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쓰여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이나 분석,
그리고 해설이 아닌
블로그 주인의 개인적인 감상일 뿐이오니,
오해나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봄비
해님만큼이나
큰 은혜로
내리는 교향악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악기가 된다.
달빛 내리던 지붕은
두둑 두드득
큰북이 되고
아기 손 씻던
세숫대야 바닥은
도당도당 도당당
작은 북이 된다.
앞마을 냇가에선
퐁퐁 포옹 퐁
뒷마을 연못에선
풍풍 푸웅 풍
외양간 엄마소도 함께
댕그랑 댕그랑
엄마 치마 주름처럼
산들 나부끼며
왈츠
봄의 왈츠
하루종일 연주한다.
- 심후섭, 《봄비》, 전문
💬 - 1951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대구교육대학, 방송통신대, 경북대교육대학원을 거쳐 대구가톨릭대학원에서 교육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 1980년 <창주문학상> 동시 당선 이후 <소년> 동화 천료, <월간문학>과 <새벗> 신인상 동화 당선,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제1회 장편부문 당선되었고, <한국아동문학상>과 <대구문학상>, <금복문화상 문학부문>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 1972년 초등교직에 입문하여 43년간 근무한 뒤 정년퇴임하였고, 한국일보사 주관 <제28회 한국교육자대상>을 수상하였습니다.
- 현재 대구아동문학회, 한국아동문학가협회, 한국문인협회, 한국펜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심후섭
계절을 자연의 교향악으로 가정하고, 특히 봄을 리듬으로 표현하자면 왈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왈츠 하면 '봄의 왈츠'라는 제목이 먼저 떠오를 것이고, 춥고 긴 겨울을 지나 꽃들이 피고 햇살이 따스해지는 광경이 그려진다.
이 시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도 바로 봄, 그리고 봄비가 갖는 리듬이다. 봄비는 하늘에서 그냥 내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지상에 있는 자연물, 또는 인공물과 만나 그럴듯한 리듬을 만든다.
지붕은 큰북, 세숫대야는 작은북... 북은 스틱처럼 무엇인가 도구로 내리쳐야만 소리가 난다. 여기서는 봄비가 드럼 스틱의 역할을 하고, 그 리듬은 둘도 없는 자연의 연주가 된다.
그리고 그 연주는 냇가와 연못은 물론 지금은 보기가 어려운 외양간의 소 목에 걸려있는 방울에도 떨어지며 교향악을 이룬다.
지금은 기억의 저편에 박제된,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은 봄의 풍경들.
다시 봄비가 내린다고 한다. 너무 적지도, 너무 많지도 않게, 꼭 필요한 곳을 촉촉하게 적실 봄비를 기다리며.
봄
우리 애기는
아래 발추에서 코올코올,
고양이는
부뚜막에서 가릉가릉
애기 바람이
나뭇가지에 소올소올
아저씨 햇님이
하늘 한가운데서 째앵째앵.
- 윤동주, 《봄》, 전문
1936년 10월
아기는 한참 낮잠을 자고, 고양이는 부뚜막에서 골골송으로 안정감을 표현하는 가운데, 바람은 나뭇가지를 타고 기분 좋게 불어대고, 햇살은 점점 따뜻해지는, 봄의 평화로운 정경들이 펼쳐진다.
이런 미장센 같은 풍경이 내 인생에 있어서 과연 얼마의 시간 동안 존재하였던가.
언제나 무엇인가를 하고 있지 않으면 어색한, 바쁘게 일상을 보내는 우리들은 어느 틈엔가 잠시 멈추어 서서 숨을 고르는 일들을, 잊었거나 의식적으로 멀리하려고 한다.
자신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볼 시간조차 잊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사는 것에 치이다 보면 많은 것들이 사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시는 가끔씩 꺼내볼 수 있는, 꺼내기만 하면 단번에 그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스냅사진과도 같다.
목련
목련은
입이다.
아이스크림처럼 하얀 봄을
한 모금 물고 있는
아이들의 예쁜 입이다.
목련은
웃음이다.
아무 욕심도 불평도 없이
얼굴 가득 담고 있는
아이들 티 없는 웃음이다.
- 제해만, 《목련》, 전문
💬 저자 제해만은 1944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다. 1967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꽃싹> 가작 입선했다. 지은 책으로 동시집 ≪바람의 집≫, ≪어른들은 모르셔요≫, ≪별 찾기≫, 동화집 ≪꼬마 교장 철이≫, 시집 ≪꿈같은 흐름≫, ≪먼 기억 속으로≫, ≪저녁 강≫ 등이 있다.
현대아동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아동부문 우수상, 단국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을 받았다. 1997년 타계했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제해만
활짝 핀 목련(아마도 백목련일 것이다)과 아이스크림을 한 입 가득 베어문 아이들의 입과 티 없이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잘 매칭시킨 동시이다.
아이라고 해서 욕심과 불평이 왜 없겠느냐만은, 사실 욕심과 불평을 한시도 내려놓지 않는 쪽(비록 24시간 동안 입으로 외치지는 않지만 마음속엔 그 이상의 폭풍이 몰아친다)은 오히려 어른들일 것이다. 어른들에 비해 아이들의 그것은 상대적으로 귀엽고 단순하게 느껴질 정도니까.
우리가 입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먹는 것과 웃는 것뿐이 아니다. 칭찬, 격려, 험담, 불평, 추측, 예단... 너무 많아서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모쪼록 입으로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하얀 봄을 어둡게 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서면 금방 잊어버릴 다짐인 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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