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월
햇살 짜글거려
화드득 타는 배롱나무
타는 매미 울음
타들어가는 밭고랑에
어머니
타는 속내가
녹음보다
더 짙다.
- 조민희, 《칠월》, 전문
*아래는 시의 본문에 나오는 '배롱나무(Crape Myrtle)'에 대한 설명이다. 배롱나무는 꽃이 오랫동안 피어있어서 '백일홍 나무'라고도 부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백일홍(Zinnia)'과는 다르다.
분명 폭우가 쏟아진 곳은 말도 못 하게 쏟아졌었는데, 또 안 온 곳은 거의 오지 않았다. 필요한 곳에 너무 많지도 너무 적지도 않은 만큼만 내려주면 좋으련만, 해마다 가뭄이 지는 곳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의 마음은 어떨까. 감히 짐작이 되지 않는다.
어떤 곳에서는 녹음이 우거져서 보기가 좋느니 어떻다느니 하지만, 또 오매불망 비를 기다리는 곳에서는 목이 타고, 가슴이 타고, 애가 탈 것이다. 처해 있는 환경에 따라, 사람의 마음과 감정은 정 반대로 움직일 수 있다.
능소화
누가 봐주거나 말거나
커다란 입술 벌리고 피었다가, 뚝
떨어지는 어여쁜
슬픔의 입술을 본다
그것도
비오는 이른 아침
마디마디 또 일어서는
어리디 어린 슬픔의 누이들을 본다
- 나태주, 《능소화》,전문
중국이 원산지인 '능소화(Chinese trumpet creeper)'는 나팔꽃(영어식 이름에도 '트럼펫'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모양으로 생긴 덩굴 식물로, 옛날에는 양반가에서만 심어 기를 수 있어, '양반꽃'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꽃은 7월에서 8월, 딱 이맘때 핀다).
💬 능소화(凌霄花)는 ‘하늘을 능가하는 꽃’이란 뜻이다. 오래전에 중국에서 들여온 식물로 우리나라에서는 양반들이 이 나무를 아주 좋아해서 ‘양반꽃’이라고도 했으며, 평민들은 이 나무를 함부로 심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지금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사찰 담장이나 가정집 정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관상수가 되었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능소화 [Chinese Trumpet Creeper,
Chinese Trumpet Flower, 凌霄花]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누가 봐주거나 말거나/
커다란 입술 벌리고 피었다가, 뚝/
시인의 시구처럼 능소화 꽃은 꽃이 질 때 그 꽃 자체가 통째로 떨어진다고 하는데, 아마도 시인은 능소화 꽃이 떨어지는 장면을 마침 보았던 모양이다.
다른 꽃들처럼 하나씩, 바람에 흩날리듯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싯구처럼 통째로 뚝, 하고 떨어지다니, 시인은 거기서 커다란 입술, 그리고 슬픔의 입술을 떠올렸나 보다(시인의 의도는 시인만이 알고 있는 법, 이것은 그냥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능소화에는 '소화'라는 궁녀에 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 옛날 어느 궁궐에 복사꽃 빛 고운 뺨에 자태도 아리따운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다. 임금의 사랑을 받게 되어 빈의 자리에 올라 궁궐 어느 한 곳에 처소가 마련되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임금은 빈의 처소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빈이 요사스러운 마음을 먹었더라면 갖은 수단을 다해 임금을 불러들이려 했을 것이건만, 마음씨 착한 빈은 이제나 저제나 하며 임금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다른 비빈들의 시샘과 음모 때문에 궁궐의 가장 깊은 곳까지 밀려나게 된 그녀는 그런 것도 모른 채 임금이 찾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혹 임금의 발자국 소리라도 나지 않을까 그림자라도 비치지 않을까 담가를 서성이기도 하고 담 너머로 하염없는 눈길을 보내기도 하며 애를 태우는 사이에 세월은 부질없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기다림에 지친 이 불행한 여인은 상사병에 걸려 ‘담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는 애절한 유언을 남기고 쓸쓸히 죽어갔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한여름 날, 모든 꽃과 풀들이 더위에 눌려 고개를 떨굴 때 빈의 처소를 둘러친 담을 덮으며 주홍빛 잎새를 넓게 벌린 꽃이 넝쿨을 따라 곱게 피어났다.
이 꽃이 바로 능소화라 전해진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능소화
(문화원형백과 우리꽃 문화의 디지털 형상화 사업, 2010.,
문화원형 디지털콘텐츠)
칠월에 거두는 시
유월의 달력을 찢고
칠월의 숫자들 속으로
바다 내음 풍기는 추억의
아름다움을 주우러 가자.
지나간 세월의
아픔일랑은 흐르는
강물 속에 던져 버리고
젊음을 주우러 가자.
유월의 지루함 일랑은
시간의 울타리 속에 가두어 두고
칠월의 숫자들 속으로
태양을 주우러 가자.
팔월을 기다리는
시간일랑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같은 정열은 열정의
열린 가슴에 담아두고
우리 칠월의 구르는
숫자 속으로 타오르는
사랑을 주우러 가자.
단풍잎 물드는 구월엔
칠월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낙엽 지는 시월엔 또다시
사랑을 주우러 가자.
- 김영은, 《칠월에 거두는 시》,전문
김영은 시인의 이 시는 어딘지 모르게 정열, 청춘, 그리고 《젊은 그대》 같은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폭염과 폭우가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요즘, 달력도 지친 나머지 더디게 넘어가는 것만 같은데, 젊음과 태양, 사랑을 주우러 가자고 외치는 시인의 목소리가 청량하게 들린다.
미래를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현재(여기와 지금)을 사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매일, 그리고 매순간이 결코 즐거울 수만은 없지만, 일상의 소소함은 분명 소중한 것이다. 매일이 쌓여 한 해 두 해가 되고, 인생이 된다.
사랑도 조금씩 키워가면 나날이 깊어지듯이, 즐겁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추억을 지금부터 만들면 어떨까. 바다, 강물, 태양, 사랑, 생각만해도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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