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번 시간에는 한국의 물귀신(수살귀) 중 하나인 '유인수'에 대해 알아보았다. 유인수에 대해 궁금하신 분은 아래의 글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란다.
1. 대서(大鼠)
저번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설화 · 야담집 「어우야담 於于野譚」 속에 등장하는 괴물, '대서'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어우야담에 등장하는 또 다른 괴물들에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조하여 주시기 바란다.
'대서'란 말 그대로 '큰 쥐'를 의미하는 것으로, 어우야담 속에서는 그 크기가 고양이만 하다고 묘사하고 있다.
작은 생쥐도 그러할진대 고양이만 하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어쩐지 징그러운 느낌이 든다.
보통 쥐의 천적은 고양이로 알려져 있고 민가에서 고양이를 기르게 된 이유도 쥐를 퇴치하기 위해서인데, 만약 쥐의 크기가 고양이만 하다면 어떻게 될까?
야생의 고양이는 보통 단독 생활을 하며, 쥐는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대체로 여러 마리가 무리 지어서 사는 습성이 있다.
쥐는 상위 포식자인 고양이를 만나면 죽은 척을 하거나 빠르게 도망친다.
그런데 자기의 몸집이 고양이만 하다면 그럴 필요가 없이, 무리를 지어서 고양이를 공격하면 된다.
몇 마리의 고양이가 근처에 있다고 할지라도, 최소 수십 마리의 '고양이만 한' 쥐떼가 나타나면 제아무리 날카로운 발톱이 최강의 무기인 고양이라고 할지라도 꽁지가 빠져라 내빼는 수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다.
2. 어우야담 속 대서
아래는 「어우야담」 속에 기록된 대서(큰 쥐)에 대한 이야기이다.
💬 보성 바다 한가운데에는 섬이 하나 있는데 쥐가 너무 많아서 '서도(鼠島)'라고 불렸다.
쥐를 퇴치하기 위해 고양이 몇 마리를 풀어놓았는데, 고양이만 한 크기의 쥐들이 떼로 몰려와서 고양이를 물어뜯었다.
고양이도 당황해 처음에는 싸우기 위해 공격했으나 결국 이기지 못하고 도망만 다녔다. 결국 숨을 구멍을 찾지 못한 고양이는 이리저리 도망만 다니다가 며칠 만에 모두 죽었다.
고양이만큼 쥐의 천적이 없으며 고양이가 한 번 물면 쥐들이 뿔뿔이 흩어지게 마련인데, 그 수가 많음에는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 출처 : [한국 요괴 도감], 고성배, 위즈덤 하우스, p. 54
개만큼은 아닐지라도, 고양이도 그 못지않게 송곳니의 힘이 강하다.
하지만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자기만 한 덩치를 가진 쥐들이 새까맣게 몰려들면 일단 튀는 게 상책이다.
이에 대해 「어우야담」은 '고립된 곳에 한꺼번에 많은 쥐가 서식하면, 그중에서 대서가 태어나기도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것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고양이만 하다'는 표현은 그 자체로 크기가 고양이와 정확하게 똑같다는 의미가 아니라, 보통 쥐보다 훨씬 크다는 말을 약간 과장을 섞어 이야기한 것일 수도 있다(예를 들어 공포에 질린 상태면 그 크기가 실제보다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우야담 속에 등장하는 다른 괴물들, 일테면 인어나 금강야차 등은 어딘가 상상 속의 이른바 '크립티드(Cryptid)' 즉 미지의 생물이라고 할 수 있지만 '대서'는 그렇지만도 않다.
3. 현대에도 나타나는 큰 쥐
일테면 사탕수수쥐과에 속하는 '큰 사탕수수쥐(Thryonomys swinderianus)'는 거의 0.6m(60cm)까지 자라고 몸무게는 최대 8.6kg에 이르며,
몇몇 나라들의 하수구 또는 지하철 역에서 엄청나게 큰 쥐(떼)들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나 관련 영상들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쩌면 「어우야담」 속에 등장한 '대서'는 일반 생쥐보다 훨씬 큰(꼬리 제외 약 22~30cm, 수컷 기준) '시궁쥐(Brown rat, 집쥐)'를 묘사한 것일 수도 있는데, 시궁쥐는 실제로 새끼 고양이보다 덩치가 더 크다(고양이의 경우 품종, 개체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다자란 성묘는 30~60cm).
중앙 아시아가 원산지인 시궁쥐는 18세기 초 배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가서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금은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을 정도로 그 생명력이 왕성하고 끈질기다.
특히 시궁쥐는 성질이 거칠고, 인가 · 창고 · 축사 · 하수구 등과 인가 부근의 경작지 등 사람에게 의존하여 생활하고 있으며, 나무도 잘 타고 물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다고 하니 「어우야담」 속 이야기가 그저 괴담이나 전설로만 여겨지지는 않는다.
여담이지만 한국에서는 쥐(鼠)를 십이지신 중 첫 번째로 풍요, 지혜, 다산, 근면의 상징으로 여겼고, '생원(生員)'이라는 관직명을 붙여 의인화하기도 했으니, 한편으로는 아이러니한 생각도 든다(서생원).
오늘은 「어우야담」 속 큰 쥐, '대서'에 대해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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