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오면
그대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가는 소리를 듣는지요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그때 강둑 위로
지아비가 끌고 지어미가 미는 손수레가
저무는 인간의 마음을 향해
가는 것을
그대
9월의 강가에서
강물이 저희끼리만
속삭이며 바다로 가는 것이 아니라
젖은 손이 닿는 곳마다
골고루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을
그리하여 들꽃들이 피어나
가을이 아름다워지고
우리 사랑도
강물처럼 익어가는 것을
그대
사랑이란
어찌 둘만의 사랑이겠는지요
그대가 바라보는 강물이
9월 들판을 금빛으로 만들고 가듯이
사람이 사는 마을에서
사람과 더불어 몸을 부비며
우리도
모르는 남에게 남겨줄
그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을
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우리가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 안도현, 《9월이 오면》, 전문
💬 저자 안도현은 1961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원광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시 「낙동강」이,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서울로 가는 전봉준』 『모닥불』 『그대에게 가고 싶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그리운 여우』 『바닷가 우체국』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 『너에게 가려고 강을 만들었다』,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 『관계』 『사진첩』 『짜장면』,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 등이 있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안도현
가을 하면 무엇인가가 익어가고 여물어가는 '결실'이 떠오른다.
시인의 눈에는 이 계절에 강물 또한 여물어가는 것이 보였나 보다.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가만히 등을 토닥이며 밀어주면/
앞서가는 강물이 알았다는 듯/
한 번 더 몸을 뒤척이며/
물결로 출렁/
걸음을 옮기는 것을/
강물의 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뒤따르는 강물이 앞서가는 강물에게 등을 토닥이며 밀어준다'라고 표현한 것이, 마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태생적으로 좋든 싫든 타인과 부대껴가며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숙명을 노래하고 있는 것만 같다.
번잡한 대도시에서 온갖 소음에 시달리며 살아나가다 보면, 그래도 나는 이렇게 혼자서도 잘 살아나간다고 생각할지는 모르지만, 사실 우리는 모르는 사이 많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것이다.
내게 필요한 무엇인가를 검색하여 배달을 받는 것, 식당에 가서 혼자 밥을 시켜서 먹는 것도 실은, 설령 그것이 비록 깊은 커뮤니케이션은 아닐지 몰라도 사회의 시스템 속에 스스로 들어가서 상호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항상 인간이 만들어놓은 어떤 세계 속에 어떤 형태로든 '접속'하고 있다.
높고 넓은 가을 하늘에 내 마음을 접속한다. 하늘의 강은 때로는 파랗게, 그리고 때로는 하얗게 빛나며 내 마음을 쓸어준다.
가을이 물들어 오면
가을이 물들어 오면
내 사랑하는 사람아
푸르고 푸른 하늘을 보러
들판으로 나가자
가을 햇살 아래
빛나는 그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살며시 와닿는 그대의 손을 잡으면
입가에 쏟아지는 하얀 웃음에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기뻐할까
가을이 물들어 오면
내 사랑하는 사람아
흘러가는 강물을 보러
강가로 가자
강변에 앉아 우리의 삶처럼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서로의 가슴속에 진하게 밀려오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우리의 사랑은 탐스럽게 익어가는
열매가 되지 않을까
- 용혜원, 《가을이 물들어 오면》, 전문
가을은 이제 시작인데, 벌써 어떤 잎은 노랗게 물이 들어 있다.
봄도 가을도 이렇게나 짧은데 시간마저 잰걸음으로 내 곁을 빠르게 지나간다.
날카롭게 울어대던 매미들도 이제는 짝짓기를 끝냈는지, 언제부턴가 조용해졌다(아, 귀를 기울이니 간간히 울어대기는 하지만 그 기세는 현저히 떨어졌다).
나뭇잎도 물들고, 하늘도 물들고, 강물도 물들고, 들판도 물들고, 나 또한 가을에 물든다.
아름답지만 어쩐지 쓸쓸하고 애잔하다.
온갖 감정의 바람들이 내 어깨와 머리칼을 흔든다.
가을이 익어가는 계절이라면, 이렇듯 밀려드는 여러 감정들도 열매처럼 익어갈 수 있을까.
나의 9월은 어떤 뒷모습을 나에게 남길 것이며, 어떻게 영글어 갈 것인가.
나의 9월은
나무들의 하늘이, 하늘로
하늘로만 뻗어가고
반백의 노을을 보며
나의 9월은
하늘 가슴 깊숙이
깊은 사랑을 갈무리한다.
서두르지 않는 한결같은 걸음으로
아직 지쳐
쓰러지지 못하는 9월
이제는
잊으며 살아야 할 때
자신의 뒷모습을 정리하며
오랜 바램
알알이 영글어
뒤돌아보아도 보기 좋은 계절까지
내 영혼 어떤 모습으로 영그나?
순간 변하는
조화롭지 못한 얼굴이지만
하늘 열매를 달고
보듬으며,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 서정윤, 《나의 9월은》, 전문
💬 대구 출생. 『현대문학』에 추천을 받아 등단. 〈한국문협 작가상〉 등 수상. 전 국민의 애송시 「홀로서기」의 시인.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는 현실에서 스스로 자신을 도닥여가며 살아가야 하는 위안의 말들을 시로 썼다.
* 출처 : [교보문고], 작가 소개, 서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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