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괴물들이 사는 나라
「Where The Wild Things Are」,
모리스 센닥
(Maurice Bernard Sendak),
시공주니어, 2002
1. 작가 : 모리스 버나드 센닥
◆ 모리스 센닥(Maurice Bernard Sendak, 1928~2012) :
이 책의 저자인 모리스 센닥은 그림책의 역사를 통틀어 단연 돋보이는 거장이다. 그는 폴란드계 유태인 이민자 3세로 뉴욕의 빈민가인 브루클린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병약했던 탓에 집 안에 틀어박힌 채로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혼자 종이에 무엇인가를 끄적거리는 고독하고 섬세한 소년으로 성장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 수업에 거의 관심이 없었으나 자유분방하고 온화한 미술선생의 지도와 영향을 받아, 비로소 화가로서의 영감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샌닥의 책에는 어른들의 눈으로 꿰어 맞춘 어린이가 아니라, 살아 숨쉬고 제 나이만큼의 생각과 고민을 가진 ‘진짜 아이들’이 등장한다. 샌닥은 1963년 칼데콧상을, 1970년에 최고의 어린이책 작가들에게 수여되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을 받았으며, 《깊은 밤 부엌에서》, 《아주아주 특별한 집》, 《구멍은 파는 것》, 《범블아디의 생일 파티》 등 많은 작품들이 있다.
* 참조 및 출처 : 교보문고, 알라딘 중고서점
사진출처 : 알라딘 중고서점
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償)과 칼데콧 상(償)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償) :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상은 덴마크의 유명 아동문학가인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이름에서 따왔으며, 덴마크의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에서 2년마다 아동문학 저자와 삽화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일명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린다.
다른 상들과는 달리 상금은 따로 없지만, 덴마크 여왕이 직접 증서와 메달을 수여한다. 2016년 이수지 작가가 삽화부문 최종후보에 올랐으나 아쉽게도 수상하지는 못함으로써, 아직까지 한국인 수상자는 없다.
프랑스의 토미 웅거러, 영국의 앤서니 브라운 등의 유명작가 들이 이 상을 수여한 바 있다.
* 내용 출처 및 참조 : 나무위키
◆ 칼데콧 상(償) :
근대 그림책의 아버지라 불리는 영국의 예술가이자 삽화가 랜돌프 칼데콧을 기리기 위해 미국 어린이도서관협회(ALSC)에서 주관하는 그림책상으로, 1938년 처음 제정되어 이듬해부터 시상한 상이다.
칼데콧상은 수상자에게 청동색의 칼데콧 메달을 수여하는데, 칼데콧 메달의 전면과 후면에는 랜돌프 칼데콧의 그림책에 나오는 삽화가 새겨져 있다.
칼데콧상 제정 33주년을 맞이한 1971년부터는 칼데콧 수상자의 작품 다음으로 뛰어난 1~5권의 그림책을 칼데콧 아너 북(Caldecott Honor Books)으로 선정하여 칼데콧아너상도 함께 수상하고 있다.
칼데콧상은 전년도에 영어로 출판된 도서 중, 미국 시민이거나 미국에 거주하는 삽화가의 작품을 대상으로 수상작을 선정하며, 매년 여름에 열리는 시상식에서 수상자에게 메달을 수여한다.
칼데콧상은 아동문학 작가에게 수여하는 뉴베리상(Newbery medal)과 함께 "미국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이라 불린다.
* 내용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칼데콧상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3.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줄거리
어느 날, 맥스가 늑대 옷을 입고 (그 시기의 남자아이들이 할 법한)이런저런 장난을 치자, 엄마는 "이 괴물딱지 같은 녀석!"이라고 소리를 지른다.
맥스도 질세라, "그럼, 내가 엄마를 잡아먹어 버릴거야!"라고 맞선다. 이런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엄마는 세상에 없는 법.
엄마는 맥스에게 저녁밥도 주지 않고 방에 가두어 버리는 처벌을 내린다.
그런데 그 날 밤, 갑자기 맥스의 방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방 안에 느닷없이 나무와 풀이 자라더니, 마침내 바다까지 생겼다. 바로 항해를 시작한 맥스는 괴물나라에 도착한다.
보름달이 비추는 밤을 배경으로 노란 눈알을 굴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는, 땅딸막한 몸집의 괴물들.
맥스는 괴물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했지만, 이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현실로 돌아오고 싶어지는데...
바로 그 날 밤에 맥스의 방에선
나무와 풀이 자라기 시작했지.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신의 자녀들이나 아이들이 티없이 깨끗하고, 맑고, 밝은 감성만을 가지고 살아나가길 바란다. 아이들이 인지하지 못하는 이 현실세계는 밝고 맑기만 한 것이 아니라, 어둡고 으스스하며, 온갖 요령과 책략이 난무할 뿐더러, 심지어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안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어차피 성장하면 뼈저리게 체험할 일, 괜히 선행학습을 통해 지레 상처를 입을 필요는 없다는 심리의 반증일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좋은 것만 보고, 체험하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모리스 센닥이 처음 이 그림책을 발간했던 1964년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예쁘지 않은 그림체, 따뜻하고 푸근함의 대명사이어야 하는 엄마가 고함을 지르는 것은 물론, 엄마를 잡아먹겠다는 험한 말까지 하는 아들이라니. 이 무슨 적절하지 못한, 콩가루 집안의 스토리란 말인가.
물론, 자녀를 키워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이 시기의 아이들은 대부분의 것들을 거의 자기 맘대로 하고 싶어한다. 상황을 내가 통제하고, 내 힘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현실의 가정이라는 것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는다.
자신을 돌보아 주는 동시에 힘(권위)의 우위를 가진 양육자, 그리고 양육자의 사랑을 나누어 가지는 형제들. 가족은 엄연히 위계와 질서를 가진 일종의 사회조직이고, 그곳에는 지켜야 할 어떤 '규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아무튼 그의 책은 초기에 많은 비판과 논란의 중심에 있었지만(당시 일종의 '금서(禁書)'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후에 칼데콧 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모리스 센닥은 칼데콧 상을 수상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어린이의 갈등이나 고통을 전혀 드러내지 않은 허식의 세계를 그린 책은 자신의 어릴 때의 경험을 생각해 낼 수 없는 사람들이 꾸며 내는 것이다. 그렇게 꾸민 이야기는 어린이의 생활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
📝아동기에 양육자, 특히 어머니와의 애착 형성 정도는 삶을 영위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맥스가 화를 다스리는 방법에서 맥스와 어머니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맥스는 자신만의 환상세계에서 방 안을 밀림과 바다와 다양한 괴물들의 세상으로 만들어, 거침없이 행동하고 자유와 즐거움을 체험하고 돌아온다.
그 과정을 통해 맥스는 화를 다스린 상태가 되었고 이제 따뜻한 밥을 먹는다. 일차원적으로 저녁밥, 그 자체가 따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따뜻한 밥'의 의미는 '안아주는 환경(holding environment)'의 따뜻함을 포함하고 있다.
'안아주는 환경'은 위니콧(위니캇, Winnicott)의 개념으로 엄마와 유아 간의 상호작용을 강조한 용어다, 엄마가 아이를 보호하고 신체적으로 안아주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표현으로, 일차원적인 신체 접촉보다는 아이가 엄마의 관심 속에 안기는 것을 의미한다.
* 출처 : [그림책과 함께하는 시공관 독서치료], 시간성에 따른 그림책, p.49, 조난영
아이들은 이른바 성장통(growing pain)을 겪으면서 신체적인 성장을 이룬다. 이것을 질병이나 질환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신체적인 부분도 그러할진대, 갈등이나 좌절이나 고통과 같은, 인간에게 필수불가결한 심리를 '불편하다'는 이유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그래서일까, 주인공인 맥스를 보며 나는 어린 시절의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위니캇은 안아주는 환경(또는 안아주기)이 아동의 건강한 발달을 위한 핵심적인 요소라고 보았다.
문득, 환상의 세계에서 신나게 놀고 즐기던 맥스조차도 집으로 되돌아오게 만드는 매직 - 양육자, 혹은 주변의 가까운 사람이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환경(환경적 어머니) - 이 그리워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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