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에 나오는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이나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입니다.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비 오는 가을밤 (秋夜雨中)
가을바람에 괴롭게 읊조리고 있건만
세상에 내 마음 알아주는 이는 없구나
깊은 밤 창밖에 비는 내리는데
등불 앞에서 마음은 만리길 고향을 달리는구나.
秋風唯苦吟 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 최치원, 《추야우중, 秋夜雨中》, 전문
💬 9세기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다. 중국 당 나라에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신라로 돌아온 뒤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정치 개혁을 추진하였다.
유교(儒敎)ㆍ불교(佛敎)ㆍ도교(道敎)에 모두 이해가 깊었고, 유ㆍ불ㆍ선 통합 사상을 제시하였다. 수많은 시문(詩文)을 남겨 한문학의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최치원 [崔致遠]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신라 말기의 유학자이자, 문장가인 최치원(857~?)의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는 12세의 나이로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6년만인 18세때에 '빈공과(賓貢科, 당나라의 과거 시험 중 하나로 외국인에게 열려 있던 시험이다. 주로 발해와 신라인들이 많이 응시하였다 : 출처 [네이버 지식 백과], 두산 백과')에 합격(무려 장원)하여 관직에 진출하였다.
당시 신라에는 따로 과거제도가 존재하지 않았고, 골품제로 인해 6두품은 관직에 진출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신분상 차별을 겪었던 6두품 출신들이 당의 빈공과에 많이 응시하였다고 한다.
최치원, 하면 국사 시간에 달달 외웠듯 '토황소격문'이 떠오르는데, 이는 당나라 말기에 해당하는 당 희종(僖宗) 치세에 일어났던 대규모의 농민 반란인 '황소(黃巢)의 난'을 일으킨 황소에게 항복을 권유하는 글을 최치원이 썼기 때문이다.
토황소격문을 '격황소서(檄黃巢書)'라고도 한다.
다시 위의 시로 돌아가서, 《추야우중》은 그의 대표작중 하나로 꼽힌다.
💬 「추야우중」은 지금까지 결구의 의미 내용을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최치원의 귀국 이전의 작품이라고도 하고, 또는 귀국 후의 작품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계원필경』에 수록되어 있지 않고 그의 시 경향과 내용으로 보면 귀국 후의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최치원의 시의 경향을 보면 그가 고변(高騈)의 종사관이 되기 이전의 시기에 지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는 작품들에서는 대체로 회의와 자조가 흔하게 발견된다. 그러나 귀국의 길에 올랐을 때에 읊은 몇 편의 시작에서는 그의 고고한 세계관이 나타난다.
「추야우중」의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서도 결구의 ‘萬里心(만리심)’은 언표(言表)에 나타난 그대로 만 리 타국에 있는 작자의 심경이기보다는, 마음과 일이 서로 어그러져 세상과는 이미 천 리 만 리 떠나고 있는 작자의 방황하는 심회를 호소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추야우중 [秋夜雨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차가운 가을 바람은 쓸쓸함을 전해준다.
계절의 그 쓸쓸함은 몸을 타고 마음 속으로 들어가, 진솔함을 나눌 벗 하나없는 처지를 한탄하게 만든다.
깊은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의 귀에 마침, 가을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그리고, 어지러운 마음은 이미 만리 밖으로 달려나가며 흩어진다.
여자의 원망 (閨怨)
달 밝은 다락에 가을은 깊어가고 옥병풍은 허전하구나
서릿발 친 갈대밭에는 기러기가 내려앉는데
거문고를 타고 있어도 그 사람은 오지 않고
연꽃만 들못 위로 조용히 떨어지네
月棲秋盡玉屛空 월서추진옥병공
霜打廬洲下暮鴻 상타여주하모홍
瑤琴一彈人不見 요금일탄인부견
藕花零落野塘中 우화영락야당중
- 허난설헌, 《규원, 閨怨》
'규원'의 '규(閨)'는 안주인, 혹은 부녀자가 거처하는 방을 의미하며, 시험 문제에도 자주 오르는 '규원가(閨怨歌)'가 그녀의 작품이라는 설과 그녀의 동생인 허균의 첩, '무옥'이라는 설이 함께 전하고 있다('작자 미상'이라고 하기는 하나, 허난설헌이 지었다는 설에 더 무게를 두고 있으며, 위의 시 '규원'과 '규원가'는 다른 작품이다).
어쨌든 원만하지 못했던 결혼 생활(남편과의 불화), 천재적인 예술성을 지니고 있었으나 당시 조선이라는 사회에서 겪어야 했던 차별, 자식들의 죽음 등등으로 허난설헌의 삶은 그야말로 슬픔의 연속이었다.
이 시 '규원'은 규방에서 오지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쓸쓸하게 읊조리는 원망의 노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 날 님을 그리다(秋思)
어젯밤 가을 서리에 기러기 울고 가는데
다듬이질 하던 아낙 남몰래 다락에 올랐네
아득히 멀리 계신 님은 소식도 닿지 않으니
높은 난간에 홀로 기대어 시름만 깊어가네
昨夜秋霜雁叫秋 작야추상안규추
擣衣征婦急登樓 도의정부은등루
天涯尺素無緣見 천애척소무연견
獨倚危欄暗結愁 독의위란암결수
- 이매창, 《추사,秋思》,전문
조선 중기, 여성 예술인 이매창(이향금)의 시이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신사임당의 첫째 딸인 이매창과는 다른 인물로, 동명이인이다).
당대의 문장가였던 유희경과의 사랑으로 매우 유명했으며,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에는 '유희경 이매창 시비(詩碑)'가 있고, 전라북도 부안에는 이매창의 무덤과 시비가 있다(그리고 그녀를 추모하여 세운 매창 공원도 있다).
교과서에도 오른 '이화우 흩뿌릴제'가 바로 이매창의 작품이다.
아래는 이매창과 유희경에 시에 대한 참조 글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