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있는 글은 곡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이나 평이 아닙니다.
그저 개인의 소소한 감상일 뿐이니,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 슬픔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슬프다'라는 표현을 자주 하지만, 정작 이 정서적 덩어리가 명확하게 어떤 것인지는 정의 내리기가 상당히 어렵다.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 것만을 슬픔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기대했던 어떤 대상에게 실망하거나 낙심한 것도 슬픔의 일종이고, 원하는 것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 오는 좌절감도 슬픔의 일종이며, 격렬하게 분노하며 감정을 쏟아내는 것도 슬픔의 일종이다.
국어사전에서 '슬픔'을 검색하면 아래와 같이 나온다.
1. 슬픈 마음이나 느낌
2. 정신적 고통이 지속되는 일.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슬픔
즉, 슬픔이란 매우 복합적인 감정으로서, 내가 슬픔을 느끼는 그 대상과의 연계성에 따라 깊거나 혹은 얕거나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사랑을 예로 든다면, 깊이 사랑한 상대와 이별을 했을 때 그 고통이 더욱 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소개하고자 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클래식(음악)'이라는 타이틀도 어떻게 보면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음악을 다 들어보지 않는 이상, 위의 타이틀을 단정 짓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며, 그것 자체가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1. 토마소 비탈리(Tomaso Antonio Vitali)
현재 '세상에서 가장 슬픈 클래식 음악'이라고 검색을 하면 비탈리의 샤콘느(G단조)가 결과로 나온다.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1663~1745)는 흔히 말하는 바로크 시대 중 후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작곡가. 바이올리니스트이다.
💬 토마소 안토니오 비탈리(Tomaso Antonio Vitali , 1663년 3월 7일 ~ 1745년 5월 9일)는 바로크 시대 중후반의 이탈리아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이다 .
조반니 바티스타 비탈리( Giovanni Battista Vitali)의 장남인 그는 바이올린과 콘티누오를 위한 샤콘 G단조(Chaconne in G단조)로 주로 알려져 있다.
* 출처 : [위키 백과], 토마소 바탈리
현재 그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있지 않고(상대적으로 그의 아버지인 조반니 바티스타 비탈리에 대한 기록이 더 풍부하다), 오로지 '샤콘(샤콘느, 차코나, chaconne)'하면 마치 연관 검색어처럼 그의 이름이 따라붙는다.
샤콘 혹은 샤콘느에 대해 대해서는 아래의 글을 참조하시라.
✅ 샤콘(샤콘느, chaconne) :
17~18세기에 널리 쓰인 기악곡 형식으로, 슬픈 분위기와는 달리 원래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에서 유행한 춤곡에서 유래했다. 샤콘느는 바로크 기악 모음곡의 일부를 차지하던 한 양식으로 비탈리의 '샤콘느'와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이 유명하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샤콘느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2. 비탈리의 샤콘느
샤콘느를 들으며 '아 기쁘다', 하는 식으로 감상을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 이 곡을 해석(또는 편곡)하는 연주자들에 따라 서로 조금씩 다르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의 바이올리니스트, 고소현이 연주하는 비탈리 샤콘느 G단조. 어떠셨는가? 곡 전체에 흐르는 슬픔의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면서, 매우 정결하고 품위있게 해석하고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결코 감정의 극한까지 치닫지 않고 담담하게 표현해내는, 슬픔으로 치면 소리없이 우는 것에 가깝다고 할까. 물론 가슴 속에는 여러 가지 장면과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히고 충돌하겠지만 말이다(피아노 반주 후에 툭하고 튀어나오는 바이올린의 선율이란!).
야샤 하이페츠(Jascha Heifetz, 1901~1987)는 20세기 가장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이며,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로도 꼽힌다.
완벽에 가까운 기교와 음색 덕분에 기계적이고 차갑게 들린다는 평도 있었는데, 분명한 것은 그의 스타일이 후학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젊은 연주자들로 구성된 레이어스 클래식의 비탈리 샤콘느이다. 애수가 깃든 탱고 리듬과 다양한 편곡을 도입해서 재해석한, 그야말로 격정적으로 터뜨리는(분노에 가까운) 감정선이 일품이다.
나는 비탈리의 샤콘느를 이들의 연주로 처음 접했는데, 언뜻 들으면 전혀 다른 새로운 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차오르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목놓아 우는 사람의 심정이 이럴까.
이처럼 듣는 사람에 따라, 연주자의 호흡에 따라 곡이 가져다주는 느낌은 조금씩 다를 수 있다.
* 덧붙이자면, 비탈리의 샤콘느는 사실, 아직까지 T. A. 비탈리의 작품이라는 확실한 근거가 없는 상태라고 한다. 앞에서 말했듯 그의 생애 대부분이 그의 아버지처럼 많이 알려지지 않은 관계로 이 작품은 이 사람의 것이다, 라는 당시의 출판물이 명확하게 남아있지 않아서 그 진위 여부가 여전히 논쟁 중에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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