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적혀 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이나 해설,
그리고 분석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입니다.
오해나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창문 열면
라일락 꽃
시계풀 꽃
꽃내음에 홀려
창문 열면
5월의 부신 햇살
싱그런 바람
왠지 나는 부끄러워라
내가 너를 생각하는 이 마음을
네가 알 것만 같아
혼자 서있는 나를
네가 어디선 듯
숨어서 가만히 있을 것만 같아서......
- 나태주, 《창문 열면》, 전문
이제 일주일만 지나면 오월이다.
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달려온 때 이른 더위, 대지의 목마름을 채워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비, 그리고 목과 눈가를 따갑게 만드는 황사까지,
어느새 봄마저 지쳐서 쉬어가게 만들 만큼, 여름은 조급하게 그 기운을 여기저기에 뿌리고 다니기에 여념이 없다. 봄은 오자마자 여름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생겼다.
이런저런 이유로 현실은 창문을 열기가 꺼려지는 날들의 연속일지는 모르지만, 마음만은 지나가고, 비껴가고, 돌아간 많은 날들을 다독이고 위로할 필요가 있다.
시계풀을 꺾어 손목시계처럼 차고 놀았던 낡아빠진 그 기억조차도, 지나고 나니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마침 바람이 창틀을 넘어, 가만히 불어온다.
덜컹거리는 생각들이 바람을 타고 방안을 맴돈다. 봄은 가고, 상념만이 마음속을 내달려간다.
그래, 다가오는 5월의 아침이 정말 아래의 시처럼 깨끗하고, 청명하고, 싱그러운 나날들이었으면 좋겠다. 꼭꼭 닫혀있던 마음의 창문이 활짝 열리길 기대하면서.
오월의 아침
가지마다 돋아난
나뭇잎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눈썹이 파랗게 물들 것만 같네요.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려면
금세 나의 가슴도
바다같이 호수같이
열릴 것만 같네요.
돌덤불 사이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듣고 있으려면
내 마음도 병아리떼 같이
종알종알 노래할 것 같네요.
봄비 맞고 새로 나온 나뭇잎을 만져 보면
손끝에라도 금시
예쁜 나뭇잎이 하나
새파랗게 돋아날 것만 같네요.
- 나태주, 《오월의 아침》, 전문
5월 어느 날
산다는 것이
어디 맘만 같으랴.
바람에 흩어졌던 그리움
산딸나무 꽃처럼
하얗게 내려앉았는데
오월 익어가는 어디쯤
너와 함께 했던 날들
책갈피에 접혀져 있겠지.
만나도 할 말이야 없겠지만
바라만 보아도 좋은 것 같은
네 이름 석자.
햇살처럼 눈부신 날이다.
- 목필균, 《5월 어느 날》, 전문
마음속엔 언제나, 그리움이든 원망이든 또 어떤 것이든 간에, 부치지 못한 편지 같은 것들이 쌓인다.
어떤 것은 처음부터 있는 듯 없는 듯 잊혀버리고, 또 어떤 것은 맹렬하게 시작되었다가 끝은 흐지부지해지거나, 의미를 알 수 없는 암호나 낙서와도 같은 꼴로 마침내 내 자신조차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태로, 아무렇게나 마음 한편에 흩어져 있다.
우리들의 일상이란 그렇게 정신없이 우리들의 머리 위를 콩콩, 뛰어다닌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번 씩 바뀌는, 변화무쌍한 마음을 표현하기란 늘 어렵고, 이것이 정제되기란 더더욱 어렵다.
그렇기에 종종 시는 우리의 일상을 관통하는 그 무엇으로, 이제야 정리해 보는 마음속 편지의 어떤 구성처럼 다가올 때가 있다.
산다는 것이 마음같지 않을 때, 시는 내속으로 천천히 걸어온다. 5월의 어느 날, 불현듯 나는 또 행복할 것이다.
5월에 꿈꾸는 사랑
꽃들은 서로 화내지 않겠지
향기로 말하니까
꽃들은 서로 싸우지 않겠지
예쁘게 말하니까
꽃들은 서로 미워하지 않겠지
사랑만 하니까
비가 오면 함께 젖고
바람 불면 함께 흔들리며
어울려 피는 기쁨으로 웃기만 하네
더불어 사는 행복으로 즐겁기만 하네
꽃을 보고도 못보는 사람이여
한철 피었다 지는 꽃들도
그렇게 살다 간다네
그렇게 아름답게 살다 간다네
- 이채, 《5월에 꿈꾸는 사랑》,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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