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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정원, Art

✔앤디 워홀과 팝아트②(팩토리, 스튜디오, 믹 재거, 루 리드, 트루먼 커포티, 예술 노동자, 아트 워커, 그래픽, 일러스트, 회화, 대중예술)

by 이야기가 있는 정원 2021.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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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번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앤디 워홀과 팝 아트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다. 팝 아트의 개요, 팝 아트의 효시로 꼽히는 리처드 해밀턴,  팝 아트의 특징, 그리고 팝 아트의 대명사 앤디 워홀의 작품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글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란다.

 

2021.07.10 - [이야기가 있는 정원, Art] - ✔앤디 워홀과 팝아트①(Pop Art, 리처드 해밀턴, 대중예술, 반예술, 실크스크린, 팝 아트의 특징, 앤디 워홀 작품, 캠벨 수프 캔, 마릴린 먼로, 상업미술)

 

✔앤디 워홀과 팝아트①(Pop Art, 리처드 해밀턴, 대중예술, 반예술, 실크스크린, 팝 아트의 특징,

1. 팝 아트(Pop Art)란 무엇인가(ft. 등장배경) 세계 제 2차대전이 끝난 후인 1950년대,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는 경기회복에 힘입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정점에 이르게 되었다. 특히 미국은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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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팩토리, 앤디 워홀 작품의 구심점

 

앤디 워홀은 35세가 되던 1964년, 뉴욕에 '팩토리(The Factory)'라고 하는 스튜디오를 차린다. 이름부터가 '공장'인 이곳은 그가 추구하던 예술작품의 대량생산을 구현해내는 곳이었으며, 뉴욕 맨해튼 이스트 47번가에 소재한 창고형 작업실(당시)이었다. 

 

(팩토리의) 실내는 온통 알루미늄 포일과 은색 물감으로 덮여져있었으며, 고용한 조수들을 시켜, 실크 스크린 기법을 통해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생산하듯이 기계처럼 예술 작품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작업실 인근에는 클럽을 운영해 사교의 장으로도 활용했다.

처음 임대했던 창고가 아파트 건축을 이유로 헐리게 되어, 1968년 유니언 스퀘어에 있는 데커 빌딩(Decker Building)으로 이전했으며, 1984년까지 이 공간에서 작업을 이어갔다.

* 출처 : [위키백과], 팩토리(스튜디오)

 

 

* The Factory의 내부.

 

* 1968년 이전하여 1984년까지 사용했던 팩토리가 있던 데커빌딩. 사진출처 위키백과

 

 

■ 팩토리의 특징과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말 그대로 (고용한) 조수들 - 이들은 '예술 노동자(art worker)'로 불렸다 - 이 참여하여 대량생산 시스템(실크 스크린 프로세스 프린트)을 활용하여 기계처럼 예술작품을 생산해내는 것,

 

둘째, 당대의 예술가들, 일테면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루 리드, 작가 트루먼 커포티, 모델 에드 세즈윅 등이 모이는 사교의 장소로 쓰였다는 것이다. 

 

 

* 좌측(믹 재거-롤링 스톤즈), 우측(트루먼 커포티-소설가) 사진출처 위키백과

 

'사교'라고 하니 지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주가무를 펼치며 노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팩토리는 그렇게 단순한 곳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1967년, 앤디 워홀의 후원으로 인해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데뷔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 속칭 '바나나 앨범' - 가 발매되는데, 이 앨범은 당시로서는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간 전위적이고 난해하며 실험적인 음악으로 인해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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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대중예술을 대량생산해내는 '팩토리'에서, 당시 가장 난해하고 대중의 차가운 외면을 받았던 앨범이 프로듀싱된 것이다. 

 

어쨌든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비록 상업적인 성공은 거두지 못했지만 1960년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밴드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으며, 펑크 록, 아트 록, 뉴 웨이브, 얼터너티브 록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1996년에는 '록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다. 

 

또한, 흥미롭게도 미술 작품을 프린트로 찍어내는 본업 이외에 앤디 워홀이 도전한 '부캐', 즉 벨벳 언더그라운드로 대표되는 전위적인 음악을 비롯하여 《잠 Sleep, 1963》, 《첼시 걸즈, 1966》, 《악마의 죽음, 1974》 등의 영화 작품들은 대체로 평론가들로부터 두고두고 '괴작'으로 평가받았고,  무엇보다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5. 앤디 워홀, 그리고 팝 아트가 남긴 것

 

역사상 우리가 흔히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많다. 또한 천재들 중에는 자신의 본업 이외에도 보통 사람들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천재성을 발휘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한 의미에서 볼 때, 앤디 워홀도 이른바 천재의 범주에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대중적인 천재' 혹은 '그렇지 않은 천재'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가 자신의 대량생산(대량복제) 미술작품을 통하여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든지 간에, 팝 아트는 우리들의 일상 속에서 매우 흔하고 자연스러운 사물 등을 부각시켜서 이전에는 없던(또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나 그 규정적인 면에서 탈피하여 보기에 따라, 즐기기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새롭고 독창적인 대중예술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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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홀 미술관. 사진출처 위키백과

 

 

예를 들어 팝 아트를 규정할 때 그래픽인가? 일러스트인가? 그도 아니면 회화인가? 라는 질문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는 아마 없을 것이다. 팝 아트 자체가 규정적이거나 단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반대로 말해서 팝 아트는 위의 특징적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우리는 흔히 예술이라 하면 고상하고 품위가 있으며, 유서깊은 미술관, 우아한 음악이 연주되는 콘서트 홀, 격조있게 차려입은 전문가들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곧 그것이 우리들의 '통념'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것은 예술, 특히 미술을 종종 일부 계층에 의해 상상조차 못할 가격에 거래되는 '고가의 미술품' 등으로만 기억되게 하거나, 어떤 작가의 그림을 놓고 '대체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작가의 의도는 무엇인가'라고 하는 소모적인 논쟁을 주야장천 일으키게 하는 주요한 고정관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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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의 작품 세계는 대부분 ‘미국의 물질문화’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돈, 달러 기호, 식품, 잡화, 구두, 유명인, 신문 스크랩 등을 그렸다. 그에게 이런 주제들은 미국 문화의 가치를 의미했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는 언제나 코카콜라다. 대통령이 마시는 코카콜라는 내가 마시는 코카 콜라와 같은 그 콜라다". 그는 대중에게 익숙하고 유명한 이미지를 이용해 20세기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표현했다.
(중략)

워홀은 자신에 대해 물었을 때, "나를 알고 싶다면 작품의 표면만 봐 주세요. 뒷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라며 철저하게 '예술가의 내면'을 없애고 표면적임을 강조하였다.

그는 유명한 것에 애정을 숨기지 않고, 스타와 정치인이나 사고, 패션 제품을 그림의 주제로 삼았으며, 그것이 유명하고 또 내 자신도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또한 그 자신이 미국의 유명인이 되고 나서도 걸음을 흩트리지 않고, 유명인을 연출하여 작품을 제작하고 유지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다.

* 출처 : [위키백과], 앤디 워홀

 

 

어쩌면 워홀은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대부분을 차지하는 피상적인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익숙함, 워너비, 셀럽, 거기에 '내면'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오로지 보여지는 그럴싸함, 그것 뿐이다. 공허하고 무심하다. 

 

* 《지그문트 프로이트, Sigmund Freud》, Andy Warhol, 1980

 

하지만 우리는 성취 혹은 실패의 경험을 통해 어떠한 형태로든 변화한다.

 

그것은 매일매일의 일상의 반복, 즉 되풀이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유행은 돌고 돌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전과는 조금 다른 형태, 즉 어떤 형태로든 변화한 채로 다시 돌아온다.

 

한참 전 어떤 세대에서 유행하던 것들이 수십 년이 흘러 다시 돌아온다. 그것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그것은 힙하고 신박하며 쿨하다. 

 

일견 똑같아 보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똑같지도 않다. 진부할 수 있지만, 반대로 완전히 새로울 수도 있다.

 

팝 아트 스타일은 이제 우리에게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팝 아트의 속성이다.

 

팝 아트는 팝 아트, 말 그대로 대중들 스스로 즐기고 확장할 수 있는 예술이다. 

 

그렇게 무한확장 하다보면 조금씩 변한다.

 

일테면 '밈' 사진 밑에 달리는 캡션이 바뀌면 밈 자체의 의미가 달라지고, 영역이 달라지듯이. 

 

 

 

 

 

■ 팝 아트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작가, 에드워드 호퍼에 관한 글 : 

 

2021.05.23 - [이야기가 있는 정원, Art] - ✔에드워드 호퍼 작품(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밤의 사람들, 도시인의 고독, 조세핀 버스틴 니비슨, 아침 해, 리얼리즘, 하이퍼리얼리즘, 팝 아트, 히치콕, 마크 로스코)

 

✔에드워드 호퍼 작품(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밤의 사람들, 도시인의 고독, 조세핀 버스틴 니비

■ 「밤의 사람들 (Nighthawks)」 에드워드 호퍼, 1942년, 유화, 84 x 152cm, 시카고 미술연구소 * 출처 : 에드워드 호퍼 작품 갤러리  Edward Hopper at the National Gallery of Art 도시의 밤, 길 모퉁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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