엘가는 자신감을 회복하고 작곡가로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되었다.
* [네이버 지식백과] 엘가, 사랑의 인사 (두산백과)
누구나 다 마찬가지겠지만, 인간은 자신의 일생을 통틀어 자신을 알아주고 이끌어주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조력자를 만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인생 자체가 크게 바뀔 수 있다.
음악적 재능과 열정을 지녔지만, 그것을 발휘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던 엘가는 분명, 자존감은 땅에 떨어지고 많은 것을 부정하거나 포기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런 그의 능력과 가능성을 인정해주고 확신을 가졌으며, 나아가 실제적으로 그가 작곡가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그녀의 등장은, 어두웠던 그의 인생에 한 줄기 빛과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유창한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스페인어를 구사했으며, 시인이자 저술가였던 그녀는 엘가를 만나기 전에 이미 몇 권의 책을 출판한 경험이 있었다(물론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와 하모니 관련 교육을 받아, 음악적 소양도 높았다).
당시에는 음악계에 진출하려면 평론가 집단에게 먼저 인정을 받아야 했기에, 그녀의 글솜씨와 비즈니스적 재능은 말 그대로 엘가에게 날개를 달아주게 된다.
3. 사랑의 인사
하지만 신분과 처지가 상이한 두 사람의 결합을 주변에서 순순히 받아들일리는 없었다.
특히 앨리스의 아버지는 두 사람의 만남을 극렬히 반대했던 것으로 유명하며, 나아가 상속권까지 박탈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엘가, 사랑의 인사).
이러한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1888년 7월에 둘만의 약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바로 이때 엘가가 그녀를 향한 사랑과 미안함, 그리고 고마움을 가득 담아 이 곡, 《사랑의 인사》를 선물했고, 그녀 또한 자신의 시 중 하나인 《새벽의 바람(Wind at Dawn)》을 그에게 선물하여 화답했다.
✅ 타이틀은 당초, 독일어에 유창했던 앨리스를 위해서 “Liebesgruss”(의미는 같다)로 명명되었지만, 출판에 임하여 출판사에게 프랑스어로 변경이 구해져 “Salut d'amour”로 한 것이다. 덧붙여 영어 타이틀은 "Love's Greeting"라고 한다. 악보의 매출은 호조였지만, 엘가에게는 수 파운드의 수입 밖에 얻어지지 않았다.
* 출처 : [위키백과], 사랑의 인사
즉, 원래 앨리스를 위해 《의미는 같다, Liebesgruss》라는 독일어 제목이었던 것을, 출판하는 과정에서 출판사가 임의로 그 제목을 프랑스어로 변경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사랑의 인사》는 피아노 독주,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이중주 버전, 첼로와 피아노 버전, 오케스트라 버전 등이 있는데, 현재는 바이올린 소품, 또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이중주 버전이 널리 사랑받고 있다.
아래는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이중주 버전에 대한 설명이다.
✅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이중주 버전은 4분의 2박자의 당김음으로 설렘과 긴장을 유도하며 시작된다. 이어서 특유의 우아하고 소박한 E 장조의 선율이 기분좋게 나타난다.
주제가 두 번 반복된 후 단조로운 리듬을 사용해 아주 짧은 전개부가 C단조에서 이어지고 원래의 E장조로 전조되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극적으로 긴장이 고조되는 듯하다가 해소된다.
다시 곡의 클라이맥스에서는 처음 곡이 시작할 때의 피아노 반주의 싱코페이션과 전개부에서 사용한 리듬을 변형시키며 E선 고음에서 G선 쪽으로 하행하며 더욱 더 드라마틱한 효과를 낸다. 그리고 다시 차분한 멜로디와 리듬으로 돌아와 곡의 따뜻한 분위기를 되찾으며 E선 고음에서 끝을 맺는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엘가, 사랑의 인사 (두산백과)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재능과 열정에 아파하던 한 청년이, 끊임없이 그를 지지해주고 인정해주며, 실제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진정한 조력자이자 동반자를 만나 화려한 꽃을 피우는 과정.
마음을 미래에 두고 서로에게 사랑과 헌신을 다짐하는, 두 사람만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꽃밭이 펼쳐지는 것 같은 《사랑의 인사》는 꿈꾸는 이들이 있는 한, 언제까지나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 아래는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중 제 9번 변주 님로드(Elgar Nimrod - Variations On An Original Theme, Op.36 Enigma 9.)에 대한 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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