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심장에 맞지 않아도
사랑에 빠져버리는
천만개의 화살
그대, 피하지 못하리
- 양광모, 《봄비》, 전문
《사람이 그리워야 사람이다》, 푸른길, 2017 중에서
💬 양광모 시인은 1963년 경기 여주 출생이다. 경희대 국문학과를 졸업하였고, '여성시대 양희은, 서경석입니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등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과 중앙일보, 서울신문 등 다수의 언론 및 방송에 시가 소개되었다.
SK텔레콤노동조합위원장, 도서출판 〈목비〉 대표, (주)블루웨일 대표, (주)한국부동산지주 대표, 한국기업교육협회 회장, 청경장학회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휴먼네트워크연구소장, 시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 『나는 왜 수평으로 떨어지는가』, 『한 번은 시처럼 살아야 한다』, 『그대 가슴에 별이 있는가』, 『내 사랑은 가끔 목 놓아 운다』, 『썰물도 없는 슬픔』, 『내 안에 머무는 그대』, 『가끔 흔들렸지만 늘 붉었다』, 『그대가 돌아오는 저녁』, 『바다가 쓴 시』 외에 인생 잠언서 『비상』을 출간하였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소개, 양광모
[Yes 24] 작가소개, 양광모
실로 오래간만에 봄비가 오락가락 하고 있다.
초여름 같은 날씨에 목련(백목련과 자목련)과 벚꽃이 함께 피었다가, 부슬거리는 봄비에 또 함께 떨어진다.
원래 목련이 먼저고, 그 다음이 벚꽃인데, 이제는 서로 겨루다보니 함께 피고 함께 진다. 이것 또한 보기드문 장관이다.
목련은 만개할 때는 아름답지만, 잎이 땅에 떨어지면 보기 싫다고들 하는데, 이제 오락가락 하는 비에 벚꽃 잎도 함께 떨어졌으니, 둘 다 외롭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백목련과 자목련에 얽힌, 조금은 슬픈 전설이 떠오른다.
창틀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반가운 나머지, 고개를 내밀어 창밖을 본다. 주차된 차량의 지붕 위로, 간혹 지나는 행인의 우산 위로,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길냥이의 머리 위로, 가만히 봄비가 내린다.
찰나의 봄, 봄비 덕분에 잠시 멈추어 서서 느끼고, 즐겨본다.
양광모 시인의 《봄비》는 짧지만, 매우 길고 강력한 여운을 남긴다.
심장에 맞지 않아도/ 사랑에 빠져버리는/ 천만개의 화살/ 그대/ 피하지 못하리
가뜩이나 봄타는 사람의 가슴을 이렇게나 흔들어 놓다니, 봄비를 '사랑에 빠져버리는 천만개의 화살'이라고 표현한 것과, 결코 피할 수 없으리란 예언이, 마음을 더욱 촉촉하게 적셔준다.
다 당신입니다
개나리꽃이 피면 개나리꽃이 피는 대로
살구꽃이 피면 살구꽃이 피는 대로
비오면 비오는 대로
그리워요
보고싶어요
손잡고 싶어요
다
당신입니다
- 김용택, 《다 당신입니다》 전문
봄비
바람이 붑니다
가는 빗줄기들이 옥색 실처럼 날려오고
나무들이 춤을 춥니다
그대에게
갈까요 말까요
내 맘은 절반이지만
날아온 가랑비에
내 손은 젖고
내 맘도 벌써 다 젖었습니다
- 김용택, 《봄비》, 전문
💬 김용택 시인은 1948년 전북 임실에서 태어나 1982년 ‘창비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 등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을 수상했다.
시집 『섬진강』 『맑은 날』 『그 여자네 집』 『나무』 『연애시집』 『그래서 당신』 『속눈썹』 등과 산문집 『인생』 『사람』 『오래된 마을』『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김용택의 어머니』, 동시집 『콩, 너는 죽었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할머니의 힘』 등이 있다.
* 출처 : [교보문고], 저자 소개, 김용택
유독 봄이 되면 어떤 그리움 같은 것들이 더욱 강해진다.
춥고 긴 겨울을 버티느라 딴 생각을 못했던 탓인가, 아니면 눈앞에서 색색의 꽃이 피고, 그 사이를 밤이고 낮이고 연인들이 걸어다니고 있는 탓인가.
봄이 되면 괜히 옛날 앨범을 꺼내어, 일어나는 먼지에 잔기침을 하면서도 박제된 기억들을 들여다본다.
나이 탓이야, 아니야, 훈풍을 몰고 오는 계절의 탓이야, 아니야, 봄날에 흔들리는 얇디얇은 네 마음의 탓이야.
김용택 시인도 구구한 설명이 필요없는 작가이다. 오늘은 비가 오니,
비오면 비오는 대로/ 그리워요/ 보고싶어요/ 손잡고 싶어요/ 다/ 당신입니다
라는 싯구처럼, 무언가를 하루종일 그리워해보자. 그것도 좋겠다.
봄비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 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어스름인가.
애달피 고운 비는 그어 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 김소월, 《봄비》, 전문
《김소월 시집 진달래 꽃》, RHK, 2020 중에서
* 어룰(얼굴 ; 평안북도 방언)
* 꽃자리(꽃이 달려있다가 떨어진 자리)
한과 설움을 한국적인 가락에 실어(그는 민요시인으로 등단했다), 더없이 슬픈 마음을 표현하는 「진달래 꽃」,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먼 후일」, 「못잊어」 등을 써낸 국민시인 김소월. 그의 시는 다수가 '노랫말'이 되어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다(「진달래 꽃」, 「개여울」,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엄마야 누나야」, 등등).
짧은 삶도 삶이지만, 불과 5~6년의 문단 활동 동안 154편의 시와 시론인 '시혼(詩魂)'을 남겼으니, 만약 그가 조금 더 살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위의 시 「봄비」 또한 작품의 전면에 '서러움'이 서려있다.
물론 그의 작품 모두가 다 이렇게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어쩐 일인지 우리에게는 슬프고, 애달프고, 눈물이 나는 정서를 가진 시들이 더 유명하고, 더 많이 읽힌다.
하기야 비와 눈물, 이 둘은 노랫말 속에서, 시 속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서 언제나 함께 하는 친구 같은 것이니, 아아, 창밖에 다시, 잠시 그쳤던 봄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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