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 꿈꾸는 사랑
여름 하늘은 알 수 없어라
지나는 소나기를 피할 길 없어
거리의 비가 되었을 때
그 하나의 우산이 간절할 때가 있지
여름 해는 길이도 길어라
종일 걸어도
저녁이 멀기만 할 때
그 하나의 그늘이 그리울 때가 있지
날은 덥고
이 하루가 버거울 때
이미 강을 건너
산처럼 사는 사람이 부러울 때도 있지
그렇다 해도
울지 않는다
결코 눈물 흘리지 않는다
오늘은 고달퍼도
웃을 수 있는 건
내일의 열매를 기억하기 때문이지
- 이채, 《8월에 꿈꾸는 사랑》, 전문
진즉에 시작된 더위지만 몇 번의 폭우가 지나고, 사실 상의 장마가 끝난 이 시기부터 8월 하순까지가 가장 더운 때가 아닐까.
도로를 순식간에 급류가 흐르는 강물로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한 물폭탄의 위력을 알면서도, 거대한 가마솥 같은 거리를 잠시라도 걷고 있노라면, 약간의(?) 비가 그리워진다(물론 한 번 왔다 하면 무시무시하기 때문에, 그냥 생각 뿐이다.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사실 이 무렵의 아스팔트 위에 가만히 서있는 것만으로도, 터져나오는 땀만큼이나 체력은 그냥 떨어지고, 그렇게 인상을 팍팍 구기다보면 햇살도 싫고, 바글바글한 사람들도 싫고, 하루는 길고, 그늘은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벌써 삼 년째 코와 입가를 덮은 마스크는, 익숙하기는 하나 여전히 나를 옥죈다.
올해는 저 덜덜거리는 구형 에어컨을 반드시 바꾸리라, 고 다짐했지만 조금만 더 참으면 가을이라는 게 오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다시 그 다짐을 미룬다.
(시원한) 바람이여, 불어오라. 그늘이여, 더욱 넓어져라.
중년의 가슴에 8월이 오면
한줄기 바람도 없이
걸어가는 나그네가 어디 있으랴
한방울 눈물도 없이
살아가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
여름 소나기처럼
인생에도 소나기가 있고
태풍이 불고 해일이 일 듯
삶에도 그런 날이 있겠지만
인생이 짧든 길든
하늘은 다시 푸르고
구름은 아무 일 없이 흘러가는데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여
무슨 두려움이 있겠는가
물소리에서
흘러간 세월이 느껴지고
바다모래에서
삶의 고뇌가 묻어나는
중년의 가슴에 8월이 오면
녹음처럼 그 깊어감이 아름답노라
- 이채, 《중년의 가슴에 8월이 오면》,전문
8월
누구의 입김이 저리 뜨거울까
불면의 열대야를
아파트촌 암내난 고양이가
한 자락씩 끊어내며 울고
만삭의 몸을 푸는 달빛에
베란다 겹동백 무성한 잎새가
가지마다 꽃눈을 품는다
- 목필균, 《8월》, 전문
💬 시인 목필균은 사단법인 우리시 진흥회 회원. 한국시인협회 회원. 시집으로 '거울보기(우이동사람들,1998)', '꽃의 결별(오감도,2003)' 이 있고, 수필집으로 '짧은 노래에 실린 행복(오감도,2008)' 이 있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소개, 목필균
누구의 입김이 저리 뜨거울까/
8월의 무더위를 이처럼 한 줄로 잘 표현한 행(이자 연)이 또 있을까 싶다.
이 외에 여름의 위력을 대변하는 말이 또 뭐가 필요할까. 창문을 열어도, 닫아도, 그 뜨거운 입김은 사그라들 줄 모른다.
매미는 새벽에도 종종 울어댄다. 매미의 떼창이 잠시 사그러드는 사이로, 추임새처럼 풀벌레의 소리가 들려오는 듯 싶더니 이내 짝을 찾는 길고양이의 거친 울음이 그 소리를 잡아먹는다.
온갖 존재의 삶과 죽음, 그것은 언제나 나의 곁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과연 가을이 오기는 오는 걸까. 얕은 잠속에서 꼬리를 흔들며 사라지는 고양이의 뒷모습을 쫓다가, 이내 아침을 맞는다.
이런저런 생활 소음과 함께, 뜨거운 입김은 다시 나의 온몸을 데운다.
여름 도시
아스팔트에 듬성듬성 소나기 고였다
흰 구름 발목 적시며 건너는 곳, 거기
혼례비행 중의 잠자리 한 쌍 하늘에서 내려왔다
팔월이다
그늘 속에서 나는 본다 잠자리 꽁지 처음 물 찍을 때
하마터면 소리 지를 뻔했다 세 시간 후 바짝 마를 그곳에
알을 낳는 무모함. 그러나 이내 사람의 일 또한
도로 아닌 일 흔치 않음 떠올리고 평온해진다 잠자리라고
어떻게 도시에서 자연스러워지겠는가
그러다가 갑자기 몸이 뜨거워졌다 아니다
서늘해졌다 저 잠자리들 여기서 알 낳지 않는다면
무얼 하겠는가 물 있는 곳에 알 낳는 일 말고
혼례비행 중인 잠자리 달리 무얼 하겠는가 그리고 다시
소나기 퍼붓고 알들은 물길 따라 가다 거기 어디쯤 수초에 붙어
자신의 문을 열고 나설 수도 있으리라 잠자리는 몸으로
그걸 알고 있었다
나는 지붕 밖으로 나와 다시 일하러 갔다.
- 이면우, 《여름 도시》, 전문
💬 이면우(1951년 ~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대전에서 태어났다. 생계를 꾸리는 직업은 보일러공이다. 최종 학력은 중졸이며 마흔 살이 넘어서야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신춘문예나 문학 전문 잡지에 글을 싣는 등 일반적인 방법으로 문단에 나오지 않고, 주변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첫 시집 《저 석양》을 펴내면서 문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저 석양》(호서문화사, 1991)《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창작과비평사, 2001),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북갤럽, 2002), 《십일월을 만지다》(작은숲, 2016) 등이 있다.
* 출처 : [위키백과], 이면우 시인
그것이 좋든 싫든, 생계를 꾸리는 일(다시 말해 노동력을 제공하고 대가를 받는 것)은 인간에게 매우 중요하다.
월급, 시급, 주급 등을 벌어 각종 재화와 바꾸어 가족을 부양(또는 자기 자신을 부양)해야만 또 다음을 기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맘때면 자주 출몰하는 잠자리의 '혼례비행'과 작은 웅덩이에 알을 낳는 행위를 지켜보는 시적 화자, 그리고 이 거대한 도시 속에서 살아나가는 일 자체가, 단순화시키면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씁쓸함이, 이 시를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나는 지붕 밖으로 나와 다시 일하러 갔다./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그 한 마디.
관찰과 일말의 깨달음을 득한 시적 화자조차도, 결국 일(생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이 우선 일을 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고, 현실의 무서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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