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아래 적혀있는 각각의 글들은
시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이나 해설,
그리고 분석이 아닌
개인의 소소한 감상일 뿐입니다.
오해나 착오 없으시길 바랍니다.
장미
누가 그 입술에 불질렀나
저토록 빨갛게 타도록
누가 몸에 가시울타리 쳐 둘렀나
그 입술에 입맞춤 못하도록
나도 그 입술이고 싶어라
불타는 사랑의 입술이고 싶어라
이별이 내게 입맞춤 못하도록
가시 울타리 치고 싶어라
- 손석철, 《장미》, 전문
💬 손석철 시인은 1999년 3월 <문예사조> 신인상을 통해 등단하였다. 예산문협 시인으로 현재 예산경찰서에 근무 중이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손석철
5월을 대표하는 꽃하면 누구나 장미를 떠올릴 것이다.
그중에서도 붉은 장미는 바라보기만 해도 정열이 느껴진다. 그렇게 뜨거운 정열의 홍조를 상징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미처 깨닫지 못한 가시에 찔려 놀랄 수도 있다는 것.
우리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언제까지고 그 정열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은 둘째치고라도, 서로 다른 환경과 배경을 가진 두 세계가 만나 때로는 충돌하고, 때로는 뒤섞이며, 삶이란 달콤하고 씁쓸하며, 거기에다 짠맛도 가미되어 있다는 사실을.
눈물도 없고, 다툼도 없으며, 쓰라림도 없는 사랑이 어디있으랴. 사랑은 빨간 입술 위에서 하염없이 타오르지만, 틈만 나면 저편에서 내달릴 준비를 하고 있는 헤어짐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차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미를 보는 시인은 내게 이별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가시 울타리를 치고 싶다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붉은 장미는 사랑의 속성을 그 누구보다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정말 장미를 사랑한다면
빨간 덩굴 장미가 담을 타오르는
그 집에 사는 이는
참 아름다운 사람일거라고 생각했다
낙엽이 지고 덩굴 속에 쇠창살이 드러나자
그가 사랑한 것은 꽃이 아니고 가시였구나
그 집 주인은 감추어야 할 것이 많은
두려운 것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생각하려다가
지극히 인간적인 사람이구나 생각하기로 했다
- 복효근, 《내가 정말 장미를 사랑한다면》, 전문
💬 복효근 시인은 1991년 《시와 시학》으로 활동을 시작하였다.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 『새에 대한 반성문』, 『누우 떼가 강을 건너는 법』, 『목련꽃 브라자』, 『마늘 촛불』, 『따뜻한 외면』, 『꽃 아닌 것 없다』, 『고요한 저녁이 왔다』, 『예를 들어 무당거미』, 청소년 시집 『운동장 편지』, 시선집 『어느 대나무의 고백』, 디카시집 『허수아비는 허수아비다』, 교육 에세이집 『선생님 마음 사전』 등을 출간하였다.
편운문학상, 시와시학상, 신석정문학상, 박재삼문학상, 시와 편견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복효근
이 시를 읽으니 어릴 적 우리 동네에도 비슷한 집이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크고 넓은 부지가 있고, 멋들어진 사자 머리 문고리 장식이 달린 대문이 있던 이층 집.
몰래 훔쳐보았던 대문의 문틈 사이로 언뜻, 잘 가꾸어진 정원과 커다란 파라솔을 얹은 벤치가 보였던 그 집의 담장도 이 시처럼 빨간 장미 넝쿨로 뒤덮여있었다.
저 집에서 사는 사람들은 돈 걱정도 없고, 만날 가족끼리 웃음꽃만 피우고 있겠지, 하며 어린 마음에 몹시도 부러워했던 기억도 있다.
화려한 장미에도 가시가 있듯, 남들보다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질투와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당당하기만 한 삶이라던가, 어두운 일면이 없는 삶은 아마 없을 것이다.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남들은 알 수 없는 고뇌와 창살 같은 차가움이 날이 갈수록 더해갈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어떤 날카롭고 가시 돋힌 비밀이 한 두 가지쯤은 있듯이 말이다.
한 송이 장미꽃
장미꽃 한송이
뜰 위에 피었네
그 집
그 뜰은
초라한데
장미꽃 곱게도 피어있네
아침에는 함초롬이 이슬을 먹고
뜨거운 양지쪽 한낮에도
장미꽃 누군가 기다리며
말없이 그 뜰을 지켜섰네
장미꽃 한 송이 피어있네
가난한 그 뜰에 피어있네
- 임종호, 《한 송이 장미꽃》, 전문
물론 잘 가꾸진 정원에 핀 장미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비록 그 마당은 오래되고 퇴색되어 초라해 보일지라도, 곱게 핀 장미꽃 한송이만으로도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멈추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남과 나의 배경, 그리고 가진 것의 많고 적음만으로 열심히 비교 우위만 가늠하다보면, 결국 나만 비참해질 뿐이라지만, 실생활에서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삶에 치이다보면 마음은 황폐해지고, 표정은 점점 더 공격적으로 변한다. 그래, 활짝 핀 꽃이 예쁘다는 것은 알겠어, 그렇지만 나 하나 그렇게 꽃을 피우겠다는 마음으로 산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게,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게 있겠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내가 바뀜으로 해서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리가 쉽게 잊고 지내는 어떤 출발점일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그게 제일 어렵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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