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자 오늘은 이만 자러 갑시다
오늘도 이것으로 좋았습니다
충분했습니다
아내는 아내 방으로 가서
텔레비전 보다 잠들고
나는 내 방으로 와서 책 읽다가 잠이 든다
우리 내일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자 오늘도 안녕히!
아내는 아내 방에서 코를 조그맣게 골면서 자고
나는 내 방에서 꿈을 꾸며 잠을 잔다
생각해보면 이것도 참 눈물겨운 곡절이고
서러운 노릇이다
안타까운 노릇이다
오늘 하루 좋았다 아름다웠다
우리는 앞으로 얼마 동안
이런 날 이런 저녁을 함께할 것인가!
- 나태주, 《오늘 하루》, 전문
사실 우리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존재이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 익숙하지만 때로는 지겹기도 한 하루의 장면들은 인생으로 보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 않는다. 어떤 형태로든 단번에, 혹은 조금씩 우리의 일상에는 변화가 찾아온다.
아이러니하게도 별일 없이 하루를 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살다 보면 별 일이 다 있다는 것을 경험한 사람은 알 것이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언제까지고 그러하지 않는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오늘 하루 충분히 좋았다'고 느끼는 지점(그것이 물질적인 풍요이든, 감정적인 풍요이든 간에)은 각자가 다 다르기에, '여기-지금'에서의 만족은 언제나 요원하다.
오늘도 이것으로 좋았습니다/
충분했습니다/
나는 이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일과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때면, 오늘 하루 일어났던 장면들에 읽힌 온갖 상념들이, 눈 앞에 다시 재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미 일어난 일, 내가 선택하여 한 행동, 이런 것들을 침대에 누워 끙끙거려 보았자 당장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내가 왜 그랬을까, 그는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에 생각을 잉태하다가 보면, 이불 킥은 기본이고 한숨으로 땅이 꺼지고 만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너,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오늘의 일은 오늘의 일로 충분하다
조금쯤 모자라거나 비뚤어진 구석이 있다면
내일 다시 하거나 내일
다시 고쳐서 하면 된다
조그마한 성공도 성공이다
그만큼에서 그치거나 만족하라는 말이 아니고
작은 성공을 슬퍼하거나
그것을 빌미 삼아 스스로를 나무라거나
힘들게 하지 말자는 말이다
나는 오늘도 수많은 일들과 만났고
견딜 수 없는 일들까지 견뎠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셈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을 오히려 칭찬해주고
보듬어 껴안아 줄 일이다
오늘을 믿고 기대한 것처럼
내일을 또 믿고 기대해라
오늘의 일은 오늘로 충분하다
너, 너무도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 나태주,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전문
물론 작은 성공이나 칭찬에 우쭐해서 '오케이, 여기까지'라고 정한 순간 자신의 한계는 딱 거기까지로 한정될 수도 있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스스로를 지나치게 질책해서는 안 된다.
합리 정서 행동주의(REBT)의 창시자 앨버트 앨리스는 "인간은 객관적 사실 때문에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실에 대한 자신의 관점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하였다.
즉, 자신의 비합리적인 신념에 따라 어떤 사건을 합리적이지 못한 방식으로 지각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오늘은 갔고, 내일은 온다. 반드시 밤을 지새워 고민하거나 컴퓨터 앞에 앉아 핏발 선 눈으로 오늘의 일을 수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더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당신은 오늘도, 잘 견뎌냈다.
스테인드글라스
늦은 오후
성당에 가서 무릎을 꿇었다
높은 창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저녁 햇살이
내 앞에 눈부시다
모든 색채가 빛의 고통이라는 사실을
나 아직 알 수 없으나
스테인드글라스가
조각조각난 유리로 만들어진 까닭은
이제 알겠다
내가 산산조각난 까닭도
이제 알겠다
- 정호승, 《스테인드글라스》,전문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불쌍한 내 머리를
다정히 쓰다듬어 주시면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 정호승, 《산산조각》, 전문
✅ 룸비니(Lumbini) :
네팔 남부 테라이 지방의 룸비니에 있는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고타마 싯다르타) 탄생지로 불교 4대 성지 중 하나. 페허로 방치되어 있던 곳이었으나 1895년 독일 고고학자인 포이러(Feuhrer)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룸비니, 부처의 탄생지
[Lumbini, the Birthplace of the Lord Buddha]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종교가 있는 사람은 종교적 깨달음으로, 종교가 없는 사람은 또 없는 사람대로, 위의 '산산조각'과 관련된 두 편의 시에 대한 감상이 다를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낙하하며 부서지는 유리잔처럼, 마음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 섣불리 주워 담으려고 하면 손가락에 상처가 생기고, 그렇다고 가만히 그것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더욱 아파지는 그것.
시인은 그 산산조각 자체도 나라고,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는 고통이 없으면 나도 없다고 말한다.
내 마음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졌다고 해서, 그것이 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매일, 무너지지 않으려, 부서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입으로는 괜찮아, 하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그 상처에 대해 분노하고, 종종 소금을 뿌린다.
산산조각이 난 나의 마음도 나고, 어쩔 줄 모르며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도 나고, 산산조각이 난 마음이 애처로워 눈물을 흘리는 것도 나다.
약하고, 서글프고, 화가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모여, 총체적인 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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