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봄은 온다.
한결 따스해지는 공기, 땅을 뚫고 파릇파릇하게 솟아오르는 싹들, 그리고 봄볕을 쬐며 단꿈을 꾸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봄볕이 평상 위에 드리우는 오후, 어느새 녀석이 내 곁에 와서 털썩 앉는다. 점퍼 속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꺼내려고 하자, 녀석이 고이 감춰둔 먹이라도 꺼내는 줄 아는지, 바로 휙 하고 돌아본다.
미안, 며칠 전에 딴녀석들에게 고양이 먹이는 다 털렸어.
그렇게 한동안 내 곁에서 식빵을 굽던 녀석은 이내 땅 위로 내려와서 재잘거리는 새들을 잡겠다고, 경이로운 점프력을 발휘하며 사라져 버렸다. 그럼 이만,
새들을 유심히 지켜보며 슬금슬금 다가가는 녀석. 잠시 후 녀석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오늘도 사냥은 실패로 돌아갔고, 인간의 호주머니에서 먹이가 나올 가능성도 없다는 것을 인지한 녀석은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고양이는 옳다(원제 - 비본질적인 것들)
날마다 고양이는 무엇을 기억하는가?
추위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는 길,
가장 따뜻한 지점과
먹을 것이 있는 위치를 기억한다.
고통을 안겨 주는 장소와 적들,
애를 태우는 새들,
흙이 뿜어내는 온기와
모래의 쓸모있음을.
마룻바닥의 삐걱거림과 사람의 발자국 소리,
생선의 맛과 우유 핥아먹는 기쁨을 기억한다.
고양이는 하루의 본질적인 것을 기억한다.
그 밖의 기억들은 모두 무가치한 것으로 여겨
마음속에서 내보낸다.
그래서 고양이는 우리보다 더 깊이 잔다.
너무 많은 비본질적인 것들을 기억하면서
심장에 금이 가는 우리들보다.
- 브라이언 패튼, 《비본질적인 것들》
인간, 미리 말해두는데 나는 참치맛 먹이는 안 먹어. 그리고 건식 사료도 안 먹어. 그 점을 꼭 유념하기 바라.
내가 좋아하는 먹이는 연어맛, 그것도 습식. 그러니까 저 앞 편의점에서 파는 한 개에 900 원하는 튜브형 간식만 먹으니까 그리 알라고.
킁킁, 오늘은 먹이를 소지하고 오지 않았군. 오늘 볕이 유난히 좋아서 좀 더 즐겨야겠으니까 더 이상 방해하지 말라고. 굳이 편의점에 가겠다면 내 말리지는 않겠네만.
그렇다면 내 친히 눈을 들어 그대를 고이 바라보며 몇 초 간 눈을 맞춘다거나, 한 두 번쯤은 야옹~하고 울어본다거나, 조금 더 기분이 나아지면 이마를 비비적거릴 수도 있겠네만.
만날 때마다 언제나 자고 있는 녀석. 실제로 연어 맛 습식 간식만 먹는다. 굳이 내 곁으로 와서 잠을 청하면서도 방해하지 말라는 듯, 이따금씩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 준다.
부디 좋은 꿈 꾸기를.
고양이의 꿈
시내 위에 돌다리
다리 아래 버드나무
봄 안개 어리인 시냇가에 푸른 고양이
곱다랗게 단장하고 빗겨 있오 울고 있오
기름진 꼬리를 쳐들고
밝은 애달픈 노래를 부르지요
푸른 고양이는 물오른 버드나무에 스르륵 올라가
버들가지를 안고 버들가지를 흔들며
또 목놓아 웁니다 노래를 부릅니다
- 이장희, 《고양이의 꿈》 중에서
한결 따스해지는 공기, 땅을 뚫고 파릇파릇하게 솟아오르는 싹들, 그리고 봄볕을 쬐며 때로는 단꿈을, 때로는 처연한 꿈을 꾸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그렇게 봄은 온다.
2022.12.30 - [고양이가 있는 풍경] - ✔우리 동네 고양이들(고양이, 냥냥이 겨울나기, 길고양이, 고양이 사진, 춥고 긴 겨울, 이집트 자세, 경계, 불안,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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