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The Giving Tree,
쉘 실버스타인, Shel Silverstein,
시공주니어, 2017」
◆ 작가 쉘 실버스타인(Shel Silverstein : 1932~1999) :
미국 시카고 태생의 시인, 아동문학가, 만화가, 그리고 연주자 겸 작곡가. 소년 시절에는 유명한 야구선수가 되기를 희망하였으나 야구에 소질이 없음을 깨닫고 그림과 음악, 그리고 글쓰기 등에 눈을 돌렸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그는 1950년대에 한국에서 군복무를 한 바 있으며, 이 때 국군신문에 만화를 기고하기도 했다. 또한 1970년 그래미상을 탄 컨트리팝 가수 조니 캐시(Johnny Cash)의 ‘A Boy Named Sue’, 로레타 린 (Loretta Lynn)의 ‘One's on the Way’ 등 여러 노래와 영화음악 등을 작곡했다.
그의 작품은 시적인 문장과 함께 풍부한 해학과 번뜩이는 기지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그린 아름다운 그림들은 작품의 재미와 감동을 한층 더해 준다. 이런 그의 작품은 어린이들부터 어른들까지 세계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1999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및 참조 : 네이버 책, Yes 24, 쉘 실버스타인
■ 작품의 줄거리 :
어느 곳에 나무와 친구인 소년이 있었다. 나무와 소년은 언제나 나뭇가지로 그네를 타고 열매도 따먹고 즐겁게 함께 놀았다.
세월이 흐르고 소년이 찾아오는 일이 줄어 나무는 쓸쓸해졌다. 그러던 어느날 성장한 소년이 찾아왔다. 나무는 기뻐하며 예전처럼 자신의 열매를 먹으며 놀자고 했다. 하지만 소년은 난 이제 너무 자라서 열매같은 걸 먹을 시간이 없다고 했다.
소년은 자라나서 나무에게 일을 하기 위한 돈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자 나무는 자신의 열매를 가져가라고 했다. 소년은 나무의 열매를 가져가 팔아 돈을 얻었다.
더 자라서 어른이 된 소년이 찾아오자 나무는 예전처럼 가지에 매달려 그네타기를 하며 놀자고 말했다. 그러나 소년은 난 너무 커버려서 그네타기를 하기엔 너무 무겁다고 했다.
소년은 결혼을 하려면 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나무는 자신의 가지를 베어가서 집을 지으라고 했다. 어른이 된 소년은 나무의 가지를 모두 가져가서 집을 지었다.
또 더 나이가 든 소년이 찾아와 너무나 슬퍼서 어디론가 멀리 가고 싶다고 했다. 나무는 자신의 몸통을 베어가서 배를 만들라고 했다. 어른이 된 소년은 나무의 몸통을 베어가서 배를 만들어 멀리 떠났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 소년은 이제는 노인이 되어 돌아왔다. 그리고 나무에게 피곤해서 쉴 곳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무는 이제 나에게 남은 건 밑둥밖에 없으니 와서 그루터기에 앉으라고 말했다.
노인은 그루터기에 앉았다. 나무는 처음부터 끝까지 행복했다.
* 출처 : [나무위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줄거리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필자는 어린 시절 -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 경이었을 것이다 - 이 책,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생일선물로 받았다.
사실, 집 근처 문방구에서 봐둔 프라모델을 내심 1순위로 생각했던 탓에 - 마음에 둔 선물을 깊이 생각한 다음 텔레파시를 보내면 어른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 표정관리를 하느라 조금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이 책을 펼친 뒤로 몇 번이나 울컥했고, 또 몇 번이나 훌쩍훌쩍 울기도 했으니, 프라모델에 대한 갈망을 잠시나마 마음 한 구석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고나 할까.
3~4세 경으로 보이는 아이가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올려다보고 있다. 아이는 두 팔을 벌려 나무가 주는 과실을 받으려 하고 있다. 이 책의 표지와 뒤에 나오는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이 나무는 사과나무일 것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낌없이 주는 열매인 붉은 사과는, 소년을 향한 나무의 뜨거운 마음이고, 따뜻한 심장이며, 줄 수 있어서 행복한 나무의 일생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당시 마음을 나눌 친구가 거의 없었던 나를, 책 속의 친구인 나무가 언니처럼, 형처럼, 그리고 양육자처럼 돌보아 주는 것에 - 당시의 나로서는 누릴 수가 없었던 - 매료되었던 것 같다. 유년기의 나는 책이 친구였고, 부모였고, 형제였으니까(물론 프라모델도 빼놓으면 섭섭하다).
나 뿐만 아니라, 이 책에 아련하고 애틋한 기억을 갖고 있는 많은 독자들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읽으며 자신의 부모 혹은 양육자를 떠올릴 것이다.
양육자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아이는 성장한다. 아이는 요구하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고, 양육자의 그늘 아래서 보호를 받으며 안전의 욕구를 채운다. 나의 분신인 아이가 자라는 것을, 양육자는 경이로운 마음으로 지켜본다. 조건없는 사랑을 주며 양육자는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언제까지고 작고 소중할 것만 같던 품 속의 아이는, 더 이상 양육자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성장한) 아이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짝을 찾아 나무의 곁을 떠난다.
어른이 된 아이는 다시 나무의 곁을 찾아오지만, 이번에는 옛날처럼 나무가지를 잡고 그네를 타거나 열매를 따먹으며 놀려고 온 것이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나무를 찾아온다.
즉, 나무열매를 팔아 돈을 마련하거나, 결혼을 하여 살 집을 지으려고 나무가지를 베어가려고 온 것이다. 성장하여 자신의 길을 가겠다면 양육자의 품을 떠난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찾아와 '손을 벌린' 것이다.
현실에서의 우리도 학비든, 생활비든, 사업자금이든, 대출금 상환이든,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물론 단호하게 거절하는 부모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잔소리를 하면서도 성장한 아이에게 조건없는 도움을 준다.
도움이 절실한 자식의 얼굴에서, 언제나 해맑게 웃으며 자신을 기쁘게 해주던 아이의 모습을 본다. 양육자는 자신의 삶을 살았을 수도, 그렇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자식만은 스스로의 삶을 살길 바란다. 말로만 거는 조건을 담보로, 양육자는 자신의 분신에게 다시 열매와 쉴 곳을 제공한다.
아이는 누구나 어른이 되고, 또한 늙는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주고 밑둥만 남은 나무에게, 노인이 된 아이가 다시 찾아온다. 다시 돌아온 아이에게 나무는 이젠 더 이상 줄 것이 없다며 아쉬워 했지만, 아이 또한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그 옛날, 아이가 정말 아이였을 때처럼, 늙고 지친 아이는 다시 나무에게 의존하게 된다. 아이는 조용히 나무 밑둥에 걸터앉아 쉰다.
모든 인간은 도움을 받고, 도움을 주며 살아간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오래 전, 우리에게 안전하고 따뜻한 그늘을 제공했던 우리의 양육자이며, 성장한 우리가 누구에겐가 되어주는 어떤 모습이고, 의존과 독립(처럼 보이지만 사실 부분적인 의존인), 그리고 의존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우리의 인생일지도 모른다.
따뜻하지만 쓸쓸하고, 쓸쓸하지만 어딘가 그리운 우리들의 이야기, 우리는 나무를 찾아가고, 나무는 우리를 기다린다. 노인이 된 아이와 밑둥만 남은 나무가 다시 만나서 서로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장면은, 오래도록 우리들의 기억 속에 아름다운 편린으로 남을 것이다.
옛날에 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줄 수 있어서, 그래서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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